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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Sep 04. 2016

마티스와 몬스테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긍정의 화가와 식물

예술을 잘 알진 못하지만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인가요? 하면 '마티스'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인상파니 포비즘이니 하는 미술의 역사나 사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마티스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미술을 전공했던 친구가 소개해준 다큐멘터리 한편 때문이었다.


BBC에서 Modern Masters라는 이름으로 피카소, 마티스, 달리, 앤디 워홀 4 화가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미술사적 의의에 대해서 발자취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였는데 마티스 편의 마지막쯤에 노년의 마티스의 모습과 그가 노년의 시절을 보내면서 완성했던 남프랑스의 방스 성당을 보고서 마티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BBC Modern Masters  - Henry Matisse


1869년에 태어난 마티스가 약 이른이 되었을 즈음인 1941년에 그는 큰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유증과 노환으로 더 이상 이젤에 서서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던 마티스는 좌절하지 않고 그 유명한 종이 오리기 Cutout기법으로 작품세계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노년의 작가가 그의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 붓대신 가위로 그림을 그리며 그의 일생에 가장 평화롭고 낙천적인 새로운 그림을 쏟아낸 그 에너지가 같은 인간으로서 너무 건강해보이고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그 후부턴 그의 Cutout 작품을 볼 때면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에너지가 느껴져 나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또 하나 그의 긍정의 에너지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은 프랑스 남부 방스에 있는 로사리오 성당이다. 마티스는 죽 기직 전까지 모든 힘을 다해 방스 성당의 건축, 장식 일체를 맡아 이곳에 모든 기법과 재료를 동원하여 그의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다.


흔히 성당이나 교회의 예술이라 함은 화려함과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움을 떠올리는데 말년의 모든 열정과 집념 그리고 삶의 즐거움을 색과 빛으로 승화시켜 작업한 마티스의 성당은 너무나 따뜻하고 환해 보였다. 다큐멘터리 말미에 캐스터는 방스 성당을 찾아 그의 예술 세계에 감탄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보며 나도 죽기 전 꼭 이 성당에 가보아야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했었다.


방스에 위치한 로사리오 성당


다큐멘터리 이후 다시 마티스를 생각하게 된 건 한 식물 때문이었다. 우연히 잎이 널찍하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몬스테라를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 집에 데려 올 때는 잎이 분명 세잎 밖에 없고 내 손바닥 정도의 크기였던 것이 내 머리보다 커지게 되었다.


몬스테라의 강한 생명력은 전염성이 있는 듯 기운이 빠져 귀가를 했다가도 짙은 진녹색의 이 몬스테라를 보고 있자면 어느 열대 섬에 온 것 마냥 다시 긍정의 기운이 돋곤 한다. 사람으로 치자면 언제 만나도 긍정적인 기운을 전달받게 되는 기분 좋은 친구 같다. 보고 있으면 나도 함께 밝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아 부엌 테이블 위에 수경재배로 하나 책상 위에는 흙에 뿌리를 내린 화분으로 하나 두게 되었다.    


e, Dali and Warho


내 방 책상위의 몬스테라


사랑하면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 지는 법. 몬스테라를 키우며 몬스테라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 앙리 마티스의 스튜디오라는 한 흑백 사진 속 대형 몬스테라를 보게 되었다. 유난히 동식물을 사랑했던 마티스는 그의 스튜디오는 물론 그의 사진과 그림에서도 동식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마티스가 가장 사랑했었던 것은 몬스테라였던 것 같다.


앙리마티스의 스튜디오
노년의 마티스와 몬스테라 배경


이 사실을 알고 마티스의 작품들을 다시 들여다보니 몬스테라가 등장하지 않는 그림이 없었다. 심지어 방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도 몬스테라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Music, 1939, by Henri Matisse
La Gerbe, 1953, by Henri Matisse
테이트모던에서 열린 마티스 Cutout 전시


몇해 전 마티스 컷아웃 작품들로 만들어진 TASCHEN의 다이어리를 썼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이어리를 펼쳐보니 모든 장마다 몬스테라가 보인다. 신기한 일이었다. 몬스테라를 알기 전엔 그저 어떤 형이상학적인 무늬 혹은 잎사귀로 밖에 보이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TASCHEN 마티스 컷아웃 다이어리


라틴어의 ‘monstrum(이상하다)’의 뜻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몬스테라. 이상하리만큼 생명력이 강한 이 덩굴성의 관엽식물은 키가 20m까지나 자라고 마디마디마다 기근이 발생해 땅에 닿으면 뿌리를 내린다. 진녹색의 이 활기찬 잎은 때로 크기가 1m 정도에 이르는 것들도 있다고 한다. 굉장한 생명력이다.


마티스가 왜 몬스테라를 사랑했었나 찾아보고 싶었지만 그 이유를 결국 찾을 순 없었다. 쇠약해져 가는 노년의 마티스는 남프랑스의 햇빛만큼이나 강렬하고 생명력 있는 이 식물을 보며 분명 삶의 의지 혹은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빠져 집에 돌아왔을 때도 초록색 손바닥 모양의 몬스테라에게 인사를 받으면 다시 생기가 돌아오는 나처럼 말이다. 이제 몬스테라를 보면 마티스의 천진난만한 모습까지 겹쳐보이게 되었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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