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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Feb 11. 2018

쓸모없거나, 홀로 잘난 삶은 없다

커피가 있는 영화속 풍경_우드잡

“우리가 한 일의 결과는 죽은 다음에 나와.”    


불만과 다행이라는 두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시험을 보았는데 그 결과를 우리가 알 수 없다니. 내가 몸으로 산 삶이 정답일지 모른 채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멋대로 살아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로 인해 끊임없이 맞는 답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 길을 남들이 비웃고 조롱한다 해도 꿋꿋하게 밀고나갈 용기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 물음에 대한 답도 죽은 뒤에 알 수 있는 것일까. 그러니 매일 채소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농업을 택할지, 미래의 성과를 확인할 수 없는 임업을 택할지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농업과 임업의 차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 이 대사로 유명한 영화, <우드잡>은 결과 따위는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고 사는 히라노 유키의 성장담을 다룬 영화다. <배를 엮다>라는 소설(행복한 사전이라는 영화로 소개됐다)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미우라 시온의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神去なあなあ日常>이 원작이다.     



대학 입시에 낙방한 히라노. 좌절하고 방황하던 히라노는 우연히 발견한 취업 홍보전단지의 표지모델에 반해 미에현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충동적 결정에 후회하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자신이 반했던 표지모델 나오키가 인근 가무사리 마을의 초등학교 선생님인 것을 알고는 1년의 연수기간을 채우기로 한다. 거칠지만 열혈남아인 벌목꾼 요키의 집에서 식객으로 지내며 도시의 허약한 청년에서 산 사나이로 변해가는 유키.    


무성한 삼나무 벌채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수입원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나무 사이의 말없는 소통,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삶, 교감을 가진 일원이 된다는 것이 갖는 의미 등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 코미디 영화는 가볍고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경쾌하지만 교훈을 전해주기도 한다.    



온통 녹색으로 가득한 이 영화에 산 정상에서 노동 후 커피 한 잔을 나누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살모사 반찬 같은 날 야생의 음식에 도시 카페에서나 즐길법 한 커피라니. 삼나무 베기 작업으로 땀이 흥건해 졌을 무렵. 나카무라 사장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고작해야 인스턴트 커피를 뜨거운 물에 휘휘 저어 마시는 게 전부일 것이라 예상되는 순간에 물을 끓이고, 핸드밀에 곱게 갈아 드리퍼를 통해 브루잉 커피를 나누는 장면은 세상의 편리함에 고개 돌리고 사는 것이 뜨거운 가슴과 아름다움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주는 듯하다. 코펠 잔에 마시는 커피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히라노. 원작에는 없는 이 설정이 유키가 가무사리 마을에 마음을 정착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브루잉 커피는 에스프레소 머신과 같은 도구를 이용해 순간적인 기체의 압력을 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원두가루와 물의 작용을 통해 커피 성분을 추출해 내는 다양한 방법들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흔히 드리퍼라는 도구를 이용해 여과시키는 방법이나 일정 시간동안 침출시킨 후 우려내는 방식, 혹은 끓이는 방식이 모두 포함된다. 흔히 핸드드립이라 불리는 일본식 용어와 푸어 오버라고 불리는 미국식 용어로 구별해 사용한다. 개인의 미세한 손동작에 의존하는지 여부, 원두의 입자나 용량, 혹은 시간에 대한 레시피의 자유로운 적용 여부 등에 따라 인위적인 구분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지만 칼로 자르듯 명확한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며 혼재되어 사용된다. 어느 방식을 택하든 개인의 선호에 따라 결정나며 자신의 취향에 근접하는 독특한 향미를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균일한 맛을 추구할 것인지 모두 개인의 몫이다.    


브루잉 커피의 좋은 점은 커피가 지닌 본연의 맛을 느끼기 좋다는 점이며 보다 손쉽게 신선한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변주가 가능하다는 점은 예측할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모습과도 닮아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다양한 브루잉 기구들이 나오고 있고 스마트폰을 활용해 여러 사람이 동일한 레시피를 공유할 수도 있어 보다 즐기기 좋은 환경이 되고 있다. 물론 손맛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는 예외겠지만.    



“수령이 20년 넘은 나무는 대개 5년마다 벌채, 즉 솎아베기를 해서 양질의 재목이 될 만한 것만 남겨둔다. 솎아베기를 하지 않으면 나무가 너무 밀집해서 서로의 생육을 방해하고 햇빛도 잘 들지 않는다....솎아베기 대상이 된 나무가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 나무의 존재로 인해 다른 나무들이 비와 바람의 직격탄을 받지 않고, 적당한 햇빛도 확보할 수 있는 데다 토양도 풍성해 진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원작에서는 나무의 일생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닮아있는지 마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주는 구절이 많다. 인간의 삶은 채소보다 길지만 나무보다는 짧은 어느 언저리에 있다. 조바심을 내기에도, 무의미하게 살아가기에도 모호한 시간이다. 어느 하나 쓸모없는 존재도 없고, 누구 하나 혼자서 잘난 삶도 없지 않은가.


이 겨울이 끝나면 광교산 정상에서 브루잉 커피 한 잔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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