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 마지막 잔에 남은 와인을 위해 건배

Portofino - Lucca - Fonterutoli

by 벌꿀

60대 후반 부부와 이탈리아 붙박이 조카의 한여름 이탈리아 여행



07. 이탈리아 일주일 기행 Portofino - Lucca - Fonterutoli





휴양지의 바람


새벽부터 요란하게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와 26도 이하로는 안내려가는 에어컨덕분에 땀에 절은 채 잠을 설쳤다. 창 밖을 보니 어제와 다르게 구름이 하늘을 크게 덮고 있다. 오늘 첫 일정으로 우리는 아침식사 전에 걸어서 포르토피노에 다녀오기로 한다. 이른시간인데 바다를 따라 난 차도에는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산속으로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가기로 한다.


요즘에 포르토피노는 세계 부호들의 휴양지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그리스때 이미 헤라클레스의 기둥 Colonne d'Ercole 이 있는 해협의 서쪽, 지금은 지브롤터 해협 이라고 부르는 세상의 끝을 갈때 들리던 항구 중에 한 곳이였다. 그 후 로마제국 때도 이 곳의 아름다움을 이해한 로마인들은 여름별장을 지어놓고 작은 항구마을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지금도 종종 이 근처 바다 밑에서 로마제국 시절의 유물들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현재 사람들이 많이 듣고 찾아가는 이탈리아의 왠만한 아름답다고 소문난 곳들은 이미 로마제국 시대부터 유명하던 곳들이다.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즐기는 것에 대한 열망은 달라진 것이 없는 모양이다.


20180818_153301.jpg Portofino 포르토피노 가는 길



20분정도 산길의 산책로를 따라가면 포르토피노가 나온다. 여름이라 그런지 요트와 배들이 선착장에 잔뜩이다. 아직 가게들은 오픈전이라 사람들없이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을 위쪽에 있는 성당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멋지니 올라가야한다. 위에 Castello Brown 브라운 성에서 보는 것도 좋으나 이른 시간이라 열지 않았을 것이다.



해안 선착장에서 마을 위쪽에 있는 성당을 가는 길은 두가지인데 우리는 짧지만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이용하기로 한다. 계단은 옆에 난간을 잡지 않으면 위험해보일 정도로 가파르다. 숨을 헐떡이며 몸에 땀이 가득 차 오를 쯤이면 마을 위쪽에 올라온 것이다. 성당들은 항상 마을의 좋은 자리에 터를 닦아놓았다. 커다란 돌들과 여름이라 풍성해진 나뭇잎들 사이로 선착장과 색색깔로 칠해진 마을의 풍경은 아래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시야를 열어준다. 마을은 세련되고 멋스러워 보인다.


88.jpg 마을 위쪽에서 보는 포르토피노



마을을 내려와 선착장을 지나가는데 이모부가 깜짝 놀라신다. 이모부가 금방 스쳐 지나가 버린 보라색 하의를 입고 조깅 하는 사람을 바라본다. 오! 하는 찰나에 그는 손을 흔들고 사라졌는데 전설의 농구스타 매직존슨이였다. 그의 뒷모습 사진을 남기고 우리는 유명인을 봤다는 것에 들떠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포르토피노가 여전히 유명 부호들의 휴양지이긴 한가보다.





항구마을과 작별


숙소의 조잡한 아침식사 대신에 우리는 옆에 산타 마르게리타 Santa Margherita Ligure 에 가서 마을 구경도 하고 빵집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했다. 다행히 아침시간이라 주차 문제는 없었다. 오늘 하루를 준비하는 마을은 분주했다. 이모는 활기차 보이는 분위기가 꽤나 맘에 드시는 것 같았다. 바다에는 중간 크기쯤 되는 크루즈와 요트들이 파도와 바람에 출렁거리고 있다.


정박해 있는 배들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와 작은 광장을 건너 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을 찾아 들어간다. 큼지막한 빵봉지를 배달하는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걸 보니 근처에서 빵을 굽는 것같다. 작은 빵집 내부는 아침이라 그런지 정신없이 사람이 많았다. Farinata 파리나타 가 있는지 물어봤으나 오후에 나온다고 한다. 아쉽지만 Focaccia 포카치아 를 크게 잘라 구입한다.


포카치아 Focaccia 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다양하게 만들어 먹지만 리구리아 지역으로 대표되는 빵이다. 가장 클래식한 포카치아 제노베제 Focaccia Genovese 는 평평한 반죽에 울퉁불퉁 손가락으로 홈을 파듯 자국을 내 구워낸 빵이다. 넉넉하게 뿌려진 올리브오일은 빵을 베어물면 즙처럼 오일이 쭉 하고 묻어날 정도다. 기본 포카치아도 맛있지만 양파를 올린 것도 맛있다.


포카치아는 다른 지역에서는 빵의 도우가 폭신하고 도톰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원조 리구리아식은 생각보다 도우가 얇다. 그리고 올리브오일이 듬뿍 뿌려져 있다. 예전부터 곡물 농사가 어려운 지역이라 밀가루는 다른 곳에서 들여오는 수입품이다 보니 이 지역에서 만드는 포카치아 빵은 밀가루는 적게 사용해 얇은 대신에 풍부했던 올리브오일은 아낌없이 넉넉하게 뿌려서 만들었다. 실제 이 곳에서 만드는 포카치아를 먹어보면 로마에서 먹던 것처럼 도우가 두껍지 않다. 그래야 진짜 리구리아식이다.


빵의 두께도 자연지형과 역사와 관련이 깊은 이탈리아는 지역 경계선을 넘을 때마다 다르고 새로운 모습들이 펼쳐진다. 이탈리아를 돌아다니는 재미는 이런 것일 지도 모른다. 우리는 향기로운 올리브향이 가득한 포카치아를 베어물며 바닷마을을 떠난다.



20180818_153238.jpg 바다도 잠시 안녕, 여행이 끝을 향한다




Lucca 루카


리구리아의 멀미나는 산악도로를 지나 토스카나의 루카 Lucca 로 향한다. 고속도로에서 한시간 쯤 가다보면 옆에 눈이 내린 것처럼 흰 돌산들이 나타나는데 이탈리아의 대리석 산지 카라라 Carrara 다. 하얀색의 바위산들이 제각기 깎여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대리석산을 둘러봤을 상상을 하며 도로를 달린다.


산세가 점점 낮아지고 지대가 작은 언덕과 평원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루카 Lucca 는 마을 자체가 평평해서 여행객 입장에서는 걸어다니기가 편한 곳이다. 이곳에 오는 것은 거의 7년만이다. 그때도 이렇게 더운 여름에 왔었고 여행객들과 마을 사람들이 북적거려 저녁만 되면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서 마시고 떠들고 춤추는 활기찬 날들이였다.


루카 Lucca 는 성벽으로 빙 둘러져 있어 차는 성벽 밖에 주차를 하고 도보로 올드타운에 들어간다. 이모부가 꼭 들려보고 싶어하던 곳이다. 어디서 찾아보신 건지 이모부는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둘러보겠다고 하신다. 이모는 이모부를 따라 자전거를 타기로 하고 나는 날이 너무 뜨거워 그늘에서 쉬기로 한다. 자전거 렌트하는 곳에서는 두분께 더우니 천막이 덮여있는 4인용을 추천했다. 두분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시며 오후에 만나기로 하고서는 유유히 페달을 굴리시며 성벽 안쪽 길로 가신다. 잘 타실 수 있을까.


나는 걸어서 광장이 있을 중심가로 가보기로 한다. 마을은 예전 내 기억과는 다르게 텅 비어있었다. 가게들도 많이 닫았고 우리처럼 잠시 가는 길에 들린 듯한 여행객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마을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적었다. 다들 옆에 바다에 갔으리라. 아침에 일어나 바다에 가서 하루를 보내고 해가 질 때쯤 서늘해지면 마을로 돌아오겠지.



마을의 건물들은 붉은색 지붕이 쫙 깔려져 있는 것이 토스카나 색채가 물씬 난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서 로마시대 원형극장 터에 건물을 지어 타원형 모양을 하고 있는 Piazza dell'Anfiteatro 광장을 찾아 나선다. 로마에도 이런 형태의 장소가 있다. 시내에 Giordano Bruno 죠르다노 브루노의 동상이 있는 캄포 데 피오리 Campo de'Fiori 광장 근처 골목을 지나면 Via di Grotta Pinta 길에 있는 커브형태의 건물을 볼 수 있다. 이 밑에 폼페오의 원형극장 터가 남아있다.



찾아간 광장은 비어있었다. 7년전 기억보다 광장이 더 낡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건물의 페인트는 곳곳이 벗겨져 있었고 색이 바래 있었다. 한낮에 바라보니 초라해 보이기까지도 했다.


나는 쓸쓸해진 마음을 안고 커피나 마실 겸 골목으로 들어갔다. 루카가 고향인 쟈코모 푸치니 Giacomo Puccini 의 동상이 있는 작은 광장에 들어선다. 동상 주변 커피집들의 이름이 투란도트니 마담 버터플라이니 라고 지어놓은 것들이 많다. 기대없이 길모퉁이에 있는 커피집에 들어가본다. 커피는 이제야 본토 이탈리아에서 마시는 것 같은 맛의 에스프레소였다. 이게 여행하는 그 사이에 참 그리웠다. 이탈리아를 놀러오는 여행자들은 이탈리아 어딜가나 커피 = 에스프레소 가 맛있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맛있는 집들은 어딜가나 꼭 따로 있는 법이다.


커피집을 나와 골목을 따라 가니 잘 꾸며놓은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저기 구경하다 나는 한 식품점에 들어가 Farro 파로 곡물로 만든 비스코티 쿠키 세봉지를 구입했다. 파로 Farro 는 오래된 곡식의 한 종류인데 로마제국 시절에는 기본식량으로 소비되기도 했던 곡물이다. 지금은 토스카나 지역에서 주로 재배하는데 루카 위쪽 Garfagnana 지역의 Farro della Garfagnana 가 유명하다. 곡물 자체는 익히면 살짝 쫀득한 식감이 난다. Zuppa di farro alla lucchese (루카식 파로 스튜) 주빠 라고 부르는 자작한 수프 형태로 만들어 먹거나 가루를 내어 빵이나 파스타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요새는 이탈리아 전역 마트에서도 이 곡물로 만든 제품이 흔하지만 루카에 온 김에 이모부부께 맛보여 드리고 싶기도 하던 참이였다. 맛은 다르겠지만 로마제국 전부터 먹어왔던 곡물이라고 이야기를 드리면 이모부는 분명 관심있어 하실 것이다.


큰 과자봉지를 들고서는 이제 피자집을 찾아 가본다. 오전에 실패한 체치나 Cecina 를 맛봐야한다. 구글맵에는 피자집이 여러군데가 나오는데 오픈을 한건지 모르겠으나 우선 한 군데를 찾아가본다.


피자집은 안에서도 먹을 수 있고 테이크아웃도 해가는 형태의 캐쥬얼한 집이였는데 화덕 앞으로 만들어 놓은 피자들을 보니 체치나 Cecina 가 커다란 쟁반에 반 정도 남아 있었다. 다행이다. 드디어 먹을 수 있다! 나는 쟁반에 남은 것을 전부다 달라고 했다. 반은 지금 먹을 작정이다.


farinata.jpg Cecina 체치나 / Farinata 파리나타


높은 화덕의 온도에서 구워내는 체치나 Cecina 는 집에서 오븐으로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나는 요리에는 관심이 없지만 먹는 것은 좋아해 로마에서 몇번이나 만들어 봤었다. 하지만 매번 리구리아나 토스카나에 와서 먹는 맛과는 비교자체가 되지 않는 결과물이 나오곤 했다.


체치나 Cecina 는 아주 얇게 만들어야 하는데 높은 온도에서 끓는 올리브오일이 표면을 바삭하게 구워내기 때문에 집에서 만들기는 쉽지 않다. 취향에 따라 구워진 체치나 Cecina 에 후추를 뿌려먹으면 된다.

피사 Pisa 밑에 있는 리보르노 Livorno 에 가면 유명한 친퀘 에 친퀘 (cinque e cinque) 빠니니가 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생소한 음식인데, 예전 유로를 쓰기 전 유래한 음식으로 리보르노에서는 친퀘 에 친퀘 (cinque e cinque) 라고 말하면 5리라 어치 빵에 5리라 어치 체치나 Cecina 를 넣어 빠니니를 만들어 주었다. 그때는 체치나 Cecina 가 지금보다도 아주 저렴한 음식이였다. 나는 이 근처에 올 기회가 있다면 리보르노에 들려 한번씩 찾아먹곤 한다.


입가와 손에 올리브오일을 잔뜩 묻히며 먹는 체치나 Cecina 는 언제나 맛있다. 큰 조각이 벌써 없어지는게 아쉽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이모부부는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신다. 성벽 위쪽으로 있는 길을 따라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셨다고 하신다. 두분은 체치나 Cecina 를 맛보시고서는 별맛은 없는데 어딘가 녹두전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하셨다.


이제 숙소로 이동하기로 한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숙소는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위치한 Fonterutoli 에 있다. 와인으로 유명한 집에서 운영하는 숙소로 레스토랑도 같이 겸하고 있어 우리 여행의 마지막 저녁까지 예약해놓았다. 내일이면 여행도 끝이지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행의 마지막 저녁


숙소를 찾아가는 길은 토스카나의 전형적인 매끄러운 능선의 언덕들이 펼쳐져 있었다. 길다랗게 자란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평원에 줄줄이 서 있기도 하고 포도밭이 나왔다가 올리브 나무들이 가득하다가 하며 지루할 틈 없는 풍경이다. 숙소 근처에 도착할 쯤, 지대에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올리브나무 가지들이 요란하게 부딪히며 흔들리는 것을 보니 왠만한 바람이 아닌 것 같다. 심하게 부는 바람에 걱정스런 마음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의 리셉션은 도로 옆에 와인을 팔고 테이스팅 할 수 있는 장소와 겸하고 있었다. 건물이 여러개로 나눠져 있는 듯 하다. 직원들이 꽤나 많았는데 전부 이 주변에서 거주하고 있는 동네사람들이리라. 우리는 맞아준 젊은 남성은 어제부터 바람이 거세게 분다며 우박도 내렸다고 했다. 올리브와 포도들이 걱정이다. 방을 안내해 주겠다며 차는 리셉션에서 내리막길을 좀더 내려가 주차해 놓으면 된다고 한다. 우리가 묵을 방이 있는 건물도 그 방향이였다. 여러 건물 중에 가장 밑에 있는 집으로 안내하더니 실내 자체가 굉장히 큰 집을 보여준다. 방이 여러개가 나눠져 있었고 거실과 주방은 편하게 사용하면 된단다. 와인은 원하는 만큼 테이스팅 해도 괜찮으니 아까 리셉션 있는 곳에서 맛보라고 권유한다.


우리는 곧 저녁시간이니 테이스팅은 스킵하기로 했다. 아까 루카에서 자전거를 열심히 타신 이모부부는 저녁 전까지 잠시 쉬기로 하시고 나는 숙소 주변을 살펴보러 나갔다. 제라늄이 숙소 주변 곳곳에 심어져 있고 담쟁이 덩쿨이 푸릇푸릇하게 덮고 있는 건물을 지나 리셉션이 있던 도로 쪽으로 올라간다. 저녁식사와 아침식사를 하는 식당은 도로 반대편 위쪽에 있었다. 단층의 돌로 벽 외관을 지어놓은 식당은 올리브나무와 포도밭 코너에 위치해 있었다. 넓은 정원에 커다란 올리브나무 몇그루가 심어져 있고 멀리 이 지역의 언덕들이 뿌옇게 보인다. 바람이 잦아들기는 했는데 야외에서 식사를 해도 괜찮을지 걱정이다.



해가 이미 넘어가고 노을이 하늘을 아직 붉히고 있을 때 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저녁을 시작한다. 이모부는 티본스테이크가 유명하다니 그걸 메인으로 하시기로 한다. 두분이서 다 드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펜넬과 오렌지를 곁들인 요리를 전채로 부탁하고 여러가지 콩을 넣은 스튜, 구운 라디끼오, 피치 Pici 파스타를 주문한다. 레드와인도. Ovuli 버섯은 재료가 없는지 아쉽지만 주문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와인산지로 유명한 이 지역은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있는 끼안티 Chianti 지역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다보면 대게 어디를 가던 자기네 와인이 맛있다며 그 지역에서 나는 와인을 추천해주곤 할 것이다. 토스카나의 와인들이 유명하고 이탈리아에서도 와인을 잘 만드는 곳으로 항상 손에 꼽히지만 끼안티 와인이 이탈리아의 대표 와인은 아니다. 그런 소리를 했다간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사람들에게 큰 싸움의 불씨를 던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다른 지역사람들에게 끼안티와인은 토스카나의 한 지역에서 나는 와인일 뿐이다. 그것을 좋아하고 감탄하고 음미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인 것이다.


이모부부는 몇해 전, 이 근처 산 지미냐노 San Gimignano 마을에서 여름을 나신 적이 있다. 그때 경험 때문이신지 토스카나 이 부근이 푸근하고 익숙하신 것 같다. 이모는 그때 농가민박에서 이주동안 묵으면서 지냈던 얘기를 꺼내신다. 한낮에는 너무 더웠고, 자전거를 많이 탔었고 매일 같은 젤라또집에 가서 콘에 젤라또를 올려 먹었고. 한번은 농가민박에서 파스타를 만드는 쿠킹클래스를 두분이서 하셨는데 본인보다 이모부가 더 좋아하셨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식당은 다른 마을에서 넘어온 손님들로 금새 북적였다. 다행히 아까 거세게 몰아치던 바람이 멈췄다. 식당 직원은 내일 아마 비가올 것 같다고 했다. 바람이 그쳐서 그런지 쌀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습한 느낌이 열을 올리는 것 같았다.



우리가 주문한 Pici 피치 파스타는 시에나 이 근처 지역의 토속 파스타인데 우동보다는 덜하지만 면을 통통하게 빚은게 특징이다. appiciare 어원에서 유래했다는데, 지금 appiciare 아피챠레 는 로마 사투리로 캠프파이어 불을 켤때의 켜다 라는 뜻이다. 아마 이 지역에서는 손으로 면을 길쭉하게 미는 방법을 따서 같은 단어지만 다른 의미로 쓰였던 것 같다.


로마에서 내가 주로 먹었던 피치 파스타는 빵가루, 엔쵸비와 펜넬 잎사귀를 넣은 레시피다. 감칠맛이 풍부한 절인 엔쵸비가 올리브오일에 녹아 짭짤하게 파스타면에 코팅이 되고 살짝 크런치하게 씹히는 빵가루와 비린맛을 산뜻하게 덮어주는 펜넬 잎사귀의 향이 아주 조화로운 파스타다. 게다가 통통한 파스타면은 기분좋게 입안을 채워준다.


클래식한 조리법으로는 이쪽에서 나는 aglione 알리오네 (거대한마늘) 와 화이트와인을 넣고 만든 토마토소스를 곁들이는 것이 유명하다. 그러고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지역이나 취향에 따라 마늘을 향신료처럼 향을 위해 쓰는 경우도 있고 통째로 넣어서 먹을 때도 있고 하니 보통 알려져 있는 것처럼 마늘자체를 아예 안먹는 문화도 아니다.


이 근처가 고향인 이탈리아 친구같은 경우 제일 좋아하는 브루스케타는 빵을 윗면이 바삭하게 구워서 생마늘을 거칠어진 빵 위쪽에 쓱쓱 긁어서 올리브오일과 소금을 뿌려먹는 것이다. 로마의 한 친구는 한국에서는 파프리카 라고 부르는 Peperoni 페페로니 주황색 빨강색 피망을 오븐에 구워서 껍질을 벗기고 쭉쭉 길게 찢어서 마늘을 칼로 곱게 다져 넣고 올리브오일과 오레가노, 원하면 오일에 절인 엔쵸비를 넣어 빵에 올려먹거나 그 자체로 먹는다.


이탈리아는 모든 것에 있어서 한가지로 정해서 말하기 어려운 곳이다. 우리가 토스카나 라고 부르는 곳도 실은 피사 사람과 리보르노 사람, 피렌체 사람들은 서로를 항상 구별한다. 게다가 언어도 조금씩 다르다. 리보르노 출신의 친구같은 경우는 토스카나 내에서 상대방이 어디 출신인지 말하는 걸 보면 단번이 알아챈다. 표준 이탈리아어가 토스카나어 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 지역에 오면 다들 다른억양으로 단어로 말하는 걸 금방 느낄 수 있다.



오늘 저녁으로 나온 피치 파스타는 빵가루에 염장햄을 지글지글 익혀 곁들인것 같아 보인다. 이모는 언제 먹어보겠냐는 담대함으로 포크로 파스타를 찍어 드신다. 이모부는 속이 시뻘건 스테이크를 맛보시며 부드럽고 입에서 스르르 녹는 한국 스테이크가 그립다신다. 대신 강낭콩과 병아리콩에 썰은 야채를 넣고 자작하게 익힌 콩 스튜는 두분다 좋아하셨다. 이모는 콩만 잔뜩 들어있으니 신기해하셨다. 콩만 이렇게 밥처럼 먹냐고.


토스카나의 이런 콩으로 끓인 음식은 유명하다. 파스타를 넣기도 하고 다른 채소나 빵을 넣기도 한다. 내륙지역이라 겨울에는 굉장히 춥기 때문에 이런 끓인 음식이 로마나 남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흔하다.


이탈리아에서는 Finocchio 피노끼오 라고 부르는 펜넬을 썰어 팬에 살짝 익힌다음 오렌지는 속 껍질까지 벗겨서 넣고 잣이나 건포도를 곁들이는 음식은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조리법이다. 이모가 좋아하실 것 같아 맛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릴에 구운 라디끼오는 보라색의 치커리의 일종인데 쓴맛이 나는 채소다. 이걸로 리조토를 만들어도 맛있다. 특유의 떫은 맛은 익히면 한결 나아진다. 그릴에 굽거나 팬에 볶아 건포도와 잣을 곁들이면 근사한 채소요리가 된다.


003.jpg 우리의 여행 마지막날 저녁식사


우리의 대화는 음식과 와인에 즐겁다. 여행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행복한가보다. 올리브나무 옆에서 그릴에 음식이 구워지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별탈없이 일주일을 지냈다고 얘기한다. 이모부는 한동안 모임에 나가면 얘기할 거리가 많을 거 같다고 좋아하신다. 내일이면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영 아쉽다.


나는 한켠으로 이제는 정말 두분이 이 먼 곳까지 놀러오시는게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섭섭함이라기보다는 애잔하다. 가끔씩 생각날 이번 여행에 벌써 두분이 그리워지려한다. 세상에는 시간이 지날 수록 익숙해 져가는 것들이 있지만 여전히 헤어진다는 것은 스무살의 헤어짐도 서른의 헤어짐도 마흔의 헤어짐도 익숙해지기 어려움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저 헤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나의 이해도가 조금 늘었을 뿐이다.


어두워진 올리브나무 언덕에서 우리셋은 기꺼이 마시고 먹으며 행복해한다. 이모부는 한번 사는 것 꾸물대지 말고 즐거움을 누리라며 벌써 내년 여행을 구상하시고 계신단다. 여름밤 달 언저리가 뿌옇게 흐릿하다. 내일 정말 비가 올 모양이다.


우리 셋은 마지막 와인잔에 있는 와인을 위해 건배를 하고 우리의 8월을 그렇게 정리한다.




keyword
이전 07화#6 항구마을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