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바튼(Port Barton)에서 보낸 나만의 축제
가끔 그런 날들이 있다. 모든걸 다 버리고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날. 일을 시작하고 3년쯤 되었을 때가 그랬다. 매일 새벽에 출근하여 새벽에 퇴근이 반복 되는 일상, 쉴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 알림. 더 이상은 견딜 수 없겠다 싶을 쯔음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 곳은 바로 필리핀 팔라완 섬에 있는 포트바튼(Port Barton)이라는 정말 작은 마을이었다. 얼마 전 이곳에 다녀 온 캐나다 친구에게 그 마을에 도착하면 '미스터 번'을 찾으란 말 한마디만을 듣고, 아무런 예약도 계획도 없이 비행기 티켓을 끊게 되었다.
포트바튼이란 곳에 가기 위해서는 조금 많이 불편한 길을 달려야 했다. 인천에서 마닐라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시 마닐라에서 팔라완섬까지 비행기를 환승하여 푸에르토 프린세사라는 정말 작은 공항에 내리게 된다.
푸에르토 프린세사 공항에 내려 마을시장에서 잠깐 끼니를 떼우고 3시간정도 버스를 타고 이름도 모를 작은 마을에 내려 다시 트라이시클을 타고 정글길을 1시간 반 정도 달리면 드디어 포트바튼에 도착하게 된다.
정글길을 달리는 내내 나름 여행도 많이 즐긴편이었고 바쁘게 살며 세상을 많이 안다고 자만했었던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을 하며, 다시 세상을 궁금해자는 다짐을 많이 했었다.
도착하고 나니 이미 포트바튼에는 어둠이 깔렸고, 보이는 데로 아무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 짐을 풀고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작은 동네를 돌아 다니며 친구가 알려준 '미스터 번'을 무작정 찾아 나섰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Do you know Mr Bun? 을 몇번 외치다가 마을 어귀에 있는 수퍼마켓에서 미스터 번의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미스터 번의 아들의 뒤를 따라 미스터 번이 사는 집을 함께 찾아 가게 되었고 마침 내 그를 만나게 되었다.
포트바튼엔 전기도 저녁 6시 이후에만 들어오고, 인터넷도 물론 찾기가 힘들다. 밤 9시쯤이 되면 온 세상이 고요하고 깜깜해 진다. 세부나 보라카이 등 처럼 필리핀에서 관광지로 이름난 곳은 절대 아니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는 유럽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마을의 주 수입원은 이런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스트하우스나 보트투어 혹은 작은 레스토랑들이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만난 미스터 번도 보트를 가지고 아일랜드 호핑이나 스노쿨링 투어, 캠핑 등을 어레인지 해 주는 일종의 투어가이드였다.
그렇게 미스터 번을 만나 아일랜드 호핑과 무인도 캠핑 스케쥴을 잡게 되었다. 포트바튼에는 총 일주일을 머무르게 되었는데 미스터 번과 약속한 하루의 아일랜드 호핑과 일박이일 무인도 캠핑을 제외 하고 나머지 날들은
책을 읽는다
햇볕을 쬔다
망고쥬스 혹은 생과일쥬스를 먹는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한다
수영을한다
산미구엘을마신다
음악을듣는다
감탄을한다
느낀다
머리에 꽃을단다
도마뱀과 함께 잔다
별을센다
이렇게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처음으로 그의 배를타고 바다를 나간 것은 스웨덴에서 온 커플과 함께한 아일랜드 호핑이었다. 그의 배를 타고 포트바튼 근처에 있는 네 개의 아일랜드를 돌아다니며 수영이나 스노쿨링을 하고 무인도에서 밥을 같이 해 먹는 코스였다.
미스터 번은 망망한 바다위를 달리는 보트에만 오르면 세상을 다 가진 사람 처럼 보였다. 뒤뚱대는 배에서 이리저리 날렵하게 항해를 할 때 그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무인도에 내려 요리를 할 때는 '정글의 법칙' 에서나 나올법한 방법으로 나무를 베어 불을 지폈고, 조리도구도 제대로 갖춰 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세상 제일 맛있는 생선구이를 내어 주었다.
그리고 그의 배를 탄 사람들 중 유일하게 수영도, 스노쿨링도 잘 못하는 나를 위해 미스터번은 친절히도 스노쿨링과 바다에서 겁먹지 않는 법을 알려주었다. 세계에서도 제일 바쁜 도시로 손꼽히는 서울에서 하루가 다르게 업데이트 되는 기술들을 받아들이며 사는 나도, 자연속으로 돌아오니 미스터 번의 도움 없인 살아 남지도 못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아일랜드 호핑 다다음 날 무인도 일박 이일에 앞서 미스터 번과 함께 마을을 돌아 다니며 간단하게 장을 봤다.
무인도에서의 일박이일 캠핑은 미스터 번의 가족들과 함께 하게 됐다. 기타를 잘치고 노래를 좋아하는 첫 째 아들 이름도 예술인 ART와 부인 마야.
무인도에서의 캠핑은 별다른 건 없었다. 그냥 배가 고프면 같이 밥을 해먹고, 심심하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해먹에 누워 낮잠을 자다가, 맥주를 마시고, 수영을한다.
밤이 되어서는 모래사장에 모닥불을 펴놓고 맥주를 같이 마시며 또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다가 쏟아지는 별을 봤다. 목적이 없이 매 순간순간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선 미스터 번이 살아온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읍내 노래대회에서 부인 마야를 처음 만나 첫눈에 반했던 이야기, 호스 같은 것을 들고 심해 깊은 곳으로 내려가 고기를 잡는 일을 하다가 수압차로 한쪽눈을 잃게 되었던 일, 고기잡이를 하다가 바다에서 상어를 만난 일, 가이드를 해준 투어객이 물뱀에 몸이 감겨 죽을 뻔한 일 등 나지막한 미스터 번의 목소리로 듣는 그의 인생 얘기는 마치 살아있는 조르바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렇게 망망대해 홀로 떠있는 작은 무인도에서 맞이 하는 한없이 까만 밤은 죽을 때 까지도 못 잊을 순간이 아닐까 한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는 이 곳에서의 일주일동안 나를 채우려고도 혹은 비우려고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고. 그 뿐이었다.
조용히 나만의 축제를 보낼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면, 이름도 낯선 그곳 포트바튼으로 떠나길 망설임 없이 권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