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남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관심을 받고 싶었고 칭찬을 듣고 싶었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었으면, 남들과는 달랐으면 바랐다. 무엇보다 가장 컸던 욕구는 "욕 먹고 싶지 않다" 였다. 어떤 발언을 해서 욕 먹고 매장되는 연예인들을 보며 저렇게만 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람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진솔함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진솔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두려워 취향과 의견을 숨겼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어바웃타임'과 '콜미바이유어네임','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다. 하지만 대놓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남들 보기에는 이상한 삼류면 어떡하지. 내 눈에는 인생 영화인 어바웃타임이 다른 사람 눈에는 그냥 오글거리는 엉화면 어떡하지. 콜미바이유어네임을 그저 그런 게이 영화라고 하면 어떡하지. 스물세 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하이틴 영화를 좋아한다고 유치하다고 하면 어떡하지.
영국에서도 나를 숨겼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목소리를 좋아하지만 인디 음악을 듣는 앤드류가 나를 가볍고 천박하다고 생각할까 봐 엘튼 존을 틀었다.
항상 의견을 말하기 전에는 사람들의 눈치를 먼저 살폈다. 자기검열이 굉장히 심했다.
며칠 전 미셸에게서 보이스 메세지가 왔다는 알림이 떴다. 심장이 철렁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랑 연을 끊고 싶다는 메세지인가?" 라는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혹시 내가 영국에서 했던 말이나 행동 또는 의도치 않게 남긴 것들을 새로 발견하고 내가 싫어져서 이제 연을 끊고 싶어하는 거면 어떡하지. 머릿속으로 재빨리 내가 뭔가 실수한 게 있는지 혹시 코를 푼 휴지가 침대 밑에 떨어져 있을 가능성은 없는지 돌려보았다. 아무것도 짚이는 게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메세지를 재생시켰다. 영국이 다시 한 번 록다운에 들어가게 되었고 보고 싶다고, 잘 지내냐고 물어보는 인사였다. 그래, 미셸이 그럴 리 없지.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인데.
글을 쓰는 일도 망설여질 때가 있다. 이게 정말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글인지, 읽는 사람들의 시간 낭비가 되지 않는지. 무엇보다 내가 글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을 때도 있다. 내 머릿속의 작가들은 다 어느 정도 인생사에 통달한, 나눌 깨달음이 있는 사람들인데 내게는 그 어떤 깨달음도 없다. 그래서 나를 위한 글을 쓰기로 했다. 기억을 더듬으며 사건의 바깥에서 의미를 새로 부여하는 과정을 즐기기 위해, 오직 나를 위해 솔직함으로 완성된 여행기를 쓰기로 했다.
이 글이 완전히 나를 드러내고, 나의 취향을 드러내고, 의견을 드러내고 그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글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