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내 인생>, 피노 누아, 그리고 코스타리카
“아저씨 여길 다 팔면 어쩌실 거예요? 와이너리 전체요.”
“왜? 그럴 분위기야?”
“그건 아닌데 만약 그러면요?”
“너도 알겠지만 난 일기예보도 사흘 이상은 안보는 사람이야.”
삶은 복잡한 것 같지만 때로 단순하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에 고통스러워하지만 내 것이 아닌 것까지 지고가려는 욕심, 혹은 무의식 때문에 고통이 시작되었다는 걸 잊고 산다. 완전한 어른이 되는 시점은 내 삶의 선택을 스스로 하는 것, 그리고 설사 좋지 못하더라도 그 결과에 웃을 수 있는 때가 아닐까.
모든 식물들은 부모가 준 모양대로 태어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에티오피아 커피를 판매하는 곳에서 원두를 구매하면 겉봉투에 특정 품종을 적어놓지 않고 그저 재래종이라고만 표기된 경우가 많다.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태생지답게 수많은 변종들이 같은 마을에도 함께 자라고 있어 일일이 그 다른 품종을 구분해 모으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품종이 확연이 달라 다른 맛을 내는 것도 아니다. 같은 형제자매들이 다채롭게 섞여 있다. 선조가 물려준 유산을 잘 이용해 새로운 자신을 만들고 있는 식물들이고 그 열매들이다. 똑같은 모양으로, 똑같이 생각하며 살기를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들이고, 인간의 욕망이다.
최근에 만난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아버지의 유산에서 출발해 어떤 와인을 만들지, 어떤 삶을 살아갈지 묻는 영화다.
‘장’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고향인 프랑스 부르고뉴로 돌아온다. 맏이라는 부담과 고향을 지키길 원하는 아버지에 반발해 집을 떠난 장은 세계를 여행하다가 아내를 만나 아들을 낳고 호주에 정착했다.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지만 현재는 불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의 병으로 와이너리를 도맡아 운영하는 둘째 ‘줄리엣’과 처가살이에 힘겨움을 토로하지만 막상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막내 ‘제레미’와의 해후는 반갑지만,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장으로 인해 서로 서운한 감정이 남아있다.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해는 풀리지만, 10년 만에 만난 삼남매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인 집과 와이너리 처리 문제로 고민에 휩싸인다.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은 삼남매의 운명을 쥐고 있는 열쇠다. 생산하는 와인의 가격보다는 부동산의 가격으로 더 가치가 있는 와이너리. 집을 포함해 와이너리 전체를 팔면 50억이 넘는 재산이지만, 소유하고 있는 와인은 내다팔아봐야 상속세도 내지 못하는 수준이다. 가족이 간직한 추억과 와인에 대한 열정이 살아 숨쉬고 있는 포도밭이지만, 현실은 이를 보존할 것인지 교환할 것인지 다그칠 뿐이다. 그리고 그 고민은 각자의 불안한 삶과 연결되어 있다.
장은 아버지의 위독 소식에 돌아왔지만, 쉽게 가족이 있는 호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와인처럼 빛나는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아버지가 그에게 부여한 삶을 어떤 식으로 상속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도 감당해야할 숙제다. 아내와의 전화 다툼을 이어가면서도 아버지의 땅을 쉽게 떠나지 못한채 농약을 치는 이웃 주인에게 화를 내며, 아들에게는 꾸준히 불어로 이야기할 것을 요구한다. 부르고뉴는 그가 어느 곳에서 살아가든지 이어나가고 싶은 스스로의 소중한 유산이다. 동생 줄리엣에게 끊임없이 아버지의 유산에서 독립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자신은 아버지에게서 떠나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그에게 가르쳐준 아버지의 기억과 숨겨진 마음에서 발길을 돌리기 쉽지 않다. 줄리엣의 도움으로 아내와 아들이 와이너리에 찾아오고, 가족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서야 장은 자신이 이야기했던 "사랑도 와인처럼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
줄리엣은 사랑스러우면서도 이해심 많은 동생이다. 아버지의 유산은 줄리엣에게도 벗어나기 힘든 그 '무엇'이다. 실질적으로 아버지의 와이너리를 이어가는 중심이지만 포도 수확시기를 놓고 확신하지 못한 채 마르셀 아저씨와 장의 의견에 갈등하는 인물이다. 수확철 일군들의 거친 말과 행동에 눈물을 보이고 마는 연약한 여인이지만 누구보다 와인과 와이너리, 가족을 사랑하는 존재다. 결국 오직 자신의 결정으로 훌륭한 와인을 만드는데 성공하고, 아버지의 와이너리를 팔지 않고 이어가는 뚝심있는 주인으로 거듭난다. 아버지가 추구하던 와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우아한 와인을 만들겠다고 ‘똑소리’나게 이야기 할 만큼 변한 바탕에는 장의 격려가 숨어있다.
“씨도 아직 갈색이 안됐어. 더 여물 대까지 기다릴래.”
“그렇게 쉬운 와인을 만들겠다고? 아빠처럼?”
막내 제레미는 형제 중 와인에 대해서는 가장 능력치가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처가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장인은 그의 와인실력을 평가절하하며 자신의 와이너리 관광사업을 관리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할 것을 강요한다. 처가살이에 힘겨워 하면서도 제레미는 정작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끌려다닌다. 하지만 장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드디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며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10년 만에 만난 삼남매가 자신들의 와인을 만들면서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답계 부르고뉴 지방 포도밭의 사계절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부르고뉴는 우리에게 익숙한 보르도와는 여러모로 구별되는 곳이다. 보르도가 카베르네 쇼비뇽, 메를로, 시라 등의 품종과 샤또로 대변되는 강인한 와인의 대병사라면 부르고뉴는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로 대변되는 섬세하고 우아한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부르고뉴는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레지옹(프랑스의 지방 행정 구역 단위. 한국의 광역자치단체 단위인 도(道)와 비슷하다. 레지옹은 다시 주(département, 데파르트망)로 나뉜다)으로 6세기 이래로 프랑스의 지배와 자치를 반복하며 프랑스 왕실의 배후세력이 되어 온 지역이다. 중심 도시는 국가대표 축구선수 권창훈이 뛰고 있는 팀이 있는 디종이다.
가장 북쪽의 샤블리(Chablis)를 시작으로 꼬뜨 드 뉘(Cotes de Nuits), 꼬뜨 드 본(Cotes de Beaune), 꼬뜨 샬로네즈(Cotes Chalonnaise), 마코네(Maconnais), 보졸레(Beaujolais)로 이어지는 포도재배지역을 가지고 있다. 북에서 남쪽으로 대략 230 km에 걸쳐있고 2만9,067 헥타르의 포도밭에서 포도를 생산하는데 프랑스 전체 AOC 포도밭의 6%에 해당한다. 1901년 법령으로 만들어진 비영리협의체인 부르고뉴와인협회(BIVB)에 따르면 브로고뉴 지역은 일 년에 대략 1억8300만 병 정도를 생산(2012~2016 5년 평균)하는데 이중 절반은 수출된다. 영화의 주무대가 되는 배경은 부르고뉴에서도 꼬뜨 드 본(Cotes de Beaune) 지역이고, 중심지인 본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마을 뫼르소, 포마르 등지에 그들의 밭이 걸쳐 있다. 줄리엣이 조카를 데리고 가는 수영장이 본 시내에 있다.
부르고뉴에서는 직접 포도를 재배하고 양조, 병입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하는 생산자로서 보르도의 샤토와 같은 개념으로 도멘(Domain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샤토가 한 동네에 대부분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는 것과 달리 도멘은 여러 마을에 걸쳐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샤또별 와인등급이 있는 보르도와 다르게 부르고뉴는 각 도멘들이 생산한 포도를 양조장으로 운반해 양조하고 병입하기 때문에 포도밭에 따른 등급표시를 채택하고 있다.
영화에서 장이 아내에게 멀리 있는 포도밭들을 가리키며 포마르(Pommard), 페리에르(Perriere′s), 뫼르소(Meursault)라고 알려주는 대목이 나오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한 포도밭이 잘게 나누어져 있는 이유로는 1789년 프랑스혁명에 따른 토지 몰수 후 재분배때 잘게 나눠진 것과 나폴레옹 칙령에 따른 균등상속 정책에 따라 분배되었기 때문으로 이야기된다. 그러고 보면 영화에서 세 남매에게 아버지의 유산이 균등 분할되는 것도 재미있는 대목이다.
영화에서는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포도밭들이 최고 등급의 밭을 제외하고 다양한 등급에 골고루 나눠져 있다. 부르고뉴의 와인등급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가장 아래 등급에 레지오날(Regional) AOC가 있다. 와인 라벨에 그냥 부르고뉴(Bourgogne)라고 되어 있는 것인데 전체 생산량의 약 60%에 해당된다. 그 위로 마을단위 등급인 빌라쥬(Village) AOC가 있다. 예를 들어 뫼르소(Meursault) AOC의 형태다.
보다 상위등급으로 프리미에 크뤼(Premier Cru) AOC가 있는데 마을 내 특별한 품질을 가진 포도밭을 지칭한다. AOC 명과는 별개로 레이블에 밭 이름을 표시한다.(제레미의 장인이 사고자 했던 포도밭 두 곳이 모두 프리미어 크뤼였다) 그리고 가장 상위 등급으론 그랑 크뤼(Grand Cru)가 있다. 부르고뉴 전체 생산량의 약 1%에 해당하는 적은 양으로 모두 33개의 밭이 그랑 크뤼로 지정되어 있다.
부르고뉴의 토양은 1억5000만년 전에 형성되었고 점토와 석회로 구성된 이회토(marl)와 쥐라기 시대에 형성된 해양 석회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회석으로 인해 부르고뉴 와인은 섬세함과 풍부함, 그리고 미네럴러티(minerality)의 특징을 갖는다. 미네럴러티는 “과일, 허브, 향신료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향기 혹은 맛이라 할 수 있다. 굵은 바다 소금이나 굴을 맛볼 때 느껴지는 바다의 맛을 떠올려 보자. 비가 내린 뒤의 길을 걸을 때 나는 냄새, 분필이나 칠판 냄새, 부서진 돌이나 자갈 냄새, 염분이나 부싯돌 냄새” 등으로 설명된다._와인 스펙테이터의 <비니에게 물어봐 (Ask Dr. Vinny)> 코너.원문(https://www.winespectator.com/drvinny/show/id/49174)
이곳의 와인은 대부분 단일 포도품종으로 양조된다. 레드는 대부분 피노누아(Pinot Noir)와 일부 가메이(Gamay) 품종으로, 화이트는 대다수 샤르도네(Chardonnay)에 일부 알리고떼(Aligoté) 등의 품종이 사용된다. 피노 누아는 다른 레드 품종들보다는 상대적으로 가볍고 맑은 느낌으로 붉은 과일의 아로마를 보여주는 편이다. 보르도에 비해 타닌은 상대적으로 적고 산도가 높으며 바디감은 덜하지만 복잡하고 다양한 풍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한번쯤 부르고뉴 피노 누아를 마셔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마을에서도 포도밭마다 토양이 다르기도 하고, 생산자에 따라서 최고와 최악의 품질이 공존하기도 한다. 아마 칠레나 호주와인의 특징적인 맛을 좋아한다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분류가 복잡하다 보니 다양한 종류를 구비하고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고 높은 가격의 피노 누아를 마시다가 실패할 확률도 높다. 어떤 와인을 마실 지는 독자들의 선택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와인영화임에도 커피라는 소재를 중요한 키워드로 집어 넣어두었다는 것이다. 내용상으로는 아주 일부지만 바로 제레미의 장인이 좋아하는 코스타리카 따라주(Costa Rica Tarrazu)가 그것이다. 장인이 최고로 치는 그 커피를 제레미는 너무나도 싫어한다. 왜 그럴까. 이유가 있다.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인식이나 수요가 거의 없던 시절 코스타리카는 그저 평범한 커피를 생산하던 곳이었다. 생산자들이 수확한 커피를 한데 모아 한꺼번에 대규모로 워시드로 가공하여 판매하였다. 품질보다는 공급양과 편리성에 만족하던 시절이었다. 이후 미국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수요 확대와 맞물려 품질 개선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소규모 가공 시설을 갖추기 시작했다. 코스타리카 커피 수출업자 프란시스코 메나가 농부들과 함께 좀 더 단맛이 좋은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펄프드 내추럴(Pulped Natural) 방식을 도입했고, ‘단맛’이라는 특징을 부각하기 위해 허니 커피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새로운 방식과 맞물려 2007년부터 시작된 코스타리카 COE대회도 성공하면서 허니 커피의 명성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점액질의 정도와 건조 과정에서 파치먼트의 색깔이 다른 것에 착안해 블랙블랙 허니(Black Honey), 레드(Red Honey), 옐로(White Honey)로 구분하게 되었다. 다른 색깔의 커피들이 커피 품평대회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하자, 허니 커피는 또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품종이나 전면적인 가공방법의 변화가 없이 커피 품질의 영향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마케팅의 승리라고 볼 수도 있다. 워시드니 펄프드 내추럴이니 하는 용어보다 허니 레드라는 표현은 무의식중에 맛있다는 느낌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표현된 커피들이 색다른 향과 맛을 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커피의 본질적인 품질에서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쟝이 제레미의 장인에게 그가 만든 와인을 비꼬며 “과일향이 아주 터지는군”이라고 말하는 데서도 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어떤 와인을 추구하는지, 얼마나 트렌드에 민감한지, 무엇으로 인간을 평가하는지. 요란한 대회를 통해 품질을 평가하고 이를 모두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현실에 대한 풍자로도 읽힌다.
원두를 만드는 재료인 생두는 커피체리의 씨앗이다. 커피체리에서 씨앗을 분리하고 여러 가공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우리가 생두라고 부르는 상태로 만들게 되는데 그 과정을 커피 프로세싱(Coffee Processing)이라 말한다. 이 과정을 어떻게 거치느냐에 따라 커피의 향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구매한 커피의 향미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지 대충 알아볼 수 있는 근거일 수도 있다. 커피 가공 과정은 크게 내추럴(Natural), 워시드(Washed), 허니(Honey) 프로세싱 등으로 나뉜다.
내추럴 프로세싱(Natural Processing)의 경우 외피를 벗기지 않고 건조를 진행한다. 에티오피아에서 유래된 방법으로 생두에 과육이 남은 상태로 처리하기 때문에 건조되는 동안 커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이 부족한 나라에서 많이 사용되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체리 그대로 건조하기 때문에 별다른 기계도 필요 없다. 다만 과육까지 건조를 시켜야 하기 때문에 건조기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과육까지 함께 건조시키는 덕분에 단맛과 바디감이 좋은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커피체리의 과육에서 물려받은 과일의 향미와 일반적으로 무거운 바디감의 컵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과육을 제거하고 점액질이 묻어있는 파치먼트째 건조하는 것을 펄프드 내추럴(Pulped Natural)이라고 한다.
워시드 프로세싱(Washed Processing)의 경우 커피체리를 수확한 다음 곧바로 외피를 제거하는 과정이 시작된다. 내추럴이나 허니 프로세싱의 경우, 커피 생두를 감싸고 있는 커피체리의 맛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필수조건이지만 워시드 가공은 성장 과정에서 당분과 영양을 충분히 흡수한 생두에 100% 의존하는 방식이다. 외피를 벗기기 전 커피체리 선별과정을 먼저 진행하는데, 덜 익어 노랗거나 녹색을 띠는 체리는 물론, 굵은 망사로 된 도구에 커피체리를 놓고 흔들어 크기가 작은 체리도 골라낸다. 그 후 세척을 하며 물에 살짝 담가 두면 표면은 붉은 빛이 돌지만 설익은 체리들이 물 위로 동동 뜨게 된다. 이것 역시 골라낸 후 외피를 제거하는데 외피가 제거되면 과육(Pulp)을 제거하기 위한 펄핑(Pulping)을 진행한다. 물탱크에 외피를 벗긴 체리를 넣어 발효를 시키는데 커피밀도에 따라 24~48시간 정도 진행된다. 이때 너무 과한 발효는 발효취를 만들어 커피품질을 저하 시킬 수 있습니다. 펄핑이 끝나면 다시 세척을 하는데 7~8회 이상 씻어내고 건조를 하는 풀리 워시드(Fully Washed)와 발효과정 없이 건조를 진행하는 세미 워시드(Semi Washed)로 구분한다. 워시드 가공을 거친 커피는 밸런스가 잘 잡혀 있고, 복합적이며 확실한 산미가 느껴진다.
허니 프로세싱(Honey Processing)은 외피를 벗겨낸 후 과육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건조하는 방법이다. 허니 프로세싱에서 가장 중요하게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건조인데 건조시간이 부족하면 과육이 스며드는 시간이 부족해 맛이 덜 배고, 과하면 곰팡내가 생성될 수 있다.
참고 : 졸저 <처음 시작하는 커피>
한 가지 더. 코스타리카는 커피 생산국에 앞서 천혜의 환경을 바탕으로 한 매력적인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화산과 온천이 있는 나라이고 다양한 동식물의 보고이며, 특히 세계적으로 희귀한 새들이 많이 서식하는 곳이다. 커피 가공(워시드 프로세싱)에 사용되는 많은 물이 수질오염을 유발한다는 문제는 꽤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환경 오음으로 관광업이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는 커피 농부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농부들은 엄격한 환경 규제에 부합하면서도 커피 농사를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가공법을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 대안 중에 하나가 허니 가공이었던 것이다.
감독은 제레미의 장인에게 코스타리카 따라주와 스파라는 두가지 키워드를 덧입힘으로써 상술에 민감하고 독선적이며,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미지를 부여한다. 실제로 이같은 행위들이 부의 획득과 겹쳐지면서 이를 거역하기 힘든 상황으로 제레미를 몰고 간다. 기대든가 독립하든가, 아니면 안정된 소득을 보장받은가 불규칙한 들판에 홀로 나갈 것인가, 고용될 것인가 자신의 일을 할 것인가. 선택의 문제는 과연 제레미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시음한 와인은 뱉는 거라고 배우지도 못했나? 꼭 어린애 같더군.”
“저도 안 뱉습니다. 우리 가족은 안 뱉어요. 할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치셨죠. 겁쟁이들이나 뱉는 거라고. 제 생각이 진짜 궁금해요? 그놈의 스파. 내가 원하지 않으면…, 제발 좀 마음대로 생각하지 마세요. 우린 취향이 달라요. 망할 놈의 따라주.”
부르고뉴 와인은 어렵고 귀찮다. 골라 마시기도, 한 병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알기도, 미묘한 차이를 가려내기도 힘들다. 그래도 내가 찾아가는 재미와 뜻밖의 즐거운 체험을 주는 와인이다. 물론 그냥 술로 머물지, 삶의 친구로 맞이할지는 사람들의 몫이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남의 잣대로 나의 삶을 재가며 고통스러워하며 사는 삶은 살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어떤' 것에 달려있다. 그리고 흔쾌히 선택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에야, 우리는 어른이 된다. 당장 마트에라도 달려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