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진짜 베를리너가 되기 Vol.1
2010년 8월 31일 '베를리너'가 되겠단 꿈만으로 베를린으로 이사를 갔다.
사실은 이랬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런던에 살아보고 싶었다. 영어교과서에 나오는 빅벤이며 빨간 2층 버스. 인터넷도 흔치 않던 시절 내가 접할 수 있었던 책, 음악, TV 같은 미디어로 만나는 영국의 런던은 그야말로 꿈과 환상의 도시였다. 여러 노력 끝에 2008-2009년 1년간 런던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꿈에 그리던 도시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매일이 하고 싶은 것들로 넘쳐났고 너무 바빴다. 런던에서 살며 꼭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기타를 배우는 것이었는데, 지금까지 내 인생을 바꿔 놓은 런더너 기타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하루는 기타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런던에 살아보는 게 꿈이었었어요. 당신에게 런던이 아닌 세계에 다른 딱 한 도시에서만 살 수 있다고 하면 어디에서 살고 싶어요?'
'Absolutely Berlin'
그래서 1년 정도 준비를 하고 한 학기 동안 독일의 다른 도시인 예나(Jena)에서 교환학생을 마친 뒤 마침내 베를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약 6개월간 꿈에 그리던 '베를리너'가 되었다.
지난달 매거진 B에서 베를린을 주제로 다룬 호를 읽다가 내가 살았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과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베를린의 이야기를 짧게 정리해 보기로 했다.
1. 베를리너와 같이 살아보자.
독일에는 WG라는 특별한 주거 형태가 있다. 독일어로 Wohngemeinschaft 줄여서 WG라고 불리는 이 주거 형태는 말 그대로 Wohnene(살다) + Gemeinschaft(공동)가 합쳐진 공동주거형태, 쉽게 하우스메이트들과 함께 거주하는 형태이다. 우리나라에도 셰어하우스 같은 형태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진짜 베를리너가 되기 위해, 베를리너들이 사는 WG에 함께 살고 싶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WG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WG-Gesucht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http://www.wg-gesucht.de/ ) 이곳에서 자신의 예산, 지역, 기간들이 맞는 곳을 찾아 연락을 하고 인터뷰를 잡으면 된다.
나에게 조건이 맞는 약 20개의 WG에 메일을 썼지만 그중에서 답변이 돌아오는 곳은 3군데 그마저도 인터뷰를 보고 실패한 곳도 있었고, 살기에 내가 만족스럽지 않은 곳도 있어 점점 초조하고 서러워져만 갔다. 이러다간 이사를 원하는 날짜 전까지 WG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 WG gesucht 페이스북에 WG를 찾는다는 광고를 만들었다. 광고에는 대략 '새로운 문화를 접해보고 싶은 쿨한 베를리너 WG가 있으면 연락을 달라. 나는 맥주를 좋아하고 요리를 좋아해 함께 한국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라고 써두었다. 마침내 한 군데서 연락이 왔고,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하우스메이트 구하는데 웬 인터뷰냐 싶겠지만 공동거주를 하다 보니 서로의 라이프 패턴, 성격, 취향 등을 파악하기 위한 인터뷰는 필수이다. 비장한 각오로 인터뷰에 갔다. 4명의 WG식구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어떻게 베를린에 오게 되었는지, 베를린에서 뭘 할 건지, 생활 패턴은 어떤지, 그리고 마지막 질문.
"Magst du bier?(맥주 좋아해)"
"Nein, Ich liebe bier(아니, 나는 맥주를 사랑해)"
그렇게 베를리너와 함께 살 수 있는 WG에 들어오게 되었다.
천정이 굉장히 높고 5개의 방, 한 개의 거실, 키친, 작은 뒤뜰이 있는 정말 멋진 곳이었다.
함께 살게 된 Mitbewohner(밋베보너, 하우스메이트)들은 더 멋졌다.
우선 이 WG의 주인인 키가 2m나 되는 Bert 할아버지와 Jack이라는 늙은 강아지.
베를린에서 태어나 냉전과 통일을 경험한 정말 역사의 산증인이었던 Bert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심리치료사를 하다가 은퇴하고 WG에서 젊은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데, 여름에는 Wohnmobil(캠핑카)를 타고 여기저기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었다. 버트는 내 독일어 수업을 도맡아 해주기도 하고, 내가 아플 때는 음식도 해주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날 친딸처럼 돌봐주던 베를린 생활의 그야말로 은인과 같은 분이다.
그리고 IT회사에서 웹 개발을 하던 다니엘, 건축가인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선 서울에 놀러를 오기도 했다. 지금은 여자친구와 함께 브라질에 살고 있다.
그리고 베를린에 있는 Schauspielschule Charlottenburg(샤우스필슐레 샤론텐부르그, 우리나라로 치면 연극영화과 학교)에서 배우의 꿈을 안고 공부를 하고 있는 로라와 얀.
베를린에서 만난 나의 새로운 가족들 덕분에 한순간도 외롭고 지겨울 틈이 없었다.
넓은 창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아늑한 침대가 있던 베를린 WG의 내 방. 베를린은 당시만 해도 집값이 런던이나 파리 등 다른 유럽의 수도에 비해 굉장히 싼 편이었다. 이렇게 넓은 내 방이 한 달에 겨우 35만 원 정도. 올해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난 친구의 말을 들으니 정확히 지금 집값이 두배가 뛰었다고 한다. 여하튼, 베를린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베를리너들과 함께 살아보길 권한다.
2. 독일어를 정복하자.
독문학과를 다녔던 나에게 독일어는 늘 숙제이기도 했고, 리얼 베를리너가 되기 위해 독일어를 더 잘하고 싶었다. 독일인들과 같이 일상을 지내고 있으니 독일어를 배우기 정말 좋은 환경이기도 했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인 목표를 잡고 공부를 하기로 했다.
첫 번째 목표는 최대한 많은 연령대의 독일인들과 함께 독일어를 사용하기.
영어도 마찬가지이지만 언어를 배우며 가장 많이 느꼈던 점 중에 한 가지는 내가 어떤 사람과 대화를 주로 하느냐에 따라서 내 외국어 실력 혹은 스타일이 굉장히 많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여자 선생님이면 남학생도 여자 선생님처럼 말하게 되고, 함께 언어생활을 하는 사람이 또래 친구들이면 또래들이 쓰는 특유의 은어 같은 것 들을 많이 배우게 된다. 독일에서 생활하며 계속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친구들 하고만 언어생활을 하다 보니 젊은이들의 은어 사용 등의 문제가 심해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려 노력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끔씩 옆집의 애들과 놀기도 하고, 뜨개실을 들고 공원에 나가 햇볕을 쬐고 있는 할머니들께 뜨개질을 알려달라며 말을 붙이기도 했다. 카페나 바, 혹은 길이나 지하철, 공원에서 보이는 사람들과 얘기를 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이 되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라디오에서 들리는 독일어를 알아듣는 게 훨씬 편해졌다.
그리고 다른 목표 한 가지는 베를린을 떠나기 전까지 독일어학 자격시험 중 대학원에 원서를 쓸 수 있을 정도의 레벨인 Goethe Zertifikat B2까지 받기. 문법이나 읽기 공부는 책을 사서 스스로 공부를 하고, 라디오를 통해 듣기 실력을 높이고 구술시험이나 발음 교정은 Bert할아버지가 가장 많이 도와주셨고, 아슬아슬한 점수이긴 했지만 떠나기 전에 시험이 합격할 수 있었다.
3. WG파티엔 무조건 빠지지 말자.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사 먹는 게 워낙 비싸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WG파티가 열렸다. WG파티는 이유도, 장소도 다양했다. 누구의 생일이어서. 영화를 보기 위해서. 파스타를 먹는 파티. 할로윈이라서. 클러빙을 하기 전에 얼큰하게 취하기 위해서 하는 파티 등등
때론 우리 WG에서 열리기도 했고, 친구의 WG, 친구의 친구의 WG. 그렇게 WG파티는 일주일에 몇 번이고 열렸고, 정말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던 WG파티에는 절대 빠질 수가 없었다.
WG파티에 참석할 때는 나눠마실 술은 기본이지만 시간에 따라 음식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독일어도 서툴고 친구도 많지 않아 이야기 상대가 별로 없었던 나는 이런 WG파티가 열릴 때마다 한인마트에서 막걸리나 소주를 한 병씩 사갔다. 김밥이나 불고기 등 비교적 만들고 먹기 쉬운 음식을 만들어 가기도 했다. 새로운 술이나 먹을거리를 보면 신기해하며 이건 어떤 술이고, 어떤 음식인지, 내가 온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더 궁금해하고 말을 걸어주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4. 클럽 마테는 내 친구
클럽마테(Club Mate). 클럽 이름인가? 아니다.
마테 티 베이스에 탄산이 들어간 베를리너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료인데 학교, 공원, 카페, 바, 클럽 등 어딜 가도 이 클럽마테 노란 병이 보인다. 대체 저것이 뭐길래 이렇게 많은 이들이 마실까 궁금해 처음 맛을 보면 금방 그 중독성에 빠져 클럽 마테 없이는 삶이 연명이 안될 지경에 빠진다.
더운 날 시원한 클럽마테 한 병을 마시면 그것만큼 만족스러운 것도 없다. 또한, 클럽이나 술집에 가서 보드카 마테(Vodka Mate)를 시키면 클럽마테 뚜껑을 따서 한 모금을 마신 후 Vodka 한잔을 병에 넣어서 빨대를 꽂아 마시는데 그 중독성이 정말 무서울 정도이다.
그 중독성이 심각해지면 마트에서 노란색 궤짝으로 클럽마테를 사다 쟁여 놓고 먹는 지경에 이른다. 베를린에서 돌아와서 가장 그리웠던 것이 바로 이 클럽마테와 베를린식의 케밥 되너였다. 베를린에서 하우스메이트였던 다니엘이 한국에 오게 되어 베를린에서 필요한 게 없냐고 물었을 때도 '클럽마테'를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을 정도였다.
최근에 한 수입사에서 한국에도 클럽마테 수입을 시작해 경리단이나 이태원 일대의 바나 카페 등에서 가끔씩 보여서 베를린 향수병에 젖을 때마다 찾아가서 보드카마테를 마시곤 한다. 작년에 코엑스에서 열린 주류박람회에 갔을 때 클럽마테 부스를 보고서는 수입해주셔서 고맙다고 얼마나 인사를 했는지 모른다.
5. 베를리너로서 베를린에서 일을 해보자.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모아논 돈도 그렇다고 부모님에게 원조를 받을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독일에 가게 됐을 때도 교환학생을 하는 동안에만 부모님께서 생활비를 일정 부분 지원을 해 주는 조건으로 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베를린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은 런던에 있으면서 스타벅스에서 꽤 오랫동안 일을 했던 경험이 있어 베를린에서도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면 되겠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급이 1만 원 이상에 2주 유급휴가까지 있었던 스타벅스는 정말 고마운 곳이었다)
그래서 베를린으로 이사를 하자마자 눈에 띄는 스타벅스마다 레쥬메를 내고 한 곳에서 트라이얼을 거친 끝에 일을 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뭔가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싶던 찰나에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교환학생을 하면서 6개월 단기 학생 비자를 받았던 나는 베를린에서 다시 한번 비자 신청을 하게 되었는데,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어학 생 비자를 받았던 것이다. 아무리 컴플레인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같을 뿐. 그렇게 비자를 받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이대로 꿈꾸던 베를린 생활이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멈출 줄을 모르고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지하철에서 혼자 울고 있는 나를 보고 다 괜찮다는 눈빛으로 말없이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어서 그나마 진정이 되었다. 그래도 쉽게 멈추지 않는 눈물에 고맙다는 인사도 못 건넨 게 아직까지 마음에 걸린다.
그렇게 울며 WG에 돌아왔더니 하우스메이트 로라가 무슨 일이냐며 걱정스레 물어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밝고 긍정적인 로라는 내가 베를린에 원하는 만큼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같이 한번 생각해 보자며 나를 다독였고, 벼룩시장에서 장사는 비자 없이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며 베를린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인 마우어 파크(Mauer Park)에서 열리는 벼룩시장(Floh Markt)에서 장사를 한번 해보라고 자기도 도왔주겠다며 제안해 주었다.
로라의 말에 용기를 내서 마우어 파크 벼룩시장에서 장사를 해 보기로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옷, 신발, 가방, 액세서리 등 팔 수 있을만한 물건들은 다 모았다. 가족들에게도 부탁해 집에서 안 쓰는 오래된 옷과 액세서리들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하게 된 벼룩시장 장사는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수입이 좋았다. 검소한 생활과 빈티지를 좋아하는 베를린 사람들 때문에 벼룩시장은 매우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이런 게 과연 팔릴까 싶은 물건들도 신기할 정도로 잘 팔렸다. 심지어 친오빠가 군생활을 하며 썼던 팔각 해병모까지도 팔았다. 점차 흥정에 응대하는 방법도 배우고, 어느 길목이 장사가 잘 되는지도 파악이 되자 매 주말 장사하는 날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벼룩시장 장사가 좋았던 건 너무 재미있었다. 별의별 물건들, 물건들을 파는 셀러들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건을 팔지 않고 행위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때문에 시장은 늘 활기로 넘쳐났고 그 활기찬 시장 속에 나도 함께라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이렇게 되고 나니 스타벅스에서 일할 수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계획했던 대로 쉽게 흘러만 갔다면 몰랐을 것들, 못 만났었던 사람들, 새로운 경험. 마우어 파크에서 장사를 할 때마다 로라에게 얘기했었다.
"나 지금 진짜 베를리너가 된 기분이야"
그럴 때마다 로라는
"Auf der Mauer, auf der Mauer sitzt'ne kleine Peony(마우어에, 마우어에 작은 페오니(내 별명)가 앉아있어)"라며 오래된 독일 동요를 개사 해 불러주곤 했었다.
베를리너에서 진짜 베를리너 되기 Vol.2에서 계속
베를린에서 진짜 베를리너가 되기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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