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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Oct 29. 2021

설레다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설레다

1.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리다.

2.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자꾸만 움직이다.


연말까지 써야 하는 휴가가 꽤 남아있어 오랜만에 별 일정 없이 이틀 휴가를 냈다. 휴가가 다가오는데도 딱히 아무런 계획이 없다가 휴가 전날 강릉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최근 짝꿍과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을 자주 상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후보지 중 하나가 강릉이기 때문이었다.  


첨엔 혼자 다녀올까 했다가 친한 친구에게 함께 강릉에 함께 가겠냐고 물어보았더니, 친구가 마침 아무 일정이 없는 날이라며 흔쾌히 같이 다녀오자고 했다. 삼총사 중 다른 한 명인 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원래 일정이 있었지만 고민 끝에 급 여행에 조인하기로 했다.    


그렇게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다음날 강릉여행 일정이 정해졌다. 기차표를 살펴보니 오전 8시 이후는 이미 매진이어서, 새벽 6시에 강릉으로 떠나는 기차표를 냉큼 예매했다. 기차를 놓치지 않고 타려면 적어도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했기에,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일찍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했지만, 설렘이 쉬이 가라앉지 않고 연신 웃음이 세어 나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순수한 설렘이었다.


오랜만에 회사를 가지 않고 쉬는 것도 기뻤고, 평소 좋아하던 도시인 강릉에 가는 것도 기뻤고,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도 기뻤고, 날씨가 좋다고 하니 그것도 기뻤고, 가을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도 기뻤다. 그러나 수많은 이유보다 무엇보다 신나고 설렜던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계획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새벽 5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어렸을 때 소풍 가기 전 날 마냥 잠들기 전부터 들떠서 꿈에서도 강릉을 다녀오고 새벽에도 눈이 번쩍 떠졌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알람 없이 새벽에 설렘으로 새벽에 눈을 뜨는 경우는 손에 꼽히는데, 짝꿍을 만난 뒤 크리스마스날 아침이 늘 그랬던 것 같다. 짝꿍과 나는 크리스마스가 오기 몇 주 전부터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선물을  잔뜩 쌓아두고, 크리스마스날 아침 함께 선물을 풀어보는 전통이 있는데, 어떤 선물일까 궁금하여 크리스마스 날 새벽엔 알람도 없이 일어나 선물을 뜯어보고 다시 잠자리에 들곤 한다. 그래서 매일을 크리스마스 아침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일어나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매 크리스마스 때마다 하곤 했다.


새벽 5시 반쯤 서울역에서 친구들과 만나 당일치기로 강릉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별걸 하진 않았다. 새벽에 도착해 순두부를 먹고, 카페에 들어가 한참 수다를 떨다가, 볕이 좋은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잤고, 브루어리에 가서 낮술을 마시고 다시 바닷가 모래사장에 누워 낮잠을 자고, 막국수를 먹고 돌아왔다. 그렇게 짧은 하루 동안 떠나는 길부터 돌아오는 길까지 얼마나 많은 감탄사를 내뱉었는지 모른다. 기차밖에 펼쳐지는 풍경부터, 맛있는 음식에, 친절하신 택시 아저씨에, 가을 햇빛에.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또 반대로 매 순간순간이 특별했다.


뇌에서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마구 분출되어, 심장이 빨리 뛰고 잠도 오지 않는 각성에 가까운 상태를 보통 설렘이라고 부른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설렘이라는 것은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한 기쁨보다는, 예상치 못한 미지의 상황에서 오는 기대감과 기쁨에 가까운 듯하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설렘은 항상 '처음'과 함께 따라왔던 것 같다. 첫사랑, 첫 키스 등. 그런데 살아가는 시간이 쌓이면 더 이상 처음이 아닌 것들이 많아지고, 익숙해지는 것들이 자연스레 많아지다 보면 설렐 일도 자연스레 줄어드는 게 아닐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삶에서 많은 것들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고자 하면서도, 설렘은 항상 '찾아오는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설렘은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을 했을 때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설렐 일이 뭐가 있겠냐라며 시니컬했는데 설렘은  '만드는 것'이라 생각을 바꾸니 어떻게 설레는 일을 만들지?라고 설레기 시작한다. 신기한 일이다. 사전의 두 번째 의미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자꾸 움직여야 설렘도 생기나 보다.


, 하고 싶은걸 찾고자  때는 막막했는데, 설레는 일을 찾자고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하고 싶은  맞는지 아닌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대답을 못할 때가 많은데, 설레는 일은 묻지 않아다 몸이 먼저 알기 때문이다. 알람 없이 새벽에 눈이 떠지는 것처럼. 매일을 그렇게 설렘과 기대감으로 눈을  수는 없겠지만, 설렘찾아오길 기다리지 않고 직접 찾아 나서다 보면, 그렇게 가뿐한 아침을 맞이하는 날의 빈도수가  늘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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