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착된 무기를 상상하는 이유
나는 지금 영화를 한 편 보고 있다.
저지드레드.
정의의 수호신이 등장하는 액션 영화다.
총을 들고, 헬멧을 쓰고, 규칙을 집행한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폭력적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폭력이 아니라 권한이다.
드레드는 개인이 아니다.
그는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미 끝난 일을 끝냈다고 말할 수 있는 권한을
장착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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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돌아오면,
나는 그 권한이 없다.
대신 기록만 있다.
나는 계약을 지켰고,
반환 의사를 명확히 했으며,
분쟁을 끝내기 위해 공탁을 했다.
도망치지 않았고, 숨지 않았다.
그럼에도 통장은 1년 동안 압류돼 있었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의 문제였다.
생활을 설계할 수 없는 상태가
1년간 지속됐다.
이 상태는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는 공탁금을 찾아가지 않았고,
누군가는 압류를 풀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아무 권한 없이 견디는 역할만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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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특정인을 향해 쓰지 않는다.
그러나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한 번 눌렀다가 지운 흔적도,
잠깐 남겼다 사라진 반응도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건 고발이 아니다.
협박도 아니다.
그저 응답이다.
응답이란,
상대가 만든 상황을
다시 상대에게 돌려주는 행위다.
감정으로가 아니라,
사실의 순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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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기를 갖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은
누군가를 해치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상상한 무기는
총이 아니라 문장이다.
판결문 한 줄,
결정문 한 문단,
“공탁으로 채무는 소멸하였다”라는 선언.
그 문장이 내려오는 순간,
폭력은 끝난다.
그 이후에도 유지된 압류는
손해가 되고,
그 손해는 배상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 글은 예고장이 아니다.
정리의 서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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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항상 영웅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때로는 아무 표정도 없이,
아무 설명도 없이,
그저 끝난 일을
끝냈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말이 오기 전까지,
나는 기록을 남긴다.
응답하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