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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May 31. 2018

고장난 앰프

<호주머니 속 그림일기> 첫번째 이야기

오래된 아날로그 인티 앰프가 있다. 

언젠가부터 소리를 전달해주는 부분이 망가져 

한 곡을 끝까지 들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다른 후배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수리 센터를 전전해 보았지만 고쳐질지 보장할 수 없다는 설명에 

조용히 보자기에 싸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지금은 당당했던 외모만 추억으로 남아 

디지털 기기의 성가신 간섭에도 항의하지 못한 채 세월을 견디고 있다. 


버려지지 않았음에 대한 감사와 

자신의 몸에서 전율하던 수많은 음표들에 대한 추억사이를 오가며 

침묵하고 있다.


가끔 그립다. 

낙하하는 많은 음들을 단단하게 받쳐주던 무표정이, 

레코드 바늘에 긁히는 먼지소리까지 사랑스럽게 만들어주던 자상함이, 

직접 손이 닿아야만 움직여주던 완고함까지.    


누구나 알고 있다.

언제쯤 등불을 켜야 할지 

어디쯤 차를 내려야 할지.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아직 만나지 못한 풍경이 아쉬워 

그저 머뭇거리는 것뿐. 


소풍 날 아침에는 왜 일찍 눈을 뜨고, 

자유를 마감한 일요일 저녁에는 

왜 늦은 식사를 달그락 거리게 되는지 

그 오래된 이유를 

낡은 앰프 한 대가 하루 종일 내게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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