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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로미 Jun 02. 2020

집으로 가는 길,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필리핀에서 두 달 살기 - 마지막 이야기

필리핀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일찌감치 비자도 연장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결국 34일 만에 필리핀 생활이 끝났다.(그리고 야무지게 시작했던 이 연재도 맹숭맹숭하게 끝나 버렸다.) 오늘도 변함없이 집안일을 하고 조카와 놀면서 일상을 보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밤 비행기로 바뀌는 바람에 거의 하루를 꽉 채워서 보낼 수 있었다. 도시 봉쇄령으로 거의 모든 음식점이 문을 닫았지만 마냥 놀 수만은 없기 때문에 음식점도 배달 위주로 바뀌고 있었다. 음식점뿐만 아니라 커피숍도 슬슬 배달이 풀리기 시작했고 언니와 내가 좋아하는 '팀홀튼'이라는 커피숍도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언니가 오래전에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시럽이 잔뜩 들어간 커피를 한 잔 마시면 갑자기 피로가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봉쇄령으로 계속 믹스 커피에 의존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바리스타가 내린 커피를 마실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욕심을 부려 가장 큰 사이즈로 주문을 했다. 평소 불면증이 있기 때문에 커피를 과하게 마시면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그 많은 양을 다 입 안에 털어놓았다. 


언니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전리품을 선사하기 위해 저녁 식사 후에 편의점으로 향했고 나는 조카와 함께 마지막 노을을 봤다. 언니 집 거실은 전체가 통유리로, 저녁 6시가 되면 하늘이 서서히 분홍색으로, 보라색으로, 주황색으로 변하는데 단순히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나와 조카는 그 노을을 참 좋아했기 때문에 항상 도화지에 그리는 하늘은 분홍색이나 주황색으로 색칠했다. 이제 그 노을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이미 검게 변한 하늘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언니가 가득 채워준 캐리어를 끌고 기사가 오기 전까지도 조카와 함께 마지막 색칠공부를 끝냈다.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3번 정도의 검열이 있었고 다행히 현지인인 기사의 설명과 미리 인쇄한 항공권으로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다. 평소와 달리 길이 막히지도 않았다. 역시 공항에도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고 대부분의 항공사, 특히 저가항공사는 거의 결항이 되었다. 마지막까지 사회적 거리 유지를 하며 체크인을 하려는데 어라? 내가 선택한 좌석이 아니었다. 10A! 다닥다닥 붙은 일반석과 다르게 내 옆에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아마도 오버부킹이 된 것 같았고 정말 운이 좋게 좌석이 변경되어 두 다리를 쭉 뻗고 갈 수 있었다. 한 번도 누울 수 있는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탈 수 없을 것 같아서 신나게 사진도 찍었다. 여행 갈 때마다 장난감 같은 아기자기한 기내식을 먹는 것을 좋아했지만 오늘은 포기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조심을 했는데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다. 자리는 정말 쾌적하기 그지없었지만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새벽 비행기가 너무 추웠는지 목도 갑자기 아픈 느낌이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새벽 4시경 한국에 도착했고 엄마가 마중을 나오기로 한 상황이었다. 이미 출국한 사람들이 검열에 대해 남긴 글들이 많았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집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증상이 없는 것으로 체크를 해야 바로 통과가 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당시 목이 너무 아팠기 때문에 정직하게 인후통에 체크를 했다. 열이 없고 정상 체온이기 때문에 코로나 검사 대상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해외 유입자로 인한 코로나 확진자가 늘고 있었고 최대한 조금이라도 증상이 있으면 검사를 하는 것으로 바뀐 것 같았다. 그리고 자차로 귀가를 하는 경우 집에서 검사 결과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자가 격리를 어기는 사람이 많아지자 방침이 바뀌어서 시설 격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계획과 다른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이참에 검사를 받고 확실히 아니라는 결과를 받으면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당시 확진자가 가장 많아지고 있던 유럽, 미국, 캐다나 발 귀국자와 함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거리 유지도 잘 되지 않았다. 얼마나 심각한 증상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침 소리가 새어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서로가 서로를 잠재력 바이러스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9시, 안산의 격리 시설로 이동하게 되었고 간단한 방역 교육을 받고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버스는 1시간이 지나도 출발하지 않았고 밀폐된 공간에서 대기하는 것은 모두에게 불안감을 주었다. 한 명이라도 걸리면 모두 위험해지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곳이 격리 장소로 지정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고 허가가 나오기까지 복잡한 절차가 이어지며 대기가 길어진 것 같다. 불안감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결국 12시가 되어서야 시설에 도착했다. 언니 집에 있는 생필품을 사용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여행용품도 없었다. 다행히 쇼핑몰에서 샘플로 준 손가락 마디 하나의 비누 조각이 있어서 이걸로 겨우 손과 얼굴을 씻을 수 있었다. 치약은 없었지만 가글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칫솔에 묻혀서 양치를 하며 찝찝함을 조금이나마 거둘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샤워도 하고 싶었지만 이 곳이 시설로 선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찬물만 나오고 난방도 되지 않는 상태였다. 캐리어에서 옷을 꺼내 최대한 많이 껴입고 거의 13시간 공복 후에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고 나니 긴장이 풀려 잠이 들었다. 자다 깨면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또 한 번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렸고 오후 6시경 다시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오니 당당히 리무진 버스에 탈 수 있었으나 그 리무진 버스 안에서도 행여 감염이 되지 않을까 불안감을 떨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밤 9시 반이 되어서야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필리핀에서 한국에 오는 것보다 인천에서 집으로 오는 시간이 더 길다니. 따뜻한 물에 몸을 조금 녹이고 나니 잔뜩 긴장했던 어깨의 근육도 좀 풀리는 듯하다.  


집순이 생활에 익숙해져서 다행히 2주간의 자가격리는 넷플릭스와 함께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다행히 격리가 끝나자마자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고 급여도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언제 할 수 있을지 몰랐던 출근을 다시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서 마음을 다잡고 한다. 코로나가 내 인생을 리셋시켰기 때문에 코로나가 내 인생의 바이러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나의 노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지금의 고난을 잘 극복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돌아온 지 어느새 2달이 지났다. 아직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지만 빨리 이 고통스러운 순간이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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