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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채 Nov 27. 2023

한글로 작성하는 지방

아빠의 제사

초등학교 5학년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중학교 때는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유학 중에는 친구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그리고 서른살. 하늘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아빠를 데려갔다. 어느덧 9년. 처음에는 숨도 못 쉴 만큼 아프고 힘들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흔해빠진 위로가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 가족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엄마도 우리 삼 남매도 아주 잘 살고 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힘에 밀려 아무 반항도 하지 못했던 9년 전. 하늘의 무심함이 야속하고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럽던 9년 전. 가슴안쪽 그 깊은 곳을 누군가 휘어 감아 잡아당기는듯한 고통을 담담히 회상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큰딸인 나는 우리 집의 가장역할이 되었다. K장녀. 나의 또 다른 부캐다.


아빠가 계실 때. 종갓집 맏며느리 이자 외며느리 었던 우리 엄마는 1년에 10번의 제사를 치렀다. 엄마아빠가 치러낸 제사가 몇백 번은 될 텐데도 제삿날은 늘 정신없이 바쁘고 우리 집 주방이 초토화가 되는 날이다. 아빠는 거실에 앉아 마른 하얀 행주로 목기를 정성껏 하나하나 닦는다. 엄마는 제사음식을 만드느라 종아리가 팅팅 붓도록 하루종일 주방에서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 삼 남매는 저녁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나 배가 고프다며 주방을 기웃거린다.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 제사상에 올릴 음식인지 눈치를 보아가며 하나씩 집어먹다가 야단을 맞는다. 제사 때만큼은 딸바보 아빠도 제사가 먼저였다.
"엄마~~ 이거 먹어도 돼?"
"안돼! 그거 상에 올릴 거야!"
"그럼 이건 먹어도 돼?"
"너네 정신없어 다 들어가"
떡하나 집어먹으려고 해도 제사를 지낸 후에 먹어야 한다는 어디서부터 내려온 법인지 규칙인지 사상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조상님께 예를 다해야만 한다는 강한 신념으로 엄마아빠는 그렇게 제사를 중요시했고 우리 집 규율이었다. 아랫입술을 코앞까지 내밀고 뾰로통 짜증을 내며 방으로 들어간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엄마는 다시 우리를 부른다. 들어가라고 할 땐 언제고 바빠죽겠는데 좀 도우라며 할 일을 분배해 준다. 남동생에게는 밤을 깎게 하고 나와 여동생에게는 제사음식을 옮기게 한다. 두 딸은 주방일은 못해도 시키는 일은 곧잘 했기에 야무지게 척척 손을 맞춰가며 제사상 위에 음식을 올린다. 아빠는 남동생에게 언젠가는 맡아해야 할 일이며 막중한 임무를 전수한다. 밥과 탕국을 첫 번째 열에 두고 구이와 전은 2번째 열. 나물은 그다음열. 붉은 과일은 동쪽 하얀 과일은 서쪽. 외울 생각도 없었지만 외워져 버렸다. 남동생이 고등학생 때부터 아빠는 알려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빨리도 알려주었다. 일찍 가버리실걸 짐작이라도 하신 것처럼.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엄마는 아빠제사까지 포함되어 제사는 더 늘었다. 엄마는 본인의 숙명인 마냥 무릎이 아파도 묵묵히 지내왔지만 나와 살림을 합치게 되면서 나의 거센 항의가 시작되었다. 작년부터는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합쳐서 한번. 아빠제사. 세분을 위한 제사만 지낸다. 설차례와 추석상도 지내니 없앤다고 줄였지만 4번은 큰일을 치러야 한다. 처음에 엄마는 큰죄를 지은것마냥 얼굴도 모르는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제사도 안지내면 큰일이 나는줄 아셨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그딴 제사를 이렇게 열심히 지내면 뭐하나.우리아빠를 이렇게 일찍 데리고 갔는데.조상은 개뿔. 차마 속으로만하고 내뱉진 못했다.근데 나의 진심이다.그래서 간소화한 제사상을 추구한다.잘 먹지않는 음식은 올리지 않는다.우리가 먹을음식만 올린다.

목기를 닦는 일은 10년 전 아빠가 거실에 앉아서 정성껏 닦듯이 아빠를 가장 많이 닮은 남동생이 닦고 있다. 제사를 지낼 때 아빠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던 것은 지방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족보를 꺼내서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성함을 정성껏 적어 지방을 8장 작성하시던 기억이 난다. 아빠가 없는 지금 지방을 작성하는 일은 나의일이 되었다. 지방을 작성하는것도 내마음대로다.



제사라는 형식을 강하게 거부하는 나는 한자로 지방을 작성하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며 몇 해 전부터 한글로 지방을 작성하고 있다. 한자를 사용하는 시대도 아닌데 왜 굳이 한자로 지방을 작성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파평윤씨 공파 어르신들이 아시면 크게 노 하실수도 있겟다.

제사를 줄인 것을 아빠가 알면 조상님들께 예를 다하지 않았다고 하늘에서 야단을 치시려나? 아니면  은채야 그래. 잘했어. 엄마 더 이상 고생시키지 마. 그렇게 해도 돼 라고 하실까? 가끔 궁금하다.


지방을 한글로 작성하는 건 아빠가 어떻게 생각할까? 한자로 꼭 써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알고 싶다.

조선시대도 아닌데 관직이 없는 남자어른은 학생으로 치하되어 현고 학생 부군 신위라는 지방을 쓰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우리 아빠는 하늘만큼 높은 벼슬이고 그 이상 존경한다. 한데 학생 이라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토요일 아주 뜻깊은 슬초 브런치 2기 모임이 있었지만 티타임도 못한 체 서둘러 집에 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지방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한자와 한글 두 버전으로 작성했다. 한자로 지방을 작성할 때는 감흥이 없다. 한글로 작성하는 지방은 첫 글자만으로도 눈물이 뚝뚝 흘러 다시 작성했다. 나의 감정이입이 한글에  훨씬 맞닿아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지방을 쓰는 목적이 누구를 위한 제사인지 밝히기 위함이라면  한글로 작성하는 것 이 현시대 에 걸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제사를 향한 나의 반항심이 만들어낸 억지일수도 있지만 그냥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일요일은 엄마와 우리 삼 남매와 듬직한 두 사위. 한 번도 직접 안아보지 못한 외손주가 산소를 간다. 산소에 가서 아빠에게 물어봐야겠다.


아빠? 지방은 이제 한글로 쓸게. 어차피 아빠제사인 거 우리 다 아는데.
왜 한자로 쓰는 거야~~ 그냥 내년부터는 한글로 쓸게~
근데...아빠~~우리 생각보다 잘하고 있지?기특하지?

                                                                                                                                                                     
                                                                                                                                                       2023.11.25.내년이면 마흔이되는 철딱서니없는 큰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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