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를 놓는 법
“우리의 삶이 바다를 항해하는 배라면, 가끔은 더 크고 튼튼한 배들을 비교하며 시기와 질투를 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내가 갈 곳을 잃고 표류하거나, 노를 젓는 데에만 급급해서 어디로 항해를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리곤 합니다. 내가 향하고 싶은 곳으로 이르고 싶다면, 가끔은 꽉 쥔 노를 내려놔보아요. 꽉 쥔 노를 내려놓고 바람과 파도에 몸을 맡기면, 더 자유롭고 빠르게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가 줄 수도 있습니다”
몇 주 전 명상요가 시간에 명상을 하며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가 마음 깊이 남았다. 해방촌의 작은 가정집에서 하는 요가원에서 수련을 하기 시작한 지 약 3-4개월쯤이 흘렀다. 여름이 되자 선생님은 주말에 와서 바다에서 놀고 함께 수련할 수 있는 주문진 하우스를 오픈하셨다.
8월 8일은 나의 요가 수련 3주년 기념일이기도 하고, 꽉 쥐고 있는 노를 조금 놓아 보자며 주문진 하우스로 주말 1박 2일 요가 여행을 다녀왔다.
베프도 동행하겠다고 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요가 여행을 시작했다. 서울-강릉 KTX가 개통하여 2시간이면 강릉에 도착할 수 있다. 아침 9시 KTX를 타고 강릉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주문진 하우스를 향했다. 주문진 하우스는 생각보다 깊은 산골 속에 있었는데, 강릉에 평생 사셨던 기사님도 처음 와본다고 했다. 가는 길은 발리처럼 파란 하늘에 나무와 강과 논이 끝없이 펼쳐져, 그 풍경만으로도 마음이 탁 트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을 제외한 요가 하우스 정원은 총 4명으로 1분은 이미 도착해 있었고, 나와 친구가 도착하자 요가 선생님 어머니는 직접 기른 과일들을 한 쟁반 내어주셨다.
매미소리를 들으며 과일을 먹고 하늘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자니 도시생활로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녹으며 노곤함이 밀려왔다.
오후 늦게부터는 비 예보가 있어서, 해가 떠있을 때 바다를 즐기고자 서둘러 주문진 해수욕장을 향했다. 파라솔 아래 자리를 펼치고 시원한 와인에 파스타로 비치 피크닉을 즐기고 바다수영을 하고 모래사장에 앉아 태닝도 즐기고, 5시간 정도 바다에서 원 없이 놀고 나니 손이 쪼글쪼글해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오락가락하는 날씨 덕에 바다 위에 큰 무지개가 떠 한참을 바라보고 자연이 주는 감흥에 젖어 시간 가는 줄 몰라 가져온 책은 딱 한 줄밖에 읽지 않았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긴 물놀이로 허기가 졌는데 마침 선생님 어머니가 청양고추가 들어간 호박전을 만들어주셨다. 긴 물놀이 끝에 먹는 전이라 특별히 더 맛있었다. 전으로 허기를 달래고, 큰 거실 방에 모여 가볍게 요가 수련을 했다. 수련을 마치고는 바비큐를 하고, 같이 온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밤이 저물었다.
아주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놀았던 하루였다. 외가댁이 울진이라, 여름방학이면 두 달을 꼬박 울진 앞바다에서 보냈었는데 그때의 날들이 생각났다. 건강하게 먹고, 건강하게 놀고, 그런 시간들 덕분에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 같다.
잠들기 전 스크린 타임을 체크했더니 하루 종일 핸드폰을 사용한 시간이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자연에 있으면 나를 자극시킬 다른 것들이 필요가 없게 된다. 자연, 그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자극이므로.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오대산에서 내려온 계곡물을 따라 친구와 함께 산책을 했다. 어제 와인을 3병 정도 마셨었는데, 맑은 공기 덕분인지 숙취가 하나도 없이 가뿐한 아침이었다. 아침에는 마당에 요가매트를 깔고 30분 정도 명상요가 수련을 했다.
자연에서 명상을 하고 있자니, 바람이 내 몸을 스치는 것이 그대로 느껴지고 웬갖 새소리와 벌레소리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들렸다. 바람이 몸에 스치는 순간 자연과 주파수가 맞아떨어지며, 목이 메어오기 시작하며 눈물이 계속 흘렀다. 어떤 마음 때문에 눈물이 흘렀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몸에서 무거운 무언가가 훅 하고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요가를 마치니고 어머님이 아침밥으로 칼칼하게 맛있는 닭볶음탕을 끓여놔 주셔서 푸짐하게 아침을 먹었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이틀 내내 주어진대로 먹고 놀며 시간을 보내니 몸과 마음이 아주 가뿐해졌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기 전, 스티키 리키에 자주 오셨던 성경님이 강릉으로 이사 가셔서 오픈한 디자인샵인 ‘오어즈’에 들렀다. 맘에 드는 화병과 엽서를 사고 강릉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성경님의 따뜻한 이야기들이 마음에 남아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오어즈가 무슨 뜻인가 싶어 찾아보니 ‘노 젓는 사람에게 젓는 것을 멈추고 노를 수평으로 유지하라는 구령’이라고 했다. 그제야 로고에 그려진 바다와 노가 보였다.
바다에 많은 군더더기들을 내려두고, 딱 한 마음만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노를 완전히 놓고 자유롭게 바람과 파도에 몸을 맡길 때까지 더 사랑하고, 더 요가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