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사유를 멈추게 할 때
나는 공감을 목표로 한 문장을 불신한다.
그 문장이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 빨리 합의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공감을 목표로 한 문장은 독자가 불편해지기 직전에 멈춘다.
책임이 생기기 전에 봉합하고,
선택이 드러나기 전에 둥글게 정리한다.
그 결과 아무도 틀리지 않지만,
아무도 어디까지 갔는지는 남지 않는다.
사유는 상태가 아니라 선택 이후에 시작된다.
어디서 돌아섰는지,
무엇을 포기했는지,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기로 한 지점이 어디였는지.
공감을 목표로 한 문장은 이 지점을 건너뛴다.
공감은 빠르다.
너무 빠르다.
“나도 그렇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생각은 거기서 멈춘다.
나는 글이 독자를 안심시키기보다
독자를 불편한 자리로 데려가길 바란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아도 좋다.
대신 한 사람이 여기까지 왔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남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공감을 목표로 한 문장을 조심한다.
그 문장이 너무 친절할 때,
나는 그 친절 뒤에 숨은
사유의 생략을 먼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