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은 여행

파리의 기억

내가 보는 세상과 당신이 보는 세상

by Sentimental Vagabond


에펠탑에 오르는 길이었다.

반쯤 올라왔을 때였을까?

함께 오르던 친구와 내 앞으로

중고등학생처럼 보이는 금발머리 소녀가

엄마 손을 의지해 조심조심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아-주 천천히 느린 속도로.


무슨 일인가 싶어 그 소녀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소녀는 앞을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이었는데,

엄마의 도움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에펠탑을 오르고 있었다.


느리게 에펠탑을 오르는 그 소녀를 지나쳐 계단을 오르면서,

로맨틱한 파리의 풍경을 기대하고 에펠탑을 올랐던 처음의 마음과 달리

머리와 마음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저 소녀는 올라가도 아무것도 볼 수가 없을 텐데.

엄마가 너무 억지를 부린 건 아녔을까?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내가 저 소녀였다면 나는 과연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소녀는 어쩌다 앞을 못 보게 되었을까?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에펠탑 1층 전망대에 도착했다.

파리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소녀가 또다시 마음에 스쳤다.


'내가 보는 세상과 누군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나와 그 사람의 삶만큼이나 다르겠구나.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그 소녀가 힘들게 에펠탑에 올랐을 땐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도 있겠구나.


전망대에서 구경을 마친 뒤 내려가는 길에 다시 그 소녀를 마주치게 되었다.

나보다 앞서 내려가던 사람들은 소녀를 보며 박수를 쳐주거나 힘을 내라며 용기의 말을 건넸다.

사람들의 박수소리 사이로 나도 조용히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소녀가 에펠탑에 올라 어떤 걸 보았을까? 어떤 걸 느꼈을까?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에도 이따금씩 궁금해지곤 했다.


그리곤 또 소녀를 잊고 살다가

가끔씩 세상이 왜 나에게만 이럴까 싶은 순간이나

삶의 작은 벽에 부딪힌 것만 같은 순간에는

여김 없이 그 소녀의 작은 도전이 마음속에 떠오른다.


'그래, 다시 용기를 내보자. 그 소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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