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은 여행

가장 기억에 남는 우동 한 그릇

여행에서 누군가의 일상을 바라보며

by Sentimental Vagabond

매일매일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반복되는 과부화에 지칠대로 지친 나에게 도쿄에서 지내고 있던 친구가 도쿄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며 짧은 일정이라도 좋으니 잠시만 다녀가라고 했다.


아무런 생각도 영혼도 없이 그저 친구가 끊어준 티켓의 시간에 맞춰 비행기를 탔다.

여행이라기 보다는 도망이라고 표현하는게 맞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도쿄의 여름밤에 도착해

오랜만에 만나는 반갑고 고마운 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우동집이 있으니 그 곳으로 가자며 나를 재촉했다.



빗길 사이로 도착한 에비스의 어느 우동집.

막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고 있는 도쿄의 평범한 직장인들로 가득찬 곳이었다.



퇴근길이라 그런지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저마다 저녁시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친구를 기다리는 듯한 어떤 여자분이 보였다. 기다리고 있는 친구가 퇴근이 조금 늦어지는지 혼자서 머쓱하게 기다리고 있던 찰나 일행이 도착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저녁약속에 늦은 여자분은 일본사람들 특유의 친절하고 깎듯한 태도로 한참을 사과를했다.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퇴근이 늦어졌다며 약속에 늦은 이유를 설명하는 듯했다. 그렇게 잠깐 사과를 하는 사이에 약속에 늦은 여자분께 전화가 걸려왔고, 그 여자분은 급히 노트북을 꺼내서 테이블위로 펼치곤, 급하게 무언가 일처리를 하는 듯 보였다.


짧은시간이었지만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장면들이 마치 영화처럼 한장면 한대사 또렷하게 스쳐지나갔다.



도망치듯 떠나온 이곳에서도 누군가는 일상을 살고있고, 그 일상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내 모습이 겹쳐보인다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나만 그런건 아니구나'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 사람을 건너편에서 목격하면서 뜻하지 않게 깊은 위로를 받았다.



일본어가 능숙한 친구는 계란말이에 샐러드 그리고 깔끔한 튀김들과 맛있는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해주었다. 우동을 먹으며 직감했다. 이 우동이 나의 '인생우동'이 될 것이라고



접시들을 깔끔히 비우고 우산을 펼쳐 가게를 빠져나오는 길은 이상하리만큼 가벼웠다. 짧은 사이었지만 삶의 하중들이 조금은 빠져나가 삶이 좀 헐거워지고 홀가분해지는 그런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가장 기억에 남는 우동 한그릇을 비우고 친구와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위스키바를 향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