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가 선보이기 시작하던 때. 사진을 담당하던 선배에게 그랬다.
“선배는 좋겠네. 회사에서 밀려나도 사진관 차리면 될테니.”
“속 편한 소리하네.”
그땐 둘 다 잘 몰랐다. 선배에게는 사진관을 차릴만한 자본이 어디 있냐는, 현실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었고, 내게는 사진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찍는지 알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었다.
세월은 지났고 누구나 전문가용 카메라와 렌즈를 사고, 누구나 원하는 의도에 따라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정보는 넘치고 1인 多카메라의 시대가 되었다. 이제 사진관을 차려야겠다는 무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사진으로 밥을 벌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차고 넘친다. 조작법만 알아도 전문가 소리를 듣던 시대는 이제 없다. 누구나 할 수 있어서, 아무나 행복할 수 없는 세상이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던 시절. 주변 사람이 그랬다.
“글을 잘 써서 좋겠네. 굶어죽진 않겠어.”
“속 편한 소리하네.”
그땐 둘 다 몰랐다. 글 잘 써봐야 읽어줄 사람도 별로 없다는, 내게는 현실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있었고,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그에게는 있었다. 세월이 지났고, 누구나 어디서든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시대가 되었다. 작가가 따로 없고, 누구나 작가가 되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열광한다. 아이디어와 내용이 중요하지 글쓰기의 재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더구나 책은 늘 위기고, 영상은 갈수록 ‘핫’하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감동을 줄 수 없는 세상이다.
남이 가진 것에 내가 도전할 때는 누구나라고 쓴다. ‘모두가 할 수 있다’는 느낌이다.
내가 가진 것에 남이 도전할 때는 아무나라고 쓴다. ‘모두가 하려 한다’는 느낌이다.
사람들 대부분 누구나와 아무나 사이에서 이율배반적인 삶을 산다. 살아남기 위해 하는 발버둥이다. 그런데 점점 할 수 있는 것은 넘치는데,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 난처함을 어이 할까.
아이에게 카메라 조작법을 가르쳐주다 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