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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Jan 16. 2018

오래된 미래, 고단한 희망… 그리고

카페, 가지 않은 길을 말하다_ (1) 프롤로그

오래 전 이야기다. 유재하의 유고 앨범이 소리없이 팔려나가고 최루탄 연기가 교정을 황사처럼 떠다니던 시절. ‘새벽강’이라는 이름의 카페는 길 건너 2층에 있었다. 휴강이 생기거나 집으로 돌아가기 심란한 날이면 그 계단을 올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결 같이 흘러나오던 서양 고전음악의 무표정한 흥얼거림, 자작거리며 먼지를 긁던 LP판들의 진지함이 좋았다.   

 

대학원생쯤 되어 보이는 주인은 늘 클래식 기타를 만지작거렸다. 노란색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 로고가 선명한 앨범에서 꺼낸 드보르작과 멘델스존이 피아노 마감처리된 테크닉스 턴테이블에서 춤을 추면 창 밖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곤 했다. 다방이라는 이름이 흔하게 걸려있던 시절 탓이었을까. 커피는 대개 식사 후 디저트로 나오는 수준이었지만 그곳은 좀 달랐다. 맛이야 매일 막걸리만 마셔대던 수준이라 설명할 길이 없었지만 주방 앞 널찍한 바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볼 때마다 심장을 흥분시켰다. 알코올램프가 켜지고 시간이 지나면 플라스크에 채워놓은 물이 위쪽 커피가루와 뒤엉켰다. 한참을 흔들리다 램프를 떼면 영혼이 빠져나가듯 검은 액체와 커피가루 잔해가 분리되었다. 그 구수한 냄새는 여느 커피숍에서 나는 냄새와는 달랐다. 무조건 프림 셋 설탕 둘 하며 믹스커피처럼 타먹던 시절이었지만, 그 커피엔 폼 잡느라 설탕만 몇 스푼 넣어 마시고는 했다. 김수영과 기형도, 간혹 함민복을 이야기하기에 그 만한 곳은 없었다.    



그 요상한(?) 기구를 직접 다룰 기회가 찾아온 것은 복학을 서너 달 남겨둔 가을이었다. 여주인의 입장에서도, 손님의 입장에서도 복학생 아르바이트 점원은 구색이 맞지 않았지만 매달리다시피 사정해 일을 시작했다. 그 기구 이름이 사이펀이라는 사실도, 일본에서 사 온 것이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됐다. 커피 품질은 형편없었던 것 같다. 홀빈상태 원두를 구매하는 것도 아니고 웬만한 것은 다 판매하는 재료시장에서 커다란 통에 담긴, 서로 맛이 다른 분쇄커피를 구매해 왔다. 그리고 그곳만의 레시피로 비율을 정해 블렌딩한 것이었다. 그 한 통이 다 나가려면 두 달은 족히 걸렸으니 향이 거의 날아간 커피를 팔았던 셈이다. 매번 찌꺼기를 꺼내 버리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알코올램프 열기를 타고 오르던 물방울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취업을 하고 찾아간 자리에는 우두커니 술집이 버티고 있었다. 사이펀의 추억은 그렇게 잊혀졌다.    


커피를 내리며 사람들과 만나며 살겠다는 꿈은 아마도 그날부터 시작된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일로 먹고 사느라, 깨고 나면 희미해지는 기억 같았다. 물론 글쟁이로 사는 20년 동안에도 커피는 자주 내 곁을 맴돌았다. 철마다 생기는 카페 거리를 탐방하는 것으로, 밤마다 익숙한 주인이 주는 케냐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주문 제작한 통돌이 수동 로스터로 베란다에서 커피콩 터지는 소리를 듣는 것으로 미뤄져 왔을뿐. 그사이 유행처럼 번지던 카페 골목과 중년 여성의 사랑을 받던 핸드드립 열기는 시들해졌지만 스타벅스를 필두로 커피와 카페산업은 광풍처럼 밀려들었다. 떠밀리듯 회사를 나와 버린 나도 이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마치 예견된 일처럼 카페 문을 열기 위한 수많은 대열에 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여기에 담긴 내용들은 그 줄에 서서 무수히 던진 질문에 대한 여러 해답지들 중 하나다.



카페와 커피가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과포화를 끊임없이 이야기 하면서도 자고나면 새로운 간판이 내걸리는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수요가 있다는 것은 필요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카페는 어떤 공간을 요구받는가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해봐야 한다. 카페는 그저 커피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가게를 임차해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돈을 받는 가정식 백반집이 아니다.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찾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간에 대한 이해는 카페를 이야기하기 위한 첫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 대한 만족도를 채워주는 순간, 꿈꾸어 온 나의 카페는 실현된 미래가 될 것이다.  

  

팔색조가 되어야 하는 오늘날의 카페    


현대인에게 카페는 외로움을 피해 선택하는 고립의 공간이다. 홀로 있지 않기 위해 카페를 찾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오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노트북과 어지러운 숫자의 와이파이, 음료값을 지불하는 댓가로 편안한 자리와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행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소통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진행된다. 혼자 앉아 있지만 대화와 작업과 피드백이 이루어진다. 카페는 연결과 동시에 고립의 공간을 적절히 구현해 주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맛이라는 감각을 만족시켜 주어야 하는 공간이다. 커피는 쓰고, 식사를 마치면 으레 찾는 음료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이제 많지 않다. 자체로 독립적인 음식이며, 카페는 음미하는 공간이다. 다양한 향미와 저마다 다른 음료들의 질감을 탐닉하는 사람도 늘어간다. 맛이라는 감각에 만족을 전달할 수 없는 공간은 죽은 공간이다.    



최근 새로운 유형의 복합 공간들은 ‘큐레이션’이라는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서점은 이제 단순히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라 연관있는 다른 상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커피를 파는 것은 벌써 오래 전 일이고 맥주를 파는 서점도 등장했다. 모든 종류의 책이 아니라 특정 카테고리의 책만 판매하기도 한다. 학습서와 참고서가 지배하던 동네서점은 이제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신 세련되고 다양한 취향이 추천된다. 카페도 그 물결의 중심에 서있다. 책을 받아들이고, 또다른 소품들을 받아들이고, 음료의 지평도 넓어지고 있다. 메뉴나 공간 구성에서 편집과 큐레이션의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함께 무언가를 하는 공간, 지역 커뮤니티의 역할도 카페는 담당한다. 공동체가 같은 목적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카페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부분 카페 주인의 성향이나 기획력에 의존하고 있는 편이지만 앞으로는 지역공동체의 기능을 주도하거나 보조하는 기능까지 담당하는 것이 카페의 미래로 평가되기도 한다. 단순히 커피라는 상품만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모임과 열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획까지 제공해 줄 수 있을 때 수익이라는 목적도 함께 얻을 수 있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도들이다. 단순히 집 근처 카페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함께 하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논의한다는 것은 희망을 공유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수익형 부동산정보업체 상가정보연구소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7년 4월 현재 전국의 카페(커피전문점 및 생과일주스 전문점·전통찻집 등 식음료판매업종)는 9만1천818개로 집계되고 있다. 카페는 대표적인 생활업종 15개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2010년부터 5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세를 이어온 업종은 카페가 유일했다. 사람들이 팍팍한 삶에서 눈 돌리며 카페를 쳐다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카페 창업 열풍은 십 수년째 현재진행형이다.    


사람들은 손쉬운 방법으로 프랜차이즈 카페에 손을 내밀고는 한다. 프랜차이즈는 점포선정이나 인테리어 공사, 기물의 구매와 메뉴 개발, 종업원 채용, 재고 관리, 홍보나 마케팅 등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한 마디로 창업을 위한 진입장벽이 낮다. 브랜드가 가진 후광만으로 일정 수준의 고객유치가 가능하니 단기간에 매출 증대를 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초기 비용이 많이 들고, 본사의 지침에 따라 운영해야 한다. 특화된 운영이나 메뉴 구성이 어렵고 지역 사정에 맞춘 임기응변이 어렵다는 점을 감수해야 한다. 가장 큰 단점은 카페를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의 개성과 차별화된 콘텐츠를 보여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이점에 비해 자신이 가진 장점을 펼칠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다.    


물고기는 대개 물보다 가벼운 공기주머니, 부레를 이용해 이동을 한다. 몸의 무게를 가볍게 또는 무겁게 조절하면서 상하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먹이사슬의 상단에 위치하는 상어에게는 부레가 없다. 수평 이동은 부레가 없어도 가능하지만, 상하로 움직이는 데는 부레가 필수적이다. 결국 상어는 지느러미와 근육을 사용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대신 다른 물고기처럼 부레의 압력을 조절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상어는 깊은 곳에 있다가도 먹이를 발견한 즉시 어느 방향으로든 빠른 속도로 공격할 수 있다. 독립카페는 안전판 구실을 하는 부레(브랜드 인지도) 대신 끊임없이 움직이는 지느러미(콘텐츠)로 어떤 상황에도 대처하는 상어와 닮아있다.   

 

낭만적 밥벌이는 잊고 콘텐츠를 믿어라    


수많은 창업책과 사이트가 조언하지만 그대로 따라해 성공한 스토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모두가 처한 위치가 다르고, 고객의 성향이 제각각이며, 가진 자질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 아닐까. 문제는 바로 콘텐츠에 있다. ‘낭만적 밥벌이’는 없다. 대부분 ‘밥벌이의 지겨움’이 있을 뿐이다. 구별되고 창의적인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자아실현인 동시에 삶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기는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한 사람의 삶이 어떤 지향점을 지닐 것인가는 자신의 몫이다.    


경제적 안정과 꿈의 실현이라는 두 목표를 함께 끌고 가기 위해서는 카페도 창의적 콘텐츠 사업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3년을 채 넘기지 못하는 자영업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수 없다. 콘텐츠의 관점에서 자신의 길을 나름 탄탄하게 닦아가고 있는 바리스타 오너를 만나보기로 한 것은 이같은 고민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들이 전하는 현장감 있는 이야기는 적어도 현재의 카페가 어떠해야 할지, 미래의 카페는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서점이, 갤러리가, 자동차 회사가 커피를 판다. 전통적인 의미의 카페는 사라질 지도 모른다. 자기 주도적인 독립카페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배 오너 바리스타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성공한 프랜차이즈 업주나 카페 사장 개인의 입지전적 후일담을 담은 책은 많다. 컨설팅을 한다며 숫자를 제시하는 곳도 차고 넘친다. 이 글의 목적은 거기에 있지 않다. 커피로, 아니 카페로 나름의 길을 먼저 시작했고, 낭만이 아니라 현실을 누리고 있는 바리스타 9인을 통해 내 카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콘텐츠와 땀을 흘려야 할 것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따라서 이 책에 자금을 얼마나 모으고, 어떤 입지에 들어가서는 안 되며, 인테리어는 어떻게 하고 물건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담겨 있지 않다. 음식점 창업과 다를 바 없이 이미 상식이 되었거나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는 정보는 카페를 성공하기 위한 나만의 힘이 되지 못한다는 판단에서 다루지 않았다. 대신 카페가 나에게 얼마나 절실한 부분이었고, 다른 곳이 갖지 못한 콘텐츠를 갖추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나갔는지를 들려 준다. 커피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주로 추구하는 커피 맛을 두고 하는 이야기지만 카페 운영을 위한 노하우나 기술에 대해서도 적용될수 있다. 커피 퀄리티를 향상시키기 위해, 또는 고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취해야 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며 어느 것이 우위에 있고, 맞다 그르다를 취하기는 어렵다. 처한 상황에 따라 또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 한다. 변화무쌍한 커피 맛처럼 말이다. 문제는 그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자세와 변화를 수용한다는 유연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인간을 가르칠 수는 없으며 오로지 인간이 스스로를 탐색하도록 자기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도록 안내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어떤 안경이나 알약도 없이 말이다.

- 스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    



이 글은 졸저 <카페, 가지 않은 길을 말하다>(책굽는곰刊)에 게재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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