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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채 Nov 30. 2023

결혼 축하해 언니

잘못 끼워진 첫 단추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해주언니는 한국대학의 교환학생으로 우리 학교를 오게 되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나는 일본학생들 사이에서도 한국교환학생들 사이에서도 늘 언니였고 누나였다. 해주언니를 처음 보았을 때도 의심도 없이 나보다 어릴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노안인 것도 있지만 해주언니가 동안이라는 것이 한몫했다.


"너 가 해주니? 외국인 등록증은 만들었어? 기숙사는 어디야? 자전거 아직 안 샀지?"

"네. 만들었어요."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면 현지에서 이미 학교를 다니고 있는 나에게 쉴 새 없이 질문이 쏟아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저 아이는 궁금한 것이 없나? 생각도 잠시 다른 한국에서 온 동생들에게 둘러싸여 대답을 해주기 바빴고 다음날이 되었다.

국제교류협회 회장이었던 나는 교환학생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서포트하라는 임무가 주어졌고 해주언니와 두 번째 대화를 나누었다.


"기숙사는 괜찮아? 어때? 장은 좀 멀어도 k마트가 훨씬 저렴한데 쌀은 샀니? 밥솥은?

"네. 한국에서 갖고 왔어요."

"그랬구나. 해주는 근데 나이가 어떻게 돼? (당시 나는 26살이었다)

"저는 31살이요"

"21살??? 정말 어리구나?"

"아니요. 서른한 살 이요^^"

언니는 웃고 있고 나는 울기 직전이었다.

26년을 살면서 그렇게 당혹스러웠던 적은 처음인가 할 만큼 양쪽귀는 빨개져 달아오르고 동공은 갈 곳을 잃었다.

"죄송해요.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정말 너무 죄송해요. 저는 당연히 저보다 어리 신줄 알았어요. 정말 너무 죄송해요. 엄청 불쾌하셨죠?


당황한 나와는 다르게 아주 온화한 표정으로 언니는 미소를 지으며 "괜찮아요 "라고 한마디 했다.

나와는 성격이 180도 다른 사람이구나. 사람이 이렇게도 침착할 수가 있구나. 목소리는 어쩜 이리 여성스럽지?

이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언니의 침착함에 신기해하며 두뇌는 마비가 되었다. 그럴수록 나의 주둥이는 뇌의 조종을 받지 않았다. 조종자가 없는 비행기가 하늘을 제멋대로 날아다니는 듯 나의 주둥이는 뇌의 조종을 받지 못해 제멋대로 움직였다.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을 하고 아무 말이나 떠들어댔던 기억이 난다.


언니는 당시 이런 정신없고 시끄러운 아이와는 친하게 지내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15년이 흘렀고 이번주 나는 해주언니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맡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 안 해주 의 친한 동생 윤은채 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해주언니~~ 우리가 일본에서 처음 만나 벌써 15년이 되어가네?
낯선 일본땅에서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언니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워.
동안이었던 언니를 보고 나보다 어린 줄 알고 반말을 했던 거 기억나?
황당한 사람은 언니인데 더 당황하는 나에게 괜찮다며 너그러운 미소를 지어준  언니와의 첫 만남을 잊을 수가 없어.
지금까지도 언니만큼 침착하고 단아한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까.
형부? 축복받으신 거예요~~ ^^
일본에서의 유학하던 시절 언니는 나에게 쉼터 같은 존재였어.
내가 지치거나 힘들 때 나의 이야기를 늘 묵묵히 들어주었고 격려해 주었지.
사소한 감정까지 헤아려주는 언니의 깊은 마음에 내가 참 많이 의지하고 기댔었어.

하루는 내가 고마웠던 지인에게 '성공을 하면 좋은 선물 해야지~~'라고 말을 했더니 언니는  
"은채야.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을 땐 미루지 말고 지금 캔커피하나 사드리는 게 더 좋을 것 같아"라고 말을 해주었지.
사려 깊은 언니에게 또 하나 배웠구나 하고 생각했었어.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취직활동을 하는 나에게 언니는 우산 같은 존재였어.
취직하고 자리 잡을 때까지 언니집에서 머무르라며 부모님도 허락하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지.
다행히 빠른 취직을 했지만, 그 따뜻함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야.
이 자리를 빌어서 언니의 부모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일본에서 내가 얻은 것 중에 가장 귀하건 바로 언니야.
형부~~ 언니가 칭찬을 많이 했어요~~ 세심하고 배려심 있고 훌륭한 인품을 갖고 계시다고~~
우리 해주언니 지금처럼 깊이 사랑해 주고 많이 아껴주세요~
두 분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행복한 앞날을 응원하며 본 축사를 마칩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체로 시작된 언니와 나는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잘못 꿰어진 단추를 풀러 다시 천천히 짝을 맞춰서 천천히 첫 단추부터 끼어넣었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면 어긋난다는 악연을 설명하는 속담이 다행히 우리에게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주 잘 맞는 짝이 되었다.

이번주 토요일 축사를 위해 아이를 앞에 두고 낭송연습을 하는 내내 눈물이 난다. 토요일 언니의 결혼식축사에 진심을 담기 위해서는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야 하는데 울면서 읽지 못할까 걱정이다. 언니의 콧구멍만 쳐다보며 읽으라고 여동생이 조언을 해주었지만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언니가 아플 때 언니 곁에 있어줄 사람이 있고 같이 웃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든든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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