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일 수 없는 글쓰기 유형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선택을 말하는 글과, 상태에 머무는 글

by Peppone

섞일 수 없는 글쓰기 유형은 취향에서 생기지 않는다.

문장력의 차이도 아니다.

그 갈림은 훨씬 단순한 곳에서 생긴다.


선택을 말하느냐, 말하지 않느냐.


어떤 글은 늘 가능성의 상태에 머문다.

아직 결정하지 않았고,

아직 열어두었고,

아직 이해하려는 태도를 유지한다.

이 글들은 유연하고, 공감 가능하다.


다른 어떤 글은

이미 건너온 지점을 전제로 한다.

되돌릴 수 없고,

되돌릴 의지도 없으며,

그 결과를 감수하겠다는 태도를 숨기지 않는다.


이 두 글은

같은 단어를 써도

같은 언어를 쓰지 않는다.


선택을 말하지 않는 글은

독자를 안전한 자리에 남겨둔다.

독자는 자기 위치를 유지한 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글들은 함께 읽힌다.


선택을 말하는 글은

독자를 데려간다.

“나는 여기까지 왔다”는 자리를

독자에게 허락하지 않고 통과한다.

그래서 이 글들은 각자 읽힌다.


이 차이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다.

시간의 위치가 다른 글쓰기다.


아직 선택 이전에 있는 글과,

이미 되돌릴 수 없어진 이후의 글은

끝내 섞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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