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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Jun 11. 2018

장미의 이름

세번째 이야기

동네 주변으로 사철장미가 만개했다.

일탈을 꿈꾸는 그 무엇처럼 무더기로 핀 사철장미는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시월 어느 언저리까지

자신이 이 곳에 살아 있음을 알릴 것이다.

화무십일홍이라지만 사람 눈에야 

같은 가지에 핀 꽃이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느낄 뿐이어서

장미가 그렇게 거의 반 년을 피어도,

그래도 괜찮은 것인지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개나리, 목련, 벚꽃, 라일락, 아카시아, 장미 순으로 

골목길에서 확인할 수 있던 시절이 

그리운 것은 아니다.

그저 아무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내 관심을 허락하던

꽃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기에는

잠시라도 교대시간이 필요했다는 

투정일 뿐이다.   

개나리, 목련, 벚꽃, 라일락이 한꺼번에 피었다지는

천만의 도시에서 

서로의 얼굴과 이름과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풀섶에서 자라는 붉은 장미여
빛에 씻긴 진홍 색깔과
그 농염하고 향기로운 자태를 자랑한다만,
아니다. 내 바르게 이르거니와,
너의 불행은 목전이다.
-  Juana Inés de la Cruz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 Bernard de Morlaix    


지친 어깨로 돌아오는 길

아무리 오래 피어도

이름만 기억할 뿐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향해 자꾸 장미가 묻는다.

너는 언제 피었느냐고.    


장미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 같은 저녁

여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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