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을 만들 수 없었지만,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나는 자식이 없다.
결혼도 하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 도시를 오래 걸어 다녔고,
둘러보았고,
과거에는 대학교 강의를 했고
입시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사람이다.
정규 교원은 아니었다.
공무원도 아니었다.
다만 교실과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말을 건네던 사람이었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에서 불안해지는지를
몸으로 보아왔다.
⸻
중앙초등학교 신입생 0명이라는 기사를 보며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분노한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알게 된 순간부터 가만히 있지 않았다.
도심 학교의 고립,
보행 동선의 단절,
아이들이 걸어올 수 없는 구조,
기존 학교는 방치된 채
개발지에서만 학교가 조건처럼 호출되는 방식.
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기 때문에
나는 민원을 넣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였다.
그 생각과 과정은
이미 글로도 남겼다.
문제가 터진 뒤에 쓴 글이 아니라,
문제가 진행 중일 때
이미 적어 두었던 기록들이다.
⸻
그러나 결과는 늘 같았다.
“검토하겠다.”
“어렵다.”
“불가피하다.”
“추후 논의하겠다.”
말은 반복됐고,
상황은 그대로였다.
⸻
나는 노면 표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길을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횡단보도를 그을 권한도,
차량 속도를 제한할 권한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지점이라는 것을 알았고,
여러 차례 알렸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완충제로서 식물을 두었다.
차량과 보행자 사이에
한 겹의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건 장식도 아니었고,
사유화도 아니었으며,
도시 미관을 해치기 위한 선택도 아니었다.
보행자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대응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개선이나 협의가 아니라
강제 철거였다.
길은 그대로 위험했고,
완충만 사라졌다.
⸻
이 장면에서
나는 이 도시의 작동 방식을 다시 확인했다.
시민은
길을 만들 수 없고,
표시를 그을 수 없고,
속도를 조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왜 가만히 있었느냐”는 말을 듣고,
무언가를 하면
“권한 밖의 행위”라며 제거된다.
그 사이에서
보행자의 안전만
늘 사각지대에 남는다.
⸻
나는 부모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며,
아무 행정 권한도 없다.
그래서
이미 민원을 넣었고,
이미 글로 남겼고,
그래도 안 되었고,
지금도 기록을 이어간다.
이 글은 분노가 아니다.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기록이다.
신입생 0명이라는 숫자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결과가 아니다.
길을 만들지 않았고,
연결하지 않았고,
완충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 모든 시간을
“불가피하다”는 말로 덮어온
시간의 합계다.
⸻
나는 이 도시의 권한자가 아니다.
하지만
이 도시를 오래 걸어본 사람으로서
위험을 보고도 침묵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이건
흐지부지 넘길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이미 여기까지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