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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Jan 08. 2017

세 번의 서른 살

두 번째 서른 살을 맞이하며


두 번째 서른 살이다.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이 체계인 '빠른 88년생'이란 이유로 학교를 한해 일찍 들어가게 되었고, 학교에서 만난 모든 친구들은 나보다 늘 물리적인 나이로 한살이 앞서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작년에 이미 친구들과 함께 '우리의 서른'을 맞이 했다.


올 해는 나의 두 번째 서른이다.

나의 진짜 물리적인 나이로서의 서른.


그러나 내년이 되면 나의 세 번째 서른이 온다.

한국식 나이를 따르지 않는 짝과 나 사이에서 유효한 나이로서의 서른.


나에게 나이라는 것은 여러 관계 속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의 자아와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독문학을 전공한 나는 책장에 꽂아 두기만 한 채로  이 나이가 되면 읽으려고 아껴둔 책 한 권이 있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Das Dreissigste jhar)


같은 전공의 둘도 없는 단짝 친구는

자신이 작년에 읽으며 '접어놓은 페이지'들을 공유하고 싶다며 새해 며칠 전 <삼십세>를 건네주었다.




"그는 기억의 그물을 던진다. 자신을 향해 그물을 덮어씌워 스스로를 끌어올린다. 어부인 동시에 어획물이 되어 그는 과거의 자신이 무엇이었던가를, 자신이 무엇이 되어 있었나를 보기 위해, 시간의 문턱, 장소의 문턱에다 그물을 던진다. 하기야 지금껏 그는 이 날에서 저 날로 건너가며 별생각 없이 살아왔다. 날마다 조금씩 다른 일을 계획하며 아무런 악의 없이 그는 자신을 위한 숱한 가능성을 보아왔고, 이를테면 자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다 - 위대한 남자. 등대의 한줄기 빛. 철학적인 정신의 소유자" 삼십세 中



삼십세를 읽으며 나도 그와 함께 기억의 그물을 던져본다.


이십 대의 시작은 잘못 알고 있던 내 이름을 찾은 것과 함께 시작되었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러 처음 동사무소에 간 날이었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전까지 내 이름을 지어준 할아버지도 내 이름에 희를 빛날 희(熙)로 알고 있었는데, 출생신고 당시 동사무소 직원의 실수로 사람 이름에는 잘 쓰지도 않는다는 놀이 희, 놀다 희()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약 17년간 알던 빛날 희가 아니라 놀 희였다니.


가족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고 법원에 개명신고를 하여 놀이 희를 빛날 희로 다시 바꿀 것인가를 두고 회의에 돌입했다. 결과는 빛나며 사는 것보다 놀며 사는 게 더 좋은 인생인 것 같다는 결론에 따라 나는 놀 희()가 되었고, 정말 잘 놀았다. 놀아야 되는 이유도 분명했다. 그래서 가끔 부모님이 공부는 안 하고 왜 그렇게 놀러를 다니냐 하면 "이름 때문에 안 놀면 안 되나 봐요"라고 대답하면 그만이었다.


사실 '논다'는 일을 정의 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누군가에게는 술을 많이 마시는 게 노는 일일 수도 있고, 이성을 많이 만나는 것, 여행을 많이 하는 것 사람마다 논다는 것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놀 희(戲)라는 이름을 가진 내가 스스로 정의 내린 논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즐겁기 위한 모든 일'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즐거움을 위협하는 경우가 생길 때엔 "삶의 기쁨을 부정할 필요도, 행복해진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오늘날에는 향락을 두려워하는 바보들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다."라는 카뮈의 말에 위로와 용기를 얻으며 내가 스스로 즐겁기 위한 모든 일은 어느 순간에도 멈추지 않았었던 것 같다.


'어른이 진지하게 놀이하면 그것이 직업이 된다' 지금까지의 놀이가 흩어지는 소비지향적 놀이였다면, 앞으로는 누적이 되는 생산 지향적 놀이가 되자.


30/30/30 내가 9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고, 내 삶을 3등분으로 나눈다면 처음 30은 무언가를 찾아 헤매며 배우는 삶, 그다음 30은 찾아 헤매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열심히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삶, 나머지 30은 사람들과 나누며 느리게 즐기는 삶이 된다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10/10/10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생산적인 30을 3 등분하여 처음 10은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하는 고용의 형태라면, 다음 10은 나 스스로를 위한 일일 것, 그 나머지 10은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미약하게나마 보탬이 되는 일이 될 것.


그리고 하나 더, 어디로 가는가 하는 장소가 아닌, 누구와 가는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었던 나는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일에 게을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적극적이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뒤 지금 내 옆에 '남게 된' 나의 짝, 나의 친구들 그리고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지만 마음으로 돌 본적이 없었던 가족들. 새로운 만남보다는 소중한 사람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을 가지자. 소중한 사람들에게 인색하지 않고, 더 배려하며, 함께하는 시간을 더 풍성하게 할 것.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더 이상 젊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에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하다고 느낀다 스스로 젊다고 내세우는 게 어색하다." 삼십세 中



서른,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나에게


서른을 앞두고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정리하는 시간을 꽤 오랫동안 가졌었다. 그러면서  발견한 나의 가장 비겁한 모습은 시간이 꽤 오래 걸려야만 하는 일들은 도무지 시작할 엄두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수영이나 10권 정도 되는 장편 소설이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언젠가부터 즉각적인 반응과 결과가 오지 않는 것들을 멀리 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나의 서른 살을 시작하며 오늘 시작해 내일 당장 결과가 나지 않는 것들도 정말 하나 둘 시작해보자 다짐을 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하루키 같은 마음으로 매일매일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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