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후에 얻은 것들

by 토비

2019년,

한동안 노 재팬 운동이 떠들썩하게 우리의 일상을 휘감았다.

중국은 THAAD 보복의 일환으로 한한령을 시행했고 중국 관련 사업을 전개하던 국내 여러 기업들의 피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2020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Covid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했고 사람들의 이동의 자유는 제한되었고 하루아침에 일상이 사라졌다.





#1. 원치 않는 방학


내가 다니던 회사는 LCC (Low Cost Carrier) 항공사에 속해 있었다.

LCC 항공사 비즈니스 모델에서 수익을 내는 주요 노선은 크게 세 가지다.


① 일본 ② 중국 ③ 동남아


노 재팬 운동과 중국의 한한령으로 주요 노선 중 두 축이 무너지면서 지속적인 대미지를 축적해 왔던 회사는 2020년 Covid19의 등장과 함께 완전히 K.O 되었다.


경영악화의 수렁에 빠진 회사는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해졌고, 임금은 몇 개월 째 체불되었다.

인사팀에 속한 우리는 정리해고를 준비하게 되었다.


HR 관점에서 접근한 구조조정의 과정은 아래 시리즈(회사에서 이별당하는 과정)에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 링크 : 클릭 (회사에서 이별당하는 과정 - 첫 번째 에피소드)




고통스러웠던 정리해고 작업을 진행하기 전, 팀장님 그리고 선배들과 나눴던 이야기



"정리해고 끝나면 우리도 같이 책임지고 나가자."



오전 느지막이 출근해서 오피스를 둘러보면 굉장히 한산하다.

구성원들이 돌아가면서 무급 휴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앞에 펼쳐진 텅 빈 이곳이 불과 한 달 전까지 사람들로 복작복작하고 활력 넘치던 그 공간과 같은 공간이 맞나 싶다.



만약 회사에도 방학이란 게 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 누구도 원치 않는 방학이었다.





#2. 바뀐 일상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정리하기 위한 기준을 짠다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내 직무에 대한 자부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땐 이 직무를 선택한 나 자신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정리해고를 비롯한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여러 준비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진행되고 언론에도 떠들썩하게 우리 회사가 나올 즈음, 선배들도 그리고 나도 하나둘씩 이직할 곳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헤드헌터에게 받은 제안들, 그리고 괜찮은 회사의 채용공고들을 보며 선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사실 이런 이슈로 조직을 나갈 준비를 하게 될 줄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이직 준비를 위해 백팩에 노트북을 넣어 근처 카페로 향한다.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엑셀에 나름의 양식을 만들어서 지원 현황들을 체크한다.

서류에 합격한 회사들은 면접에 나올만한 예비 질문들을 만들어 함께 준비한다.


경력직 면접에 가면 늘 첫 번째로 나오는 질문,


"왜 이직하시려고 하세요?"


망한 회사에 속해 있던 내게는 너무나도 쉬운 질문이었다. 내 답변을 듣는 면접관들도 더 이상의 꼬리질문 없이 무겁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공감해 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히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꽤 괜찮은 제조업 HR에 최종 합격했다.





#3. 좌절 후에 얻은 것들


이전 직장에서 수개월 째 임금이 밀렸기에 잠깐의 숨만 고르고 바로 새 직장에 출근했다.


근무 시간에는 새 직장에서 적응하는데 매진했다.

퇴근 후에는 집단으로 체당금을 받기 위해, 전 직장 사람들을 모아 오픈 채팅방을 운영했다.


적은 인원으로 시작한 채팅방에는 어느새 소문을 듣고 금세 수 백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익명의 그들 앞에서 내 신분을 오픈하고 체당금을 받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는 일은 생각보다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아마 당시의 나는 HR 담당자로서의 알량한 사명감 혹은 무거운 죄책감으로 그 일을 이끌었던 것 같다.

아무튼 몇 개월에 걸친 복잡한 절차를 거쳐 함께 참여한 이들과 함께 무사히 체당금을 수령할 수 있었다.


체당금을 받은 이름 모를 동료들의 따뜻한 감사, 고맙다는 말 한마디들이 그동안의 피로들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주니어 시절,

조직생활을 하면서 맞닥뜨릴 수많은 파도들 중에서도 쉽게 접하기 힘든 큰 파도를 온몸으로 맞아 보는 값진 경험을 했다.


비슷한 일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역시나 또 고통스럽고 괴로울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인간적으로나 일적으로나 조금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지고 또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