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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Mar 10. 2018

욕망과 사랑이 남긴 변주곡, 그리고 커피

<커피가 있는 영화 속 풍경>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

     “모든 것에 앞서 당신은 아내이자 엄마야”

     “난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모든 것에 앞서 인간이야. 당신이 그렇듯이.”     


     1879년 코펜하겐 왕립극장에서 초연된 <인형의 집> 제3막에 나오는 내용이다. 노라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거부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살아갈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여성을 상징한다. 입센의 조국 노르웨이가 속한 19세기 후반의 스칸디나비아반도는 미혼 여성은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남성이 먼저 고백하기를 기다려야 하며, 결혼은 독신 여성이 자신의 자유를 내주는 대신 남성의 보호를 받아들이는 가부장적인 제도로 유지되는 사회다.     


     1874년 스웨덴의 새로운 법으로 여성의 지위에 대한 변화가 생긴다. 결혼한 여성이 자신의 개인 재산에 대한 약간의 통제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상당한 금액의 지참금 또는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에 대한 통제권을 자신이 갖게 되었다. 대부분 상류 사회의 일원이었던 이 여성들은 같은 계층의 남성과 결혼했지만, 이전에는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결혼과 함께 가지고 온 재산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아름다운 비행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덴마크 여성 카렌은 그녀의 재산에 관심이 더 많은 스웨덴 출신의 블릭센 남작과 결혼해 아프리카 생활을 시작하기로 한다. 케냐에서 목장을 운영하기로 했지만 그녀를 여자로 느끼지 않는 블릭센은 커피농장을 덜컥 시작해 버리고, 둘의 관계는 소원해지기 시작한다. 블릭센에게 커피는 그저 가만히 있어도 돈을 가져다주는 작물일 뿐이다. 마치 자신의 부인 카렌처럼. 한편 아프리카로 오던 중 알게 된 데니스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아껴주게 되고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카렌은 남편과 이혼하고 데니스에게 결혼을 요청하지만 자기만의 자유를 지켜 온 데니스는 결혼이라는 형식으로 구속하는 카렌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설상가상 정성을 기울여온 커피마저 화재로 모두 상실한 카렌은 아프리카를 떠나기로 하고 그녀를 배웅하기로 한 데니스마저 비행 중 사망한다.     


     덴마크 여성 소설가 카렌 블릭센 (Karen Blixen・1885~1962)이 쓴 자서전을 충실하게 담은 시드니 폴락은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 백인 우월주의적 시선에 대해 고민을 크게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한 당시 여성의 사랑과 인생에 고민과 갈등, 주체적 인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에 대한 모습을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표현하고 있다. 아프리카 케냐의 광활한 사바나 초원을 배경으로 울려퍼지던 모차르트 클라리넷협주곡이 인상적이었던 영화는 우리나라에 상영될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커피 플랜테이션의 일과를 보여줘 신선했던 작품이다.     



     케냐에서 처음 커피가 재배된 장소는 1893년 인도양과 인접한 해안지방 부라(Bura)로 그 뒤 1904년 수도 나이로비 인근 키쿠유족 거주지에서 본격적인 재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속 추장이 나오는 그 부족이다. 케냐는 대부분 1500m 이상의 고원지대에서 커피를 재배하고 적절한 토양과 강수량, 기온 등 커피 재배에 이상적인 자연조건을 갖고 있다.     


     영화 속 배경 1913년은 제국주의 식민지로 커피농장이 막 세워지던 시기다. 영국인들이 커피를 영국령 동아프리카의 유치산업으로 키우면서 얼마 뒤에 이곳 커피가 유명세를 떨쳤다. 영국령 동아프리카의 커피 수출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상정 추세가 꺽이기 전까지 매년 두 배씩 증가했다. 전후 케냐의 백인 농장주들은 커피 재배를 계속 늘려갔고 영국이 깔아 놓은 철도가 이들의 사업을 촉진시켜 주었다.     



     전쟁 전 함부르크와 프랑스 르아브르, 벨기에 앤트워프와 암스테르담이 세계 커피 물량의 절반 이상을 거래했다. 독일의 커피 재배업자와 수출업자와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프리카로 눈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전쟁 발발 전 과테말라에서는 독일인 재배업자들이 커피농장의 10퍼센트를 소유, 총 수확량의 40퍼센트를 자지했고, 전체 커피콩의 80%를 장악하고 있었다.   

  

     영화에서도 추장 그런 고지대에서는 커피를 심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애당초 그녀에게 커피는 자신이 원했던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떠넘겨진 삶인 셈이다. 묘목을 심어도 열매를 수확하려면 몇 년이 걸리고 잘 자랄 수 있을지 여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카렌은 절망하지 않고 묵묵히 전진해간다. 추장을 설득해 일을 진행시키고 수확부터 세척, 건조,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 자신의 일상을 바친다. 



     계획에 없었지만 삶에 밀려온 커피는 한 순간 성공을 던져주기도 하지만 화재와 함께 절망만을 안긴 채 아프리카를 떠나게 만든다. 커피는 그녀의 사랑의 궤적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하지만 결혼과 커피 농장은 실패하지만 평생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사랑과 아프리카라는 대지를 마음속에 담아가는 카렌의 모습을 통해 돈 많은 불행한 여자가 아니라 실패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끌고 나가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영화는 전달한다. 물론 카렌이 얼마나 데니스의 진심을 이해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We're not owners here Karen, we're just passing through.”

“카렌, 우리는 이곳의 주인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에요.”     

 


     원두를 만드는 재료인 생두는 커피체리의 씨앗입니다. 커피체리에서 씨앗을 분리하고 여러 가공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우리가 생두라고 부르는 상태로 만들게 되는데 그 과정을 커피 프로세싱(Coffee Precessing)이라 말합니다. 이 과정을 어떻게 거치느냐에 따라 커피의 향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구매한 커피의 향미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지 대충 알아볼 수 있는 근거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중간 중간 보여줍니다. 카렌은 직접 자신시 결점두를 고르기도 하고 물 속에 담긴 생두에서 남아 있는 과육을 제거하기도 합니다.     



     커피 가공 과정은 크게 내추럴(Natural), 워시드(Washed), 허니(Honey) 프로세싱 등으로 나뉩니다.

     내추럴 프로세싱(Natural Processing)의 경우 외피를 벗기지 않고 건조를 진행합니다. 건조 가공(Dry Process)이라고 알려진 내추럴 프로세싱은 에티오피아에서 유래된 방법으로 생두에 과육이 남은 상태로 처리하기 때문에 건조되는 동안 커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물이 부족한 나라에서 많이 사용되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체리 그대로 건조하기 때문에 별다른 기계도 필요 없습니다. 다만 과육까지 건조를 시켜야 하기 때문에 건조기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워시드에 비해 깔끔하지는 않지만 과육까지 함께 건조시키는 덕분에 단맛과 바디감이 좋은 것이 장점으로 꼽힙니다. 커피체리의 과육에서 물려받은 과일의 향미와 일반적으로 무거운 바디감의 컵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워시드 프로세싱(Washed Processing)의 경우 커피체리를 수확한 다음 곧바로 외피를 제거하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내추럴이나 허니 프로세싱의 경우, 커피 생두를 감싸고 있는 커피체리의 맛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필수조건이지만 워시드 가공은 성장 과정에서 당분과 영양을 충분히 흡수한 생두에 100% 의존하게 됩니다. 외피를 벗기기 위해서는 커피체리 선별과정을 먼저 진행하는데, 덜 익어 노랗거나 녹색을 띠는 체리는 물론, 굵은 망사로 된 도구에 커피체리를 놓고 흔들어 크기가 작은 체리도 골라냅니다.     


     그 후 세척을 하며 물에 살짝 담가 두면 표면은 붉은 빛이 돌지만 설익은 체리들이 물 위로 동동 뜨게 됩니다. 이것 역시 골라낸 후 외피를 제거하는데 외피가 제거되면 과육(Pulp)을 제거하기 위한 펄핑(Pulping)이 진행됩니다. 물탱크에 외피를 벗긴 체리를 넣어 발효를 시키는데 커피밀도에 따라 24~48시간 정도 진행됩니다. 이때 너무 과한 발효는 발효취를 만들어 커피품질을 저하 시킬 수 있습니다. 펄핑이 끝나면 다시 세척을 하는데 7~8회 이상 씻어내고 건조를 하는 풀리 워시드(Fully Washed)와 발효과정 없이 건조를 진행하는 세미 워시드(Semi Washed)로 구분합니다. 워시드 가공을 거친 커피는 밸런스가 잘 잡혀 있고, 복합적이며 확실한 산미가 느껴집니다. 차와 같은 바디감, 시큼함, 다크 초콜릿, 꽃향기 같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허니 프로세싱(Honey Processing)은 코스타리카 농부들이 콩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시도한 것이 첫 시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외피를 벗겨낸 후 과육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건조하는 방법입니다. 허니 프로세싱에서 가장 중요하게 신경써야하는 부분은 건조인데요. 건조시간이 부족하면 과육이 스며드는 시간이 부족해 맛이 덜 배고, 과하면 곰팡내가 생성될 수 있습니다.     



     허니 프로세싱은 과육의 제거 정도에 따라서 화이트, 옐로우, 레드, 블랙 등으로 나뉩니다. 화이트는 점액질의 90%, 옐로우는 70%~80%, 레드는 20%, 블랙은 최대한 과육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대로 건조한 것입니다. 굳이 이렇게 구분하여 다양한 종류를 만들어 내는 이유는 과육을 벗기지 않을수록 맛은 더욱 진해지고 좋아지지만, 그만큼 관리하는 인력이 필요로 하기 때문인데요 생산 환경에 맞춰 만든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모든 가공과정을 거쳐 건조까지 마친 커피콩들은 탈곡기에 들어가 생두만을 골라내고 각 나라의 규정에 맞춰 등급대로 선별하면 모든 커피 프로세싱이 완료됩니다.     


     허니 프로세싱 커피는 뛰어난 단맛과 균형 잡힌 과일 베이스의 산미가 어우러집니다. 내추럴 커피보다는 플레이버가 약한 느낌이지만, 깔끔하고 분명한 캐릭터를 가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첫 등장 이후로 꾸준하게 로스터와 바리스타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 프로세싱 내용은 共著 <처음 시작하는 커피>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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