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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Apr 22. 2018

목표가 없는 한해

레벨보다는 스펙트럼으로

나는 굉장히 목표지향적인 사람이다. 목표가 있어야지만 움직일 수가 있다.

그래서 해마다 새로운 목표들을 세우고 다이어리에는 10가지 이상의 목표들을 빼곡히 적어두곤 한다.


목표들 중에는 몇 년째 목표 리스트에 있는 다이어트와 운동부터 이직과 일정량의 책 읽기 글쓰기뿐만 아니라 가족과 남편과 친구들과 시간 보내기, 여행 따위들이 있다.


때로는 그 목표들을 실천하고 게임의 레벨업을 한 것 마냥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이루지 못한 목표 리스트들을 보며 한심하다고 스스로 자책하기도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올해 봄이 다 가도록 올 한 해의 목표라는 것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작년에 결혼과 이직 등 삶의 너무 큰 변화들이 있었던 탓일 수도 있겠지만, 하던 것을 그냥 계속하면 됐지 거창하게 무슨 목표씩이 나라며 ‘목표’라는 단어에 괜한 반감까지 생겼다.


그냥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 졌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비슷한 새해 목표 리스트를 작성하고 스스로 옭아매는 일을 관두고 싶어 졌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김하나 작가의 '인생은 레벨업이 아니다'라는 짧은 글을 읽게 됐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더 이상 '목표'라는 것을 세우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한 글에 정말로 큰 위로를 받고 공감을 하게 됐다.




사람들은 시간을 앞으로 나아가는 직선으로 상상하고, 새로운 한 해엔 레벨업을 하게 되기를 꿈꾼다.

그게 더 많은 지식이든 재산이든 직위든 체력이든 작년의 나보다 더 높은 레벨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레벨로 파악하기보다는 스펙트럼으로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예년보다 더 높은 내가 아니라 더 넓은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더 다양한 것을 보고, 그걸 바탕으로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정교하게 완성되어 세상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것들도 경험해보고, 창의적 시도지만 아직 서툴러 망한 것들도 경험해보고 싶다.

비싸고 귀한 음식도 맛보고 싶고 싸구려 음식의 그 ‘싼 맛’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에 익숙해지고 노련해지기보다는 자주 실패하더라도 모험심을 잃지 않고 싶다. 이전 경험과 비교하는 순위표를 마음속에 갖지 않고, 새로운 경험에 매번 새롭게 감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사람의 인생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꼭 나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새해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

우리는 단지 변화할 뿐이다. 새로운 해는 누구에게나 새로운 경험이다.

우리는 누구도 2018년을 미리 살아보지 못했다.

내게 주어진 새로운 시간과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더 유연하고 넓은 나로 변화하고 싶다.

그리고 더 넓어진 나야말로 결국엔 더 나아진 나일지도 모른다.

김하나 작가의 <인생은 레벨업이 아니다>





목표가 없는 올 한 해를 시작으로 해마다 레벨업하듯 써왔던 올해의 목표 리스트를 그만 쓰려한다.

대신 사랑하는 것을 더 사랑하고, 하고 싶은 것을 더 열심히 하기로.

그리고 더 높아지고 나아지는 대신에, 더 넓어지고 깊어지기로.


(작년엔 의무적으로 한 달에 한 번은 꼭 브런치를 쓰자는 목표로 열심히 썼었으나, 올해는 쓰고 싶은 것이 생길 때만 쓰기로 했다. 그랬더니 벌써 4월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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