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 노옵션 투룸은 처음이지?
지난 연말에 이사를 했는데, 자취 생활을 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흔히 살림살이라고 하는 자잘한 짐이 굉장히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 와서 새로 구매한 가구와 살림살이들도 엄청 많은데, 방이 한 칸에서 두 칸으로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이제야 ‘방’이 아닌 ‘집’에 이사 왔다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항상 ‘이사만 가면’, ‘이사를 가게 된다면’으로 하려고 했던 것, 사려고 했던 것들이 은근히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최근 몇 달간 뭔가를 처음 사서, 처음 해볼 때마다 이상하고 재밌고 찡한 느낌까지 받는다.
어제 넷플릭스에서 아웃랜드를 보기 시작했는데, 1화에서 주인공이 상점의 쇼윈도 너머를 볼 때 독백이 흘러나온다.
기억은 이상하다.
수년간 함께하는 이미지와 감정들
내가 꽃병을 가진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처럼 말이다.
그런 소소한 것도 없을 만큼 한 곳에서 오래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날 위한 꽃병 말고는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
Strange, the things you remember.
Single images and feelings that stay with you down through the years.
Like the moment I’d realized, I’d never owned a vase.
That I’d never lived in any place long enough to justify having such a simple thing.
And how at that moment, I wanted nothing so much in all the world as to have a vase of my very own.
이 내레이션은 상징적인 의미이겠지만,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는 ‘아 정말 내 얘기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꽃과 꽃병을 집에 들여서 나를 위한 선물을 하자.
마침 컬리에서 반가운 할인 쿠폰이 왔고, 처음으로 꽃과 꽃병을 주문했다.
내일이면 안 쓰는 유리잔까지 꺼내 고민하면서 꽃을 꽂아보겠지.
4월 초에 화분에 심긴 식물을 2개 들였는데 이게 또 소소한 재미가 있다. 매일 창가에 내놨다가 들여놓고, 흙이 마르진 않았나 체크하면서 물을 준다.
연두색이었던 잎이 초록색이 되면서 점점 단단해지고, 새순이 나서 잎을 펼치기도 하는 게 너무 대견하고 신기하다.
그 전에도 밥은 해 먹었지만
바지락(무려 조개!)을 사서 순두부를 끓이고 봉골레 파스타를 한 것도 처음,
콩나물을 삶아서 무침을 만들어 본 것도 처음,
(삶을 때 비린내 날까봐 무서웠다)
양념된 고기를 구워보는 것도 처음,
소소하게 처음인 일들이 조금씩 생기는 게 재밌다.
(2021년 4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