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두 달 살기 - 열 번째 이야기
도시 봉쇄령이 내려지고 찾아온 첫 번째 주말. 사실 주말에는 아떼가 와서 청소를 도와주지만 당분간 오지 않기로 했다. 아떼는 전부터 집에 올 때 마스크를 쓰고 오기는 했으나 아떼가 우리 집에 오기 위해서 타고 오는 지프니(필리핀의 소형버스)는 사회적 거리를 절대 유지할 수 없는 크기이다. 다닥다닥 여러 사람과 붙어 오면서 행여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불편하지만 당분간 부르지 않기로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졸지에 직업이 없어진 아떼. 다른 집에서 오지 말라고 했더니 떠나면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그 사람들의 삶에 직업이 없어지는 것은 너무나 치명적인 일이기 때문에 100%의 일급을 보장하지는 않아도 50% 정도는 주기로 합의를 했다. 사실 나도 같은 상황이었고 많이 울었는데...... 떼를 써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한편으로는 그녀가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애초에 언니의 집에 장기 체류를 결정하면서 손님 대접을 받지 않기로 약속한 터였다. 단기간이야 언니가 좋은 곳을 데려가고 좋은 말만 하면서 나에게 신경을 더 써줄 수 있겠지만 두 달 동안 똑같이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언니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틈틈이 언니와 함께 집안일을 했지만(돕는다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떼가 3일 정도 온다는 사실 때문에 아주 빡세게 하지는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은 달라졌고 주말에는 대청소가 필요했다.
집에서는 엄마가 있으니까 청소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신세를 지고 있다 보니 대충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평소의 나는 '집안일은 정말 싫어! (결혼을 한다면) 전업주부는 절대 하지 않을 거야!'를 외쳤지만 그래도 나의 손길을 거쳐 반짝반짝 변한 집안을 보면 생각보다 큰 보람을 느낀다. 뽀드득뽀드득 물과 맞닿을 때 나는 접시 소리도 좋고 세탁기에서 방금 꺼낸 빨래의 라벤더향도 좋다. 뜨거운 햇살에 바짝 마른 수건을 각을 잡아서 예쁘게 정리하는 것도 좋다. 전에는 미처 몰랐던 적성을 발견한 셈이다.
난 나름 살림도 재미가 있다고 느끼고 있는데 언니는 영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사실 우리 자매는 외향부터 성향, 취향까지 정말 정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니는 정말 살림을 싫어한다. 특히 언니는 요리를 매우 싫어해서 늘 반찬을 사 먹었는데 여기에서는 모든 반찬을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종종 요리를 한다. 유튜브를 보고 곧잘 따라 하길래 맛있다고 칭찬을 해도 영 보람이 없다고 한다. 언니는 사실 전업주부로 사는 것도 정말 끔찍하게 싫어했는데 지금 주부로서의 삶이 언니의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더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다행히 언니만큼 집안일을 싫어하진 않고 그나마 요리는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최대한 여기 있는 동안 언니의 스트레스를 덜어주자고 마음을 먹었다. 우리에게는 하루의 루틴이 나름 생겼다. 아침을 먹기 전에 나름 유산소 공복 운동처럼 청소 한판을 하고 아침은 간단하게 시리얼이나 오트밀을 먹는다. 그리고 점심을 먹기 전까지는 공부를 한다. 점심은 요리를 하거나 배달을 해서 먹고 빨래를 돌리고 널고 정리하는 등의 다른 집안일을 한다. 언니는 슈퍼에 가거나 식재료나 반찬 등을 주문하는 일도 한다. 밖에서 나가서 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나는 보통 조카와 베이킹이나 간단한 요리를 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면서 놀면 대충 그날의 일과가 마무리된다. 하루하루가 특별하지는 않지만 매일 할 일이 있다는 안정감이 있어서 좋다. 프리랜서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프리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매일 고정적인 스케줄이 있다는 것이 내게 편안함을 주는 것 같다.
무엇보다 두 달 살기의 가장 큰 이점은 조카와 사이가 돈독해졌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가지지 않는 삶을 꿈꾸고 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 아이를 위해서 나의 행복을 희생하는 것이 싫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이를 행복하게 잘 키우는 것에 대한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 혼자 만의 삶을 살아내기에도 벅차서 다른 사람을 내 인생에 초대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이를 봐도 매우 심드렁하다. 아이가 그렇게 귀엽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슈퍼맨이 돌아왔다'같은 육아 프로그램은 굳이 시간을 내서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조카는 좀 다른다. 조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이 중에 가장 귀엽다. 혈육이라는 점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객관적으로 얼굴도 너무 귀엽고 애교가 정말 많아서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하지만 귀여워봤자 아이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조카 바보'정도는 아니다. 언니가 '조카랑 놀래? 아니면 설거지할래?' 이렇게 말하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조카가 같은 지역, 같은 나라에 살 때와 타국에 살 때와는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전에는 언니와 30분 정도 거리에 살았으니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조카를 볼 수 있었지만 이제 비행기를 타고 와야만 조카를 만나야 하니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조카와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조카는 완전 아기일 때 보다 말을 조금씩 하면서 더 귀여워지기 시작했다. 어눌한 발음으로 떠듬떠듬 말하다가 이제 제법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조카를 보면 놀라울 정도이다. 학교라도 가면 또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 텐데 혼자 노는 조카를 보면 마음이 짠하다. 특히 언니 휴대전화 속에 수백 장이 넘는 조카의 셀카를 보면 얼마나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그래서 필리핀에 있는 동안은 조카의 베프가 되어주기로 했다. 조카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대꾸해주느라 목이 너무 아프고 가끔 정말 친구처럼 대해서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이 시간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실제로 한국에 돌아온 지금, 조카는 내게 영상통화를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기도 한다. '이모 사랑해'를 매일 같이 보내는데 내가 언제 이렇게 극진히 사랑을 받았나 싶기도 한다.)
무엇보다 나는 MBTI 검사를 해도 항상 E가 나오는 완벽한 외향형 인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집콕 모드도 나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을 보니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 것 같다. 집순이 생활 꽤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