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뿐인숲 Jan 22. 2018

커피는 내 운명?

카페, 가지 않은 길을 말하다 (2) 왜 카페가 아니면 안 되었을까

해마다 10만㎞씩 순회공연을 다니던 클라리넷 연주자 제임스 프리먼(James Freeman)에게 2001년 위기가 찾아왔다. 갈수록 공연은 지겨웠고, 더 이상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 커피 원두와 추출 도구를 사 모을 정도로 커피에 관심이 많았던 프리먼은 교향악단을 그만두고 커피 사업에 뛰어들었다. 샌프란시스코 북쪽 오클랜드에 작은 창고를 빌려 커피 원두를 볶는 로스팅 기계를 장만하고 하루종일 자신만의 커피 개발에 몰두했다. 손수레를 빌려 그의 커피를 맛보게 하고 사람들의 관심이 이어지며 오늘날 커피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블루보틀Bluebottle의 성공신화가 막을 올린다. 커피와는 무관한 일상을 보냈던 그에게 커피는 두 번째 운명이 된셈이다. 샌프란시스코 해이즈밸리 친구 집 차고에서 첫 매장을 시작한 클래식 연주자와 같은 운명적인 만남은 아니더라도 카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어떻게 카페를, 커피를 만나게 되었고 인생 직업으로까지 선택하게 되었을까. 그저 만만해서 택한 것이 아니라 커피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를 그들 모두 가지고 있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카페를 열기 이전부터 커피와는 친숙했고, 만드는 데 익숙했으며, 나름의 스킬로 무장하고 사람들을 상대해 왔다. 추구하는 방향과 운영하는 방식이 다르고, 또 전공도 각각이며 바라보는 관점도 차이가 났지만, 우연한 기회에 커피와 인연을 맺어 꾸준히 자신의 성장판으로 구축하는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었다. 청년들이 가장 쉽게 접하게 되는 커피숍 아르바이트. 꿈의 실현은 그처럼 작은 일에서 시작되고는 한다.    



“군에서 전역한 뒤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던 학교 동기가 우연히 같이 일해 보자고 제안을 해왔다. 커피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당시 유명 커피전문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너무 열심히(?) 일한 때문이었는지 세 달 만에 매니저로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원래부터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2007년 당시만 해도 울산지역에는 커피 붐이 거의 없었다. 물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좋아했는데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워낙 좋아 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4년 정도 지나니 현실적인 문제가 느껴지더라. 보수도 그렇고 장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같이 일하던 친구와 지인의 소개로 커피사업을 진행하는 신규 법인에서 일을 하게 됐다. 결론적으로는 많이 싸우고 결국 헤어지게 됐지만 그 기간을 통해 배울 점도 있었다. 프랜차이즈를 준비하는 회사 매장관리나 고객관리 등에서 많은 것을 내 것으로 축적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같다. 과일빙수로 대박을 치기도 했지만 시즌 메뉴 부족으로 무너지게 되었는데 거기서 많이 배웠다. 매장 관리 등에서는 나름 노하우가 쌓여 있었고 당시 로스팅을 담당하던 팀장님을 통해 커피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게 됐다. 학문적인 접근에 매료되었다고 할까. 이전에는 모르고 진행했던 일을 하나하나 깨닫게 되면서 희열을 느끼게 됐다. 이후 지역 공장에서 돈을 모으며 창업을 준비했다. 한 번의 기회가 오니까 놓치기 싫었다.”

_발리다방 고민식 대표    




“스무살 때 시작한 첫 아르바이트가 커피숍에 일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스타벅스도 거의 없을 때였는데 매장에서 에스프레소 내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커피에 대해 크게 와닿는 것이 없었다. 그냥 아르바이트 직장 정도였다. 하지만 커피전문점에서 개인 매장으로 옮겨가고, 또 매니저로 일하다보니 커피와 점점 친숙하게 됐다. 커피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는 욕구가 생겼다. 하지만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보다는 실무적으로 커피를 배우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카페라는 공간에 대한 애착이 큰 편이었다.

커피에 대한 애정은 일을 하면서 서서히 생기게 됐지만 카페에 대한 동경은 그 이전부터 충만했다. 운영뿐만 아니라 고객으로 카페에 머무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그래서 카페라는 곳에서 일 하는 나의 위치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카페를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좋아하는 카페 사진을 찍고 자료를 모으기도 하면서 카페를 운영하겠다는 생각을 키워나갔다. 카페라는 공간이라면 무작정 좋아했던 것 같다. 최근 들어 좋아하는 것과 업으로 하는 것이 다르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지만.”

_TEO CAFE BITE 김태오 대표    





“처음에는 커피분야에서 좋은 회사를 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하지만 커피 시장자체가 크지 않은 탓인지 포지션을 변경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이후 바리스타로 8년의 시간을 보냈는데 점장 이상으로 올라가기는 힘들더라. 여러 가지로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갖는 한계에 부딪쳤다. 결혼 후까지 무리없이 일할 수 있을까 하고 되물어보니 어려움이 많이 예상됐다. 그래서 강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해 포지션을 바꾸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개인이나 한 회사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하더라. 강의를 하면서도 평생 이 직업을 갖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떠날 수는 없고, 카페 운영이라는 꿈이 스멀스멀 가슴으로 올라왔다. 그러다 적당한 자리가 나와서 덜컥 계약을 하게 된 것이다.”

_Avec_B 백민지 대표    



카페는 젊은 시기에 접하게 되는 아르바이트 우선순위 중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확장 일로인 프랜차이즈 카페의 번성이 주요한 원인일테고 커피에 대한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커피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서서히 사람의 마음을 진동하게 하는 묘한 매력 덕분에 오랜 시간 커피를 내리고 메뉴를 만들다보면 그 공간의 편안함에 익숙하게 된다. “바리스타로 다년간의 경험을 쌓은 이들의 최종 희망은 대부분 카페”라는 업계 관계자들의 말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접한 일이기에 나중까지 그 꿈을 간직하고 있다면 카페 업종에 맞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랜 직원생활로는 미래를 담보하기힘들다는 국내 커피, 혹은 카페시장의 영세함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가게는 꿈의 실현인 동시에 생계의 활로다.    




“당시 접했던 일본 카페문화는 현재 한국의 문화와 비슷하다.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나라도 결국 이런 방향으로 가겠구나라는 판단을 했다. 처음으로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를 접할 수있었다. COE 급 커피를 마시게 됐는데 그동안 내가 마셨던 것과 너무 달랐다. 신기하게도 쓰지가 않았다. 내게는 상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커피분야에도 여러 파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해보면 어떨까 고민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커피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한국에 돌아와 로스팅을 공부하고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일을 시작하면서 로스팅에 전념하게 됐다. 당시에는 정규 교육기관이 없어 체계적인 교육자체가 없었다. 논문자료를 훑어가며 공부하는 형태로 몰입했는데 커피에도 여러 성분이 있고 이 성분들이 어떻게 화학반응을 거치는지부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유행하던 형태와는 다르게 공부를 한 편인데, 눈으로 확인하고 포인트를 잡는 것이 아니라, 그 성분이 열반응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고 그 결과로 이런 맛을 내게 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하면 할수록 재미가 생겼다. 빠져 나올 수 없는 길에 들어서게 됐다고나 할까.”

_리버티커피로스터스 이신 대표    




“사실 무조건 라떼아트 하나에 빠져서 카페를 시작했다고 해도 틀린 건 아니다. 처음에는 커피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저 맛없게만 하지말자는 생각이었다. 어디까지나 사람을 좋아해 사람냄새가 나는 분위기가 더 좋았다. 잘 몰랐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커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흔히들 커피에 정답은 없지만 정답을 찾아가려고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기호가 저마다 다르고 워낙 사람마다 편차가 크다. 그래서인지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스페셜티 커피라고 해도 끌리지가 않았다. 라떼아트로 내 자리를 조금씩 잡게 되면서 서서히 커피 자체에도 매력을 느끼게 됐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커피 공부도 시작하게 됐다.”

_Cafe Oneway 최원재 공동대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것은 결론적으로 자영업밖에 없더라. 다른 분야에 갈 수도 없고. 식당은 어떨까 생각해봤는데 그것도 결국 기술직이더라. 주방장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경우도 많고. 음료 계통을 살피다가 카페를 생각했는데 그 당시 단순한 생각에 쉬워 보이더라. 지금 일반적인 창업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똑같이 생각한 것이다. 커피야 매니저 뽑아 그 친구한테 배우면 되지 이렇게 생각했다. 당시에는 에스프레소보다 향 커피 등이 나오던 시절이라 아주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다. 만약 지금 그렇게 했다면 망했을 것이다. 이후에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처음에는 그렇게 첫걸음을 내딛게 됐다.”

_C.RAZER COFFEE 전기홍 대표    




“바텐더가 원래 직업이었다. 쇼핑마트에서 와인행사가 열렸는데 칵테일 쇼를 하더라. 필이 꽂혔다고 하나, 곧바로 서울로 짐 싸들고 올라가서 일을 배웠다. 바텐더는 하고 싶어서 했던 일이지만 커피는 우연히 시작하게 됐다. 스물여덟살 때부터 바를 시작했다. 바는 밤늦게까지 운영을 해야 하는 고충이 있다. 남들처럼 낮에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카페자리가 나서 덜컥 계약부터 해버렸다. 천안 시내 쪽에 바를 운영 하면서 동시에 카페를 시작했다. 낮에는 카페에서, 밤에는 바에서 일하는 형태였는데 일 년 동안 그렇게 진행하니 체력적으로 엄청나게 힘들었다. 거기다 커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하다보니 문제가 많았다. 결국 문을 닫게 되는 시간이 있었고 본격적으로 커피를 공부하고 나서야 커피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커피를 하면서 모든 일이 잘 풀렸다는 것이다. 커피가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은 틀림없다.”

_마리스커피 현상무 대표    



“커피 업계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박봉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특히 내 경우에는 스물일곱이라는 나이가 되어서야 커피를 시작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다. 당시 회사 상사가 목표를 제시했고 2010년 다시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목표를 위해서였지만 예선탈락도 하고 좌절도 많이느꼈다. 그러면서 내 카페를 오픈해야 겠다는 꿈이 생기더라. 싫증을 많이내는 스타일인데 10년 넘게 이 업종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내게 맞는 일을 택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_5Brewing 도형수 대표    



커피와 늘 함께 하다 자연스레 창업까지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소위 커피에 미친(?) 사람만 카페를 열지는 않는다. 카페는 삶에 대한 대안 중 한가지다. 남아 있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커피의 세계로 이끄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깊이 있는 고민과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 우연을 필연의 후일담으로 만들어 가기도 한다. 모두가 정상의 바리스타가 아니어도 되고 그럴 이유도 없다. 유능한 축구선수가 반드시 훌륭한 감독으로 자리매김한다는 보장이 없듯이 커피세계에서의 명성이 카페사업의 성공을 견인한다는 증거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절실함이다. 한 번 접한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 말이다.    



이 글은 졸저 <카페, 가지 않은 길을 말하다>(책굽는곰刊)에 게재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오래된 미래, 고단한 희망… 그리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