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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Dec 15. 2017

골목길에서 벗어나기

영화_카페 6(六弄咖啡馆)

벚꽃이 필 때면 항상 회자되는 유지태의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변한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믿는 그 순간의 사람만 쳐다보고 살면 언젠가 변한 상대를 만나게 된다. 아니 어쩌면 이미 달랐던 서로를 몰랐다가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길에서 서로를 만났다가 다른 길로 헤어지고 가끔 막다른 길을 만나기도 한다.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   

고등학교에서 만난 관민록과 심예는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교환하며 사랑을 키운다. 타이페이로 대학에 진학한 심예를 만나기 위해 지방대학에서 아르바이트에 열중하는 관민록. 버는 돈의 80%를 그녀와 만나는 일에 쓰는 그는 비록 장거리 연애지만 한없이 즐겁다. 하지만 서로의 꿈이 다른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고 홀로 자신을 키워온 엄마마저 잃어버린 관민록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외로움과 초라함에 좌절한다.   

영화에서 커피는 둘의 갈등을 암시하는 상징이며 인식의 차이를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다.    


난 우리카페 카푸치노가 항상 좀 달다고 생각했거든. 내 생각엔 이 단맛이 커피의 맛을 죽이는 것 같아.

그러면 쓴 맛으로 덮으면 괜찮겠네. 그럼 내가 한약 먹을 필요도 없겠네. 무거운 몸 이끌고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커피 이야기나 하고.

넌 커피를 이해 못해. 기다려봐. 내가 블랙커피를 만들어 올게. 좋은 커피는 뒷맛이 달거든.

    

시럽으로 달달해진 카푸치노가 커피의 맛을 가려버리는 일이 안타까운 심예. 그녀의 대사는 서로를 아껴주는 첫사랑의 달콤함이 이미 존재하고 있던 서로의 다른 생각, 가치관을 가리고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남자에게 커피는 그저 한약과 같은 쓴 맛일 뿐이고 힘들게 찾아온 자신보다 커피에 더 관심 있는 여자에 대한 투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커피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녀의 생각과 꿈을 이해하는 것으로 나가지 못하는 둘의 현재 지점을 보여준다. 남자는 쓴 맛으로 덮어버리면 된다고 쉽게 말하지만 여자는 그저 쓰기만 한 것이 아니라 뒷맛이 달아야 좋은 커피, 좋은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저 함께 있으며 얼굴을 맞대는 것만이 둘이 사랑하는 방법은 아니다.    



프로정신이 넘치는 카페가 시애틀에 있는데 나 거기 가고 싶거든. 나랑 같이 갈래?    

시애틀 카페는 저쪽에 있는데. 난 네가 졸업하고 돌아올 줄 알았어. 우리가 같이 카페 하나를 오픈해서 항상 같이 지낼 줄 알았어.    

난 돌아갈 계획이 없는데 외국 나가서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어.

너 변한 거 알아?

우린 원래부터 달랐어.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듯 한순간 확대된 일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면 그 이외의 소중한 것들은 놓칠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환경에서 수십 년을 한결 같이 일하며 자신을 키워준 엄마와의 마지막 약속도 지키지 못한 남자. 항상 네 곁에 있었다고, 너무나 노력했다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항변하는 남자는 정작 자신의 배경이 되어 지켜준 엄마의 곁에는 머물지 않고 홀로 쓸쓸히 떠나보내고 만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를 용서할 수가 없더라”는 그의 독백은 자신의 철없던 청춘이 어떻게 끝날지 암시해준다.       


이건 장거리 연애의 문제가 아니야. 장거리 연애는 우리 둘이 다르단 사실을 드러나게 해준 것뿐이야.

우리가 뭐가 다른데?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넌 현실을 부정했고 우리 둘의 차이를 부정했어.      


관백록의 유언을 지켜주기 위해 카페를 열게 된 죽마고우 소백지. 비 오는 밤, 카페를 찾아온 여자에게 따뜻한 카푸치노를 건네며 자신의 옛이야기를 말한다. 차마 슬픈 결말은 접어둔 채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은 얼굴로 돌아서는 그녀에게 웃음을 보내면서도 소백지의 마음 한 쪽은 쓸쓸하다.       

  


또 느낀 게 있어요. 모두 다 비슷한 청춘을 보냈구나하는 것.

그치만 오히려 다른 인생이기도 하지            


카페 6(六弄咖啡馆)는 원작 소설에서 밝히고 있는 대로 여섯가지 인생길을 의미한다.        

여섯 길의 인생: 인생, 마치 하나의 작은 골목과 같아서, 하나의 길마다 모두 다른 출구를 가지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을 갖기도 한다. 일반사람과 다른 가정에서의 삶, 이것이 내 인생의 첫 번째 길이다. 너를 사랑한 것, 이것이 내 인생의 두 번째 길이다. 운명으로 정해진 360km, 이것이 내 인생의 세 번째 길이다. 너를 잃어버린 것, 이것이 내 인생의 네 번째 길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것, 이것이 내 인생의 다섯 번 째 길이다. 다섯 번째 길에서, 모든 출구를 찾을 수 없었고, 지금 내 앞에는 전부 막다른 골목만 나타났다. 끝내야 할 때다, 잘 지내라고 말해야 할 때다, 잘 지내, 세계야, 이것이 내 인생의 여섯 번째 길이다.         


이 영화가 그저 그런 추억 팔이 영화이지만은 않은 것은 자살로 끝나버린 주인공의 결말 때문은 아니다. 사랑은 거리, 혹은 열정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랑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생각에 있다. 이미 나의 만족과 욕망은 정해진 상태에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골목 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오늘 골목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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