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 펜바스 컬처뉴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은 없지만,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는 있다. 바로 그 진부한 ‘실장님‘ 캐릭터다. 한국 드라마에 빠져있는 한 외국인 친구는 ‘별에서 온 그대‘를 보고 드라마 속 주인공 김수현의 이름이 ‘도 매니저‘인 줄 알았다고 한다. 은퇴한 축구선수 박지성 역시 가끔 티비에 나오면 아직도 ‘선수‘라는 호칭이 이름 뒤에 항상 따라붙는다. 미국의 골프선수 조던 스피스가 한 대회에서 벙커샷에 실패하자 한 네티즌은 ‘조 사장, 좋은데 빼놓고 쳐‘라는 재치 있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어째서 우리에게는 이름보다 직함이 더욱 익숙한 걸까?
유력한 설은 두 가지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사실 대다수 사람들이 직함을 갖고 있지 않았다. 대하드라마 속 ‘대감‘님들은 극히 소수였고, 평민들은 이름 외 마땅한 호칭이 없었다. 따라서, 자신의 위치를 증명하고 동시에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은 바로 우리나라 특유의 군대 문화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계급이 명확한 군대에서는 직함과 역할이 실질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군대 문화가 습관이 되어 사회에 나와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설이다.
물론 명확한 직함을 갖는다는 것이 위에서 언급했듯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상기시켜주며, 특정 모임 또는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계급사회가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영향 역시 존재한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은 팀의 약점 중 하나로 선후배 간 소통 부재를 꼽았다. 당시 팀내 막내였던 이천수 선수가 히딩크 감독의 지시에 따라 맏형이자 주장이었던 홍명보 선수를 ‘명보야’라고 불렀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요즘은 기업에서도 이러한 평등 문화가 조금씩 자리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직함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도 했다. 말단 신입도 사장님께 ‘xxx 씨’라고 부르도록 아예 사내 규정으로 못 박은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현대 사회의 문화적 흐름에 맞는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서양 문화권에서도 이름 외 직함을 쓰는 경우는 일부 귀족 및 특정 직위 (예를 들자면 대통령 또는 장관)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시작은 어색할지 모르지만, 이름 보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더욱 확실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직함은 없다. 그리고 어쩌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런 작지만 인간적인 문화적 변화가 조금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조금 색다른 시각, 특별한 이야기
www.penva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