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내게 잔인할 때
어릴 때 우리 집은 그다지 화목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느긋하고 욕심 없는 아버지.
성격이 급하고 욕심 있는 어머니.
금전적 여유가 없는 가정.
어릴 때 나는 제법 불행했다.
나에게 가족은 그저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미래에 내가 이룰 가족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가족은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니, 성인 이후의 인생은 혼자 자유롭게 살다 가고 싶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연애는 하지만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았고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다.
나의 인생은 흑백이었고, 즐거운 일보다 힘든 일이 많았고, 태어났기에 살고는 있다만 태어나지 않을 수 있다면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낳는다면 내가 가장 사랑하게 될 나의 아이에게 이런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생각한다.
내 세상이 흑백이었던 이유는 내가 기댈 구석이 영 변변찮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X를 만나고 흑백이었던 세상이 유채색으로 바뀌었던 건 아마 내게 기댈 구석이 생겨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X와 만날 때 힘든 일이 있으면 그의 이름을 속으로 부르곤 했다. 그가 옆에 있지 않아도 그 이름을 부르고 나면 괜히 마음이 놓였다.
신을 믿는 자들은 힘이 들 때 신을 찾는다.
주여...
하나님 아버지...
나는 그를 그렇게나 믿음과 사랑으로 마음에 두었었나 보다.
그와 만나는 시간 동안 나는 가족들과 사이가 제법 가까워졌다.
자식들이 모두 장성해 직장에 취직들 하니, 우리 집은 더 이상 자식의 양육비와 집 대출금으로 허덕이지 않을 수 있었다.
금전에 여유가 생기니 예민했던 어머니도 훨씬 온화해졌다.
나도 돈을 벌고 그의 사랑을 먹으며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그와의 결혼을 꿈꾸며 가족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졌다.
욕심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던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몸부림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는 착한 아버지를 구박하는 어머니로 밖에 보이지 않던 과거였다.
그 시기의 어머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안정된 현재도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지난 일 년은 나에게 잔인한 시기였다.
사랑하는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와의 미래를 그리기 위해 직장을 퇴사했다.
나는 진로를 새로 정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건강을 잃었다.
컨디션이 영 안 좋더라니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 어디에도 이력서를 낼 수 없었다.
사랑을 잃었다.
나에게 남은 건 그 밖에 없었는데 그가 나를 두고 떠나갔다.
어설프게나마 그려놨던 미래가 백지상태가 되었다.
나는 모든 걸 다 잃었다고 생각했다.
내게 다시 흑백으로 변한 세상이 밀려들 것 같았다.
그런데 모든 걸 다 잃고 무너질 듯 서있던 내 곁에,
가족이 남았다.
나는 안쓰럽게 말라갔다.
남들은 살이 붙어 난리인데, 나는 살이 자꾸만 빠져 난리였다.
어머니는 끼니를 거르는 나의 아침을 죽어라고 챙겼다.
백수가 되니 금전적 수입원이 없었다.
조금 쉬다 취업하면 될 거라 생각했던 과거가 나를 비웃었다.
나는 수술 후 회복이 될 때까지 퇴직일로부터 반년이상 취업할 수 없었다.
수술비는 천만 원이 넘었다.
그간 모은 돈이 그리 적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유동자산은 많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수술비를 부담겠다 하셨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수술 날까지 여행도 다니고 취업 준비도 하고 운동도 하고 단기계약직이라도 나오면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나는 건강해지려고 시작한 운동에서 꼬리뼈를 다쳤고, 도수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느라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점점 더 살이 빠졌다.
어머니는 내 고통에 같이 괴로움을 느꼈다.
파스를 갖다주고,
찜질팩을 데워다 나르고,
적외선 치료기를 가져다주셨다.
별거 아닌 도움의 손길들이 나를 숨 쉬게 했다.
아프니 사람이 무기력해졌다.
일어나려 노력하는데 세상이 자꾸 나를 넘어뜨리는 것 같았다. 좌절감을 느낄 찰나에 어머니는 뭐라도 해야 한다며 자꾸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처한 상황이 빌어먹게 힘들었다.
세상에 나보다 힘든 사람 쌔고 쌨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 내 손에 박힌 가시가 아프게 느껴졌다.
세상에 나보다 힘든 사람 많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위로해보려 하다가도, 남들의 불행을 다행으로 삼으려는 내 추악함이 부끄러워 다시 우울해졌다.
내가 모든 걸 잃고 볼품이 있거나 말거나,
아파서 종종 예민해지거나 말거나,
아프다고 매일같이 누워있거나 말거나,
어머니는 계속 나를 지탱해 주셨다.
사라진 X를 대신해 더 단단한 기댈 구석이 되었다.
그는 이제 없지만 내 세상은 여전히 유채색이었다.
깨달았다.
사랑은 이런 것이다.
아무리 내가 볼품 없어져도 개의치 않는 것이다.
깨달았다.
가족은 이런 것이다.
아무리 내가 어려워져도 곁을 지켜주는 것이다.
깨달았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한다.
그가 했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이 분명 사랑이었다고 주장할 테지만,
그건 결단코 사랑이 아니었다. 그는 사랑을 모른다.
그렇기에 그와는 가족이 될 수 없다.
언젠가 그도 사랑을 알게 되는 날이 올까.
문득 궁금해지지만 이제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결혼을 하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하는 일이
나의 사랑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X는 사랑만 있으면 결혼하는 거 아니냐며, 그 외의 것들이 뭐가 중요하냐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은 뒤로 종종 아래와 고민에 빠지곤 했다.
결혼은 현실이다.
돈, 가치관, 성격, 안정성 등등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결혼은 사랑하기에 하는 행위이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사랑을 최우선으로 보는 게 맞다.
나는 여전히 이 문제에 결론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안다.
결혼은 '나'의 사랑만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이제 힘든 일이 생기면 속으로 엄마를 찾는다.
서른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이제서야 엄마를 찾고 있는 내가 낯설고 웃기다.
속으로 엄마를 찾으면 다 큰 성인이지만 아이가 되어도 괜찮다는 면죄부를 받은 기분이었다.
15년 전의 엄마가 너무 밉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것들도 변하기도 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이 제법 신빙성이 있는 모양이다.
10년 뒤의 나는 또 어떻게 변해있을까.
인생이 변하기에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거겠지.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오늘은 입원 4일 차.
내일이면 퇴원할 수 있다.
가족에게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