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데나 닳지 않겠다는 기준
세상이 사람을 소모시키는 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아무 데나 닳지 않겠다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이 문장을 생각하게 된 것은, 한 번에 큰일을 겪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사소하지만 끈질긴 일들 때문이었다.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척하는 말들, 자기 몫 이상을 아무렇지 않게 요구하는 태도, 타인의 시간과 비용과 감당을 너무 쉽게 여기는 습관. 그런 것들이 오래 쌓일수록 사람은 조금씩 닳는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은 늘 큰 사건만은 아니다.
오히려 자잘한 침범과 반복되는 무례가 더 깊이 스며들 때가 있다. 댓글 하나, 말 한마디, 잠시 머문 사람이 전부를 안다고 믿는 태도, 감당한 적 없는 책임을 쉽게 판단하는 말들. 그런 것들은 겉으로 보기엔 사소해 보여도, 반복될수록 사람의 안쪽을 마르게 만든다.
나 역시 그런 장면들을 오래 겪어왔다.
내가 지키고 있는 것들에 대해 너무 쉽게 말을 얹는 사람들, 자기가 감당하지 않은 비용과 책임을 판단의 재료처럼 다루는 사람들, 삶의 맥락을 알지 못하면서 효율과 상식만을 앞세우는 사람들. 그럴 때마다 화가 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감각이 남았다. 내가 자꾸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사람을 끊임없이 반응하게 만든다.
설명하게 하고, 입증하게 하고, 해명하게 하고, 결국은 내 쪽의 에너지를 꺼내 쓰게 만든다. 이 구조 안에서는 잘못한 사람보다 더 많이 설명한 사람이 먼저 지친다. 선을 넘은 사람보다 그 선을 복구하려는 사람이 더 많은 힘을 쓴다. 그러니 모두가 조금씩 날이 서고, 모두가 조금씩 피곤해진다. 그렇게 서로를 소모시키는 삶이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모른 척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아무 일에도 반응하지 않는 태도가 늘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어떤 무례는 제지되지 않을수록 커지고, 어떤 침범은 한 번 허용되면 반복된다.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삶이 조용해지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그 침묵이 내 쪽의 침식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개입이 아니라 기준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일에 반응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내 삶의 경계를 실제로 침범하는 일, 반복되는 무례와 폭력, 구조적인 부당함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지 않겠다. 설명할 가치가 없는 곳에는 더 이상 나를 낭비하지 않겠다. 그러나 끝내 말해야 할 자리에서는 물러서지 않겠다.
아무 데나 닳지 않겠다는 말은 결국 이런 뜻이다.
내 시간을 함부로 내주지 않겠다는 것. 내 감정을 아무 말에나 흔들리게 두지 않겠다는 것. 내가 지켜야 할 것과 굳이 상대하지 않아도 될 것을 분별하겠다는 것. 세상이 소모를 강요할수록, 나는 내 쪽의 보존을 조금 더 또렷하게 선택하겠다는 뜻이다.
이 기준은 대단한 선언이라기보다, 겨우 손에 쥔 작은 원칙에 가깝다.
다 닳아 없어지기 전에 적어도 어디까지는 내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선. 내가 살아온 시간, 내가 감당해온 책임, 내가 끝내 놓치고 싶지 않은 감각과 품위. 그런 것들만큼은 아무 데나 해지게 두지 않겠다는 마음.
세상이 더 거칠어졌다는 말을 나는 자주 실감한다.
사람들은 더 쉽게 판단하고, 더 쉽게 말하고, 더 쉽게 요구한다. 그러나 그 쉬움 뒤에는 늘 누군가의 어려움이 있다. 말하는 쪽이 쉬워질수록 감당하는 쪽은 더 무거워진다. 나는 그 비대칭을 여러 번 보아왔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적절한 만큼은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더더욱 기준이 필요하다.
세상이 사람을 소모시키는 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아무 데나 닳지 않겠다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
조용한 쪽으로 걷는다는 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일이 아니라,
아무 데나 나를 소모시키지 않겠다고 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