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의 첫 기일이다.
강아지는 갑작스럽게 와서 갑작스럽게 떠나갔다.
'친척이 키우는 강아지가 있는데 불쌍해서 못봐주겠다. 데려가서 키우겠냐'
엄마의 지인이 그렇게 물어보지 않았다면 우린 평생 모르는 사이였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가족이 된 너는 유독 강아지 같지가 않았다.
너는 꼬리를 흔들 줄 몰랐고 배도 깔 줄 몰랐다.
이미 1.5살이었는데 산책조차 해본 적 없는 듯이 바깥세상 처음 보는 것 마냥 벌벌 떨더란다.
고양이처럼 새침하던 강아지가 배를 까고 꼬리를 드물게나마 흔들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산책을 무서워하던 처음과 달리 너는 산책을 사랑하게 됐다.
엄마의 등산을 따라간 이후로는 너는 매일 등산을 가자며 졸랐다. 유독 눈치가 빨랐던 너는 외출복을 구분하는지 등산 가는 엄마를 귀신같이 알아봤다.
중학생 때 너를 처음 만났던 나는 어언 성인이 되어 대학도 가고 직장인이 됐다. 나에겐 일궈내야 할 내 삶이 있었고, 너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줄 수 없었다.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렀다. 15살을 향해 달려가던 너는 갑작스럽게 아팠고 짧으면 2주, 길어도 두 달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너에게 잠시의 시간을 내주지 못했던 날들이 후회로 다가왔다. 15살의 나는 강아지를 키우자고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엄마를 졸랐지만, 나는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강아지가 엄마를 가장 좋아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너는 컨디션이 아주 나빠졌다. 가족들은 나를 말렸지만 나는 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책을 좋아할 거라고 확신했다.
나는 네 컨디션이 조금이나마 회복되자마자 너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단지 한 바퀴를 거뜬히 돌던 너를 데리고 우리 동에서 옆동까지도 가보지 못하는 아주 짧은 산책을 매일 시켰다.
그 짧은 산책이 뭐라고 너는 아주 행복해했고 매일 저녁 내가 퇴근하길 기다렸다. 13년 함께한 세월이 내 생각보다 짧지 않았다는 듯이, 나는 그렇게 말도 못 하는 너의 마음을 잘 알았다.
며칠 산책하지 않았는데 너의 컨디션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시한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력을 되찾았다.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7살에 심장병 진단을 받고 길어야 3년이라던 강아지는 15살이 되어가도록 살아있었다. 동물병원에서도 신기해했기에 나는 너가 그렇게 특별한 강아지인 줄 알았다. 안일한 판단이었다.
그렇게 2주가 지났을까.
가족들은 조금 안심을 했고,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던 나는 한시름 돌렸다고 생각하며 추석연휴 끄트머리에 호캉스를 다녀왔다.
그 다음날 너는 내 품을 떠났다.
방심하지 말 걸.
퇴근시간이 가까워진 시간, 부모님에게서 불길한 연락이 왔다. 퇴근 시간을 10분 남겼을까. 나는 직장상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강아지가 있다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 강아지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악성종양이 터져 쌔액 쌔액 거리며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강아지는 내가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의사의 권유로 안락사하게 되었다.
너는 왜 그렇게 내가 방심했을 때 떠났을까.
나는 왜 바보같이 방심을 했을까.
그 빌어먹을 회사가 뭐라고 나는 진작에 때려치지 않았을까.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고작 5분도 안되는 산책에 기운을 차려줬던 욕심 없고 소박한 나의 강아지가 사무치게 그립다. 암흑 같은 시간들을 달려오던 내 곁에 있어주던 천사 같은 강아지가 그립다.
어리고 철없던 내가 귀찮게 굴 때도 나를 사랑해줬던 강아지가 그립고, 물리고 홀대 받으면서도 사랑해 마지않던 강아지가 그립다.
반려견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서서히 잊혀지는 일이 아니었다. 마음속에 묻은 채 평생 함께 가는 일이었다.
강아지는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나서도 한 번씩 내 꿈에 찾아왔다.
꿈에서 나는 강아지를 천국에 데려다주었고,
강아지가 내 방 베란다로 나를 보러 오기도 했으며,
발길을 끊은 지 한참 된 교회에서 지인이 건네준 핸드폰의 영상통화로 안부를 확인하기도 했었다.
강아지는 그렇게 종종 내 꿈에 찾아오더니,
자신의 생일날을 마지막으로 내 꿈에 오래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내가 수술하기 며칠 전에 강아지가 꿈에 슬쩍 스쳐 나왔다.
강아지는 내가 걱정이 됐던 걸까.
수술을 받고 나서 네 생각이 많이 나서 병실에서 몰래 혼자 울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사랑하는 강아지에게
언니한테 와줘서 너무 고마워.
언니가 방심해서 미안해.
언니는 덕분에 진짜 많이 행복했어.
언니가 뽀미 몫까지 많이 울고 그리워할 테니 너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만 지내고 있어. 언니도 언니한테 주어진 시간이 다 끝나고 나면 꼭 뽀미 찾아갈게. 부족한 나한테 와줘서 고마웠고, 부족한 나라도 사랑해줘서 행복했고, 눈치 빠른 강아지 끝까지 효녀라서 언니가 많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