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que Terre (Manarola) - Portofino
60대 후반 부부와 이탈리아 붙박이 조카의 한여름 이탈리아 여행
06. 이탈리아 일주일 기행 Cinque Terre (Manarola) - Portofino
항구마을로 가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제 저녁에 비가 왔었다고는 믿을 수 없게 숙소 주변의 땅은 벌써 말라있었다. 숙소 정원에 심어진 나무들 잎사귀에도 어제의 굵은 물방울 흔적따위는 없었다. 날이 맑고 하늘이 푸른걸 보니 기분이 세삼 또 설렌다. 평야마을에서 기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오늘도 부지런히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다. 기차를 타고 친퀘테레 Cinque Terre 에 속해있는 마을 한군데를 들렸다 포르토피노 Portofino 근처에서 묵을 예정이다. 이모부부의 꼭 친퀘테레에 들려야 한다는 계획에 다섯 마을 중에 한 군데에만 들리기로 했다.
친퀘테레는 Cinque 다섯 Terre 땅들 이란 뜻으로 해안가와 절벽 주변에 있는 다섯개의 마을 국립공원이다. 보통은 라 스페지아 La Spezia 에서 기차를 타고 가거나 하이킹을 하면서 마을을 넘어갈 수 있다. 배를 타는 것도 좋다. 다섯개의 마을은 Monterosso al Mare, Vernazza, Corniglia, Manarola, Riomaggiore 로 구성되있다. 각 마을의 간격은 기차로 5분 안되는 거리들이다. 우리는 그 중 마나롤라 Manarola 에 가볼 예정이다. 배를 탈까 했지만 타임테이블에 보이는 배편 시간들이 애매해서 맘편히 빠른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바닷가 마을들은 그 지역마을 주민들처럼 바다에서 육지쪽을 바라보아야 진짜배기이지만 이번 일정상 그 경험은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침을 먹고 서둘러 평야지역을 빠져나와 라 스페지아 La Spezia 로 향한다. 친퀘테레와 제노바 Genova 가 속한 Liguria 리구리아 주로 넘어오는 길은 정신이 없다. 바다를 찾아가는 길은 산악지역이므로 굽어지는 산을 넘어가야 하는 도로는 운전하면서도 멀미가 난다. 산을 한참이나 넘고 돌아야 한다. 이런 산세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지역을 나누는 경계선으로 이어진다. 뒤쪽으로는 구불거리고 넘기 힘든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앞으로는 갈수록 깊어지는 바다가 있는 이 지역의 삶은 오늘 아침까지 머물던 조용한 평야마을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사실 이탈리아에는 리구리아 사람들끼리는 서로 장난치듯 통용되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이 놀리면 발끈하는 표현이 있다. 돈에 인색한 것을 이탈리아에서는 '팔이 짧다' 라고 표현하는데 팔이 짧아서 주머니에 있는 지갑에 손을 닿지 않는 모양새에서 나온게 아닌가 싶다. le braccia corte 레 브라챠 꼬르떼, 좀더 친숙하게는 le braccine corte 레 브라치네 꼬르떼 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제노바 지역 리구리아 사람들이 특히 친절하지 않고 팔이 짧은 것으로 유명하다.
절벽과 암석이 가득한 거친 바다와 경사가 깊은 산악지역에서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짐작해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바다를 곁에 두고 있는 도시와 마을은 언제나 쉼없이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멈추지 않는 파도에 저항하는 이들의 삶을 구경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이야기 하나쯤은 던져주는 경험이다. 항구마을에 가까워지고 있다.
마나롤라와 세상의 끝
라 스페지아 La Spezia 역에 차를 두고 기차표를 끊는다. 기차는 대기시간이 10분이 채 안되게 지나다니는 것들이 많았다. 이제서야 비릿한 바다냄새가 바람에 섞여 나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는 마나롤라 Manarola 에서 내려야 한다. 기차 안은 전부 바다 마을에 가는 사람들인지 좌석이 꽉 차 있었다. 이모부는 오랜만에 기차를 타는 것이 기분이 좋다고 하신다. 한국에서도 언제가 마지막이였는지 기억이 안나는 기차여행을 이 멀리 이탈리아에 와서 해본다며 웃으신다.
기차는 금새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바닷가 찻길을 따라 도착한다. 좀더 창밖을 보고 싶은데 금방 도착해버렸다. 사람들이 우루루 내려 한 방향으로 나간다. 터널같은 기차역을 나와 좁은 길 양 옆으로는 기념품을 파는 상점과 식당들이 빼곡하다. 바다는 코 앞에 있다.
멀리 떠 있는 배들과 육지에 그물을 널어놓은 작은 어선들이 보인다. 바위 곳곳에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여름바다다. 그래도 내 예상보다 마을이 붐비지 않아서 놀랐다. 가장 성수기 시즌에 바다 휴양지에 왔으니 분명 사람들이 득실대서 구경을 제대로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꽤나 좋은 분위기다.
우리는 절벽을 따라 나있는 돌길을 걷기로 했다. 발 밑으로 보이는 바다는 깊어보이나 맑다. 원래는 다음 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이지만 몇해 전 있던 사고로 길은 중간에 닫혀 있었다. 아마 걸어서 다음 마을에 가려면 산쪽을 타고 가야 할 것이다. 이모부는 길이 끊겨있는 것이 아쉬우셨는지 기차역에서 가져온 지도를 보시며 다른 루트를 찾아보신다.
암석 절벽을 타고 만들어 놓은 길에는 아무것도 없이 바다만 펼쳐져있다. 바람이 멀리서 불어와 절벽에 파도가 자꾸만 부딪힌다. 가까이서 요란하게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듣고 있으니 땅의 끝지점에 온 것만 같다. 이곳이 세상의 끝이자 새로운 세계의 시작점 같은 기분이다. 헤라클레스의 기둥 (Colonne d'Ercole) 이 여기에도 있을 것만 같다. 아득한 바다를 멀리 보고 있자니 설레임과 두려움이 커진다.
다행이 날이 좋아 해가 눈 부시게 돌과 물들을 빛내고 있다. 이모가 뜨거운 태양에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 우리는 목을 축일 겸 절벽 위쪽에 전망하고 있는 식당에 줄을 섰다.
예약이 안되는 터라 줄을 서야만 했는데 10분쯤 기다리니 세명 자리가 났다. 식당은 크게 조리하는 음식메뉴는 없이 간단한 브루스케타와 마실 것을 파는 곳이였다. 전망에 비해서 메뉴는 크게 감흥은 없어 아쉬웠지만 줄도 선김에 요기나 할겸 주문을 한다. 남미계열의 서버분이 주문을 도와줬다. 우리는 화이트와인과 맥주를 외쳤고 토마토와 참치, 바질을 올린 브루스케타를 주문했다. 투박하게 색칠한 나무의자와 테이블이 바닷가 절벽에 자리잡고 있으니 모두 낭만적으로 보이는 효과가 있다.
식당에서는 오전에 쿠킹클래스도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점심 오픈 전에 바질페스토 Pesto 를 만들어보는 것 같다. 암석과 경사진 산이 전부라 밭을 넉넉하게 경작할 수 없는 이 지역에서는 허브같은 풀들이 대접을 받았다. 채소가 넉넉한 지역에서는 향신료로만 사용할 허브들을 이 지역에서는 요리의 주 재료로 사용을 한다. 바질페스토가 그렇다. 풍성하게 싱싱한 향이 좋은 바질에 마늘과 잣을 넣고 질좋은 이 지역의 올리브오일을 넉넉히 뿌려 파르미쟈노 치즈나 사르데냐의 페코리노 치즈를 넣고 곱게 간다. 취향에 따라 마늘을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요즘에는 바질말고도 루꼴라나 호두, 피스타치오, 브로콜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소스를 만든다. 그렇지만 보통 페스토 라고 들으면 페스토 알라 제노베제 Pesto alla genovese 의 클래식한 바질을 베이스로한 것을 말한다. 페스토는 실크 천조각, 손수건 fazzoletti di seta 이라는 부르는 면이 하늘하늘한 파스타에 곁들이거나 트로피에 Trofie 파스타에 곁들여 먹는 것이 이 지역의 클래식한 조리법이다. 나는 로마에서 3-4분이면 익는 트로피에 Trofie 생파스타에 페스토를 곁들여 즐겨 먹는다. 참고로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얻은 팁인데 바질페스토 에다가 버팔로 우유로 만든 리코타치즈를 섞어서 소스로 만들어 파스타에 곁들여 먹어보시라. 처음 레시피를 듣고서는 의심의 눈초리로 시도하지 않다가 한번 먹고 나서 나는 매번 이렇게 페스토를 즐기고 있다.
이모는 화이트와인을 즐기며 먹기 불편한 브루스케타를 베어무신다. 캔참치와 토마토를 섞어 살짝 구운 빵위에 올린 브루스케타는 위의 내용물을 흘리지 않고 먹기가 힘들다. 이탈리아 요리들이 대게 그렇듯 재료가 단순하고 간단하기 때문에 맛도 다른 꾸밈이 없다. 재료가 맛있다면 결과에 걱정이 없다. 올리브오일은 좋은 향이 났는데 리구리아 지역은 예전부터 올리브오일이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지중해의 바다와 산의 비탈을 따라 심어져 있는 올리브 나무들은 보기만 해도 흐뭇해진다.
휴양지의 밤산책
목을 축이고 바다를 구경하는 사이에 벌써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다. 마나롤라 한군데만 본 것이 아쉽지만 오늘 묵을 숙소까지 다시 이동을 해야한다. 여전한 오후의 더위를 가득 담고 다시 해안가를 따라 라팔로 Rapallo 방향으로 이동한다.
오늘 숙소는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 Santa Margherita Ligure 와 포르토피노 Portofino 사이에 잡았다. 숙소에서 포르토피노 Portofino 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산책로가 있어 위치는 괜찮아 보였다.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 Santa Margherita Ligure / 산타 마르게리타 라고 부르는 이 해안가 마을은 특히나 밀라노인들이 좋아하는 휴양지 바닷가다. 그래서 그런지 산타 마르게리타는 그들이 잘 가꿔놓은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빌라들이 가득하다. 별것 없이 바닷가 주변을 산책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 오면 항상 먹는 것이 있는데 파리나타 Farinata 라고 부르는 병아리콩 가루로 만든 피자같은 음식이다. 체치나 Cecina 라고도 부른다. 이 음식은 리구리아와 그 밑에 토스카나 지역에서 유명한데 리구리아에서는 보통 파리나타 Farinata 라고 부르고 빵집에서도 흔하게 판다. 그 밑으로 이어지는 마싸 Massa 나 Lucca 루카, Pisa 피사 토스카나 마을들에서는 체치나 Cecina 라고 부르고 그 밑에 리보르노 Livorno 에서는 Torta 또르따 라고 부른다. 그리고 보통은 피자집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같은 음식을 가지고도 서로 이름을 다르게 부르니 예전부터 이 근처 마을들이 서로 얼마나 경쟁을 했을지 음식의 이름만 들어도 당시의 상상을 더 한다. 나는 이번에도 온 김에 여행이 끝나기 전 맛을 볼 참이다.
오늘 묵을 숙소는 아기자기한 골목같은 도로 앞에 우두커니 있었다. 손님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표정을 내비치는 무뚝뚝한 인상의 중년남성이 방 키를 건내주었다. 호텔 내부는 제일 저렴한 가구와 장식품들로 채워놓은 것 같이 조잡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나선형 모양의 좁은 계단으로 캐리어를 들고 올라갔다. 전형적인 관광지 숙소의 느낌에 우리는 적잖히 당황했지만 어쩌리 하는 심정으로 하룻밤 넘기기로 한다.
저녁은 두분이 피곤해하셔 숙소 밑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우리 셋은 전부다 농어구이를 주문했다. 농어는 호박과 감자채를 튀긴 것과 같이 나왔는데 생선의 등쪽을 반으로 갈라 그 위에 튀김을 올려놔 다소 폭력적으로 보이는 플레이팅이기는 했다. 두분은 얼마만에 바다생선인지, 기뻐하며 드신다. 말씀은 안하셔도 북부의 음식이 드시기에는 힘드셨나보다.
오랜만에 입맛에 맞는 음식을 드시니 피곤해 하시던 이모가 기운을 차리셨다. 만족해 하셔 다행이다. 사람은 어쨋던 먹던 음식에서 안도감을 느끼나보다. 아무리 여행중에 배 부르게 음식을 먹었어도 식사 후면 항상 께림직한 기분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일 지도 모른다. 우리는 음식과 함께 본인의 정서를 섭취해야 비로소 만족된 포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두분은 이제 살만 하다는 표정으로 밤산책을 제안하신다. 밖은 벌써 깜깜해져 바다가 어둡다. 컴컴한 바다에 붉은 가로등만 길을 따라 밝혀져 있다. 아까 그 많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사라진걸까. 바다가 삼켜버린 것만 같이 길이 조용하다. 바위 절벽에 요란스럽게 부서지는 파도소리만 반복된다. 어둠 속에서 낚시를 하는 이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바위암벽에 홀로 앉아 주위의 어둠을 견디는 낚시꾼들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궁금하다. 사납게 흔들리는 바다에 그들은 뭘 던져놓은 것일까.
파도때문인지 바람때문인지 저녁으로 먹은 바다생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셋은 기분이 좋아져서 한참을 밤바다가 보이게 걸었다. 아쉽게 벌써 여행도 끝으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