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9월 말 내 나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게 정말 내 나라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나고 자랐는데 왜 이렇게 안 맞는지.
미셸과 앤드류네를 떠나면서부터 귀국길은 시작되었다. 엑시터에서 코치를 타고 런던으로 오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귀국 전 런던에서 1박을 하며 밖에 나가 근사한 외식이라도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는데 끝까지 거지 근성이 발동해서 돈 아끼겠다고 6인실 호스텔 에서 자며 기억도 나지 않는 음식을 먹었다. 호스텔 침대의 커튼을 치고 그저 귀국한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아름다운 마지막 밤 따윈 없었다.
마침내 다음 날 히드로 공항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짐을 부치고 보안검색대를 지났다. 비록 혼자였지만 영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괜찮은 곳에서 먹고 싶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파산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허접하지도 않은 The Perfectionist Cafe 라는 곳에 들어갔다. 나 빼고 다 어른 같았고 내가 제일 허접해보였다. 괜히 주눅들지 않은 척 직원의 안내에 따라 들어갔다. 대구살 오믈렛과 톡 쏘는 에이드 스타일의 칵테일을 주문했는데 둘 다 만족도 200퍼센트, 정말 맛있었다. 눈 돌아갈 정도로 맛있는 건 짧은 인생 통틀어 몇 번 못 만나봤는데 이건 너무 맛있어서 혀를 의심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미슐랭 3스타 셰프가 하는 히드로 맛집이었다, 역시. 그렇게 한 끼에 5만 원 좀 넘게 쓰고 허무함과 행복함을 동시에 얻고 나오니 진짜 집에 갈 시간이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 밖으로 나서는 순간 한국을 다시 뜨고 싶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었다. 하늘은 온통 뿌옇고, 아파트와 타워 크레인만 보였다. 집에 도착하고도 하루종일 영국을 그리워했다. 정확히는 미셸과 앤드류 가족을 그리워했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약 두 달 후 12월 10일에 다시 프랑스 애런네 집에 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해가 지나고 1월에 미셸과 앤드류가 애런을 보러 프랑스로 올 예정이었으니 그들도 금방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 머무는 두 달 동안 1년 짜리 휴학계를 다시 냈고 이마트 지하의 피자 매장에서 한 달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영어 공부도 많이 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영어로 스트레스를 말도 못 할 만큼 받았기 때문에 다시 가면 위화감과 소외감 없이 원어민의 농담까지 알아듣고 싶었다.
피자 매장 일은 나쁘지 않았다. 바쁠 때도 있었지만 일 자체는 쉬웠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잘 대해주었다. 휴게실에는 다리를 올려놓을 수 있는 소파가 있었고 언제나 정시 퇴근이었다. 그러나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살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았다. 아무리 편한 일이라도 내가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최고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일이 아니라면 업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걸 느꼈다. 삶에 어느 정도의 안락함,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자유와 의미가 없다면 적어도 그것들을 얻기 위한 여정 위에 있어야 할 것이다.
여행 중 쓴 일기를 뒤적거리다 수지와 나이젤네 집에서 쓴 일기를 발견했다.
"워커웨이가 아니었다면 평생 알 리 없던 영국 시골 노부부의 집에서 와인과 감자칩을 먹으며 양들의 침묵을 보고 있다. 이렇게 비현실적일 수가. 이런 놀라운 경험을 위해 낯섦을 멈추지 말자. 쉴 수는 있되 절대 멈추지는 말자."
아마 양들의 침묵을 본 그 날 소파에서, 앞으로 내 인생은 한국에 매여있지 않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항상 외국에 도전하고, 새로운 걸 느끼자. 한국에 들어가 쉴 수는 있지만 절대 외국 나오는 걸 멈추지 말자고 생각했다. 한국에 온 두 달 재충전하고, 이번에는 가능하면 미국까지 가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쩐지 이미 마음 한 켠에서는 불가능할 거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미국 여행은 차를 구해서 서부에서 동부까지 다 보고 싶었는데 내 자금으로는 그럴 수 없었던데다 혼자서는 재미 없고 위험하기도 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같이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석 달 만에 돌아온 한국은 그냥 그랬다. 외국에 있는 동안 특별히 한국을 그리워했던 것도 아니었다. 이런 말 하면 너무 매정하려나, 하지만 한식을 그리워한 적도 없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그리워한 적도 없었다. 가끔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거나 모국어가 그리울 때는 있었다. 집 앞에서 버스에 올라 슬며시 잠이 들었다 깨면 40분 딱 맞춰서 역 앞 정류장에서 깨는 익숙함도 그리웠다. 하지만 한국은 한 번도 그리운 적이 없었다. 어쩌면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보다 지루함이 더 컸나 보다. 이미 내 나라가 심심해 보이기 시작하면 어떡하나 걱정이다.
12월 10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출국 전 두 달 반 동안 처리할 일들 목록을 작성하고 그 동안 못 본 사람들을 만났다. 친구 중 한 명은 불렛저널이라는 걸 소개해주었다. 격자칸이 그어진 다이어리를 사서 불렛저널을 시도해보았으나 이놈의 게으름 때문에 결국 습관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때 그린 첫 장 중 "내가 되고 싶은 사람", "내가 살고 싶은 삶". "여태까지 알아낸 나", "여태까지 알아낸 것" 장은 지금도 채워나가고 있다. 여행을 통해 느낀 큰 흐름들은 모두 여기 적어놨다. 가끔 스스로 너무나 바보 같을 때 여태까지 알아낸 것 장을 펴면 조금 위안이 된다. 적어도 약간이나마 배운 것들이 있어 내가 한 모든 일이 헛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여행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덴마크 여행도 준비했다. 교통편과 예산을 짜고, 호스트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애런네서 한 달 정도 지내며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보내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로 이동한다. 뮌헨 근처 말을 키우는 호스트와 한 달여를 지낸 후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의 포도 농가에서 2주 있기로 했다. 그 후 2월 말쯤 영국의 미셸과 앤드류네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 뒤 일정은 확정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아무것도 예약하지 않길 잘했다. 코로나 때문에 영국에서 꼼짝없이 발이 묶일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