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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Feb 23. 2018

아름답기보다 편안해지기를

<커피가 있는 영화 속 풍경>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소속된 집단이나 가까운 친구가 없으면 자신을 낙오자라 여기고, 관계에 필요 이상으로 힘쓴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관계에 휘둘리는 사람은 평생 다른 사람의 기준에 끌려다닐 뿐이다. 사람은 혼자일 때 성장하기 때문이다.

                                              - <혼자 있는 시간의 힘> 中    


한 대형서점의 조사결과 인문학 중 심리관련 서적 판매 비중이 2014년 4.6%였던 것이 2015년엔 48.5%로 10배 넘게 늘었고 그 중 대부분은 ‘혼자’를 강조한 심리서들이었다고 한다. 혼자 살아가기는 그 이후로도 한국사회에 ‘핫’ 한 주제다. 수많은 1인 가구의 등장도 한 배경일 수 있고 경제 불평등에 따른 실업과 소외 문제가 그 발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계발서류의 서적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은 영화를 닮은 4부작 일본 드라마다. 파편화되었으나 물음없이 살아가는, ‘혼자 된’ 인간이 어떻게 자신만의 길을 찾고 그것이 가족, 혹은 이웃이라는 공동체와 조화로울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리고 그 화법은 간섭하지 않고 속삭이며 자극적이지 않다.      


베테랑 편집자 아키코는 차분하고 배려심이 많으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여성이다. 저자에게는 진실하며 후배에게는 자상하다. “다른 이들과 뭔가를 시작하려 할 땐 자기의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상대에게 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힘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묻어가기만 하는 것보단 훨씬 즐거울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워준다.    


그런 그에게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이 다가온다. 홀로된 엄마가 꾸려가던 식당 위 집에는 자신만 덩그러니 남았다. 수많은 단골손님들로 북적이던 식당은 엄마의 손때가 묻은 곳이지만 이제 자신과는 상관없는 공간이다. 그동안 엄마와의 관계처럼.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조용히 자신의 일만 하면 된다. 마치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가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하듯. 그러고 보니 카모메 식당의 코바야시 사토미(,小林聰美), 모타이 마사코(罇真佐子)는 이번 영화에서도 주연과 조연이다.     


평소에도 손수 마련한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며 나누길 좋아하던 그녀를 유심히 본 요리책 저자인 그의 선생님은 가게를 이어나가 볼 것을 권한다. 머뭇거리던 그녀에게 마침 회사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전보조치를 취한다. “책을 만드는 현장에서 있을 수 없다면 이 회사에서 일하는 의미가 없다”는 그녀는 과감하게 가게를 리모델링하고 운영에 나선다. 술을 팔던 엄마의 식당과는 차별화된 샌드위치 가게다.     



가게의 메뉴는 햄과 치즈&치커리 샌드위치, 시금치소테&스크램블에그 샌드위치 두 종류. 재료가 되는 빵은 치아바타, 야마가타, 포카치아 빵 세종류에 미네스트로네 스프가 제공된다. 그녀의 일처리나 인간관계처럼 깔끔하고 간편한 메뉴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있다가도 때로는 갑자기 혼자가 되기도 하고, 해가 지고 조용한 시간이 다가오면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잠들고, 혼자도, 함께도 아닌 그런 생활"에 어울리는 메뉴다. 그리고 오랫동안 친분을 이어온 카페 ‘해피’와의 관계를 위해 커피는 팔지 않는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게를 꾸려가는 것. 그것이 지금 저의 결심입니다. 저는 어머니와 같은 가게를 할 수가 없네요. 사람은 모두 한사람 한사람 자신만의 길을 가면 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생각나는 것은 그대로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카페 해피의 주인 ‘마마'는 항상 신중한 아키코가 불만스럽다. 재료가 떨어져 일찍 가게 문을 닫는 것도, 저녁에는 다른 메뉴를 팔지 않는 것도. 아키코의 엄마가 운영하던 카요식당 시절을 이야기하며 다른 방식으로 운영하는 그녀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차근차근 그녀만의 가게로 탈바꿈 되며 손님이 북적이는 가게를 바라보며 그녀의 조언은 진심이었음을 드러낸다. 일손이 부족할까봐 자신의 카페를 일찍 문 닫고 아르바이트생 유키가 샌드위치 가게를 돕게 한다. 그리고 아키코에게도 카페 해피는 하루를 마감하며 자신에게 커피 한 잔으로 휴식을 선사하는 공간이 된다. 지금은 다양한 브루잉 커피가 카페에 즐비하지만 예전 일본식 핸드드립 커피 가게의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어느날 엄마의 직장 동료였던 이가 찾아오고 그녀는 자신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승려였던 아버지, 그녀를 위해 혼자 가게를 꾸려간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키코는 그녀가 굳이 알려하지 않았던 사실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고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의 사찰을 조용히 지키고 있는 남동생. 그는 타인과 타인사이의 관계가 어떠해야 할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녀에게 속삭여준다.  


넋을 잃을만큼 아름답다기보단 보고 있자면 편안해지는 정원이라고 할까요. 정원이 누군가의 넋을 잃게 할만큼 지나치게 완벽하다면 본래는 자연히 편안함을 주었을 것들이 거기에 사는 것들, 또 오게 될 것들을 도리어 지치게 해버릴지도 모르니까요.   


편집자로서의 완벽함에 집착했던 그녀가 잠재돼 있던 능력을 끄집어 내고, 다시 사람들과 감정을 교환하는 일에 익숙해지고, 그것이 결국 자유로와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영화는 이야기한다. 아마 아키코의 가게가 내놓을 메뉴들도 앞으로 더 풍성해지리라는 것을 우리는 예감할 수 있다.    


저는 너무 진지하려고만 했습니다. 이제부터 조금 불량해지렵니다. 자신이 먼저 자유로와져야 다른 이들과의 시간이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간절히 떠나려고 했던 장소에서 혼자만의 방식으로, 하지만 타인과 어울려 아름다운 봄날의 꽃을 피우는 아키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쓸쓸한 등을 쓸어주는 드라마를 보는 당신에게도 오늘 따뜻한 에그샌드위치 한 조각, 고노로 진하게 내린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권한다.    




드라마에서 유키짱이 고노드립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고노 드리퍼는 사이펀을 개발한 일본의 ‘주식회사 커피사이펀’에서 만든 제품입니다. 고노드리퍼의 원형은 지금과는 다르게 리브가 끝까지 올라간 모습이었으나 점차 변화해가며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노 드리퍼의 리브는 드리퍼 중간부터 추출구까지만 있는 형태이고 그 개수가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추출속도가 조금 느려지게 됩니다. 드리퍼 구조상 물이 한 곳에 모여 있어 보다 풍부한 향미를 추출하기에 좋습니다. 고노드리퍼는 그 구조상 밀도가 높은 곳부터 충분히 적셔주기 위해 ‘점드립’을 많이 사용하지만 커피가루를 충분히 적셔줄 수만 있다면 필수적으로 점 드립만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추출방법을 한 번 살펴볼까요?     


   


* 추출방법은 공저 <처음 시작하는 커피>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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