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2000년대 초였던 것 같다.
정확히는 2000년, 혹은 2006년쯤.
나는 이미 집주인이었고,
그 친구는 대학 동기였고,
서울에 올라와 묵을 곳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 친구는 반지하를 임대했다.
조건은 꽤 쌌다.
200에 30이었나.
그 시절 반지하는 그런 가격이었다.
나는 그 반지하에 자주 갔다.
집주인으로서가 아니라,
그 친구가 나를 위해
책을 보따리로 챙겨왔기 때문에.
라면을 함께 끓여 먹고 책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서로의 습작을 보여주곤 했다.
집주인의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나 또한 옥탑방에 기거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 친구는 출판사에 다니고 있었고,
어느 날부터인가
책을 한 권씩이 아니라
묶음으로 건네기 시작했다.
읽으라는 말도,
설명도 없었다.
그냥 놓고 갔다.
그중 한 권이
**눈먼 자들의 도시**였다.
나는 그 책을 읽었고,
읽고 나서
책이 아니라
그 친구를 다시 보게 됐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선물하기 쉬운 책이 아니다.
위로도 없고,
낙관도 없고,
독자를 기분 좋게 만들 생각이 전혀 없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그 책을 골랐다.
서울에서,
반지하에서,
묵을 곳을 겨우 마련한 상태로
이 책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와서야 의미를 가졌다.
그때 나는 그 반지하에 내려가
임대 조건을 확인하지 않았다.
습기나 채광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줄곧
문장 이야기를 했다.
어디가 막히는지,
어디서 멈칫하는지,
왜 어떤 문장은 자꾸 남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공간에서 오간 대화는
조금 이상했다.
반지하는 낮은 공간인데,
그 안에서 나눈 이야기는
삶의 가장 아래를 다루고 있었으니까.
『눈먼 자들의 도시』는
사람이 눈이 멀면 어떻게 되는가를 묻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보지 않기로 합의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재난 이후의 이야기가 아니라
재난 이전의 태도에 관한 소설이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그 친구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더 훌륭하게 본 것도 아니고,
더 가깝게 본 것도 아니다.
다만,
아, 이 사람은
이런 세계를 보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종종
사람을 드러낸다.
그 사람이 무엇을 믿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외면하지 않는지를.
그제야 알게 됐다.
내가 버티고 있다는 것을
그 친구는
말없이
책으로 전달해 주고 있었던 것 같다는 걸.
그때의 반지하는
『눈먼 자들의 도시』 속 격리소보다
훨씬 인간적인 공간이었다.
적어도 거기에는
서로를 보려는 눈이 있었으니까.
나는 아직도
그 책을 떠올릴 때
반지하의 공기와
라면 냄비에서 올라오던 김,
서툰 문장들이 오가던 테이블을
함께 떠올린다.
우리는 젊고,
가난했고,
늘 허기졌으며,
강했던 것 같아.
그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