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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이 아빠 Dec 26. 2016

후쿠오카의 풍경들

투숙객들의 대화 소리에 잠이 깼다. 오전 8시 더 자고 싶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이 시간에 일어나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대부분은 기차로 외곽으로 여행으로 떠나는 사람들이었다. 분주하게 움직여서 더 많은 것을 보거나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었다. 

피곤한 기운을 억누르고, 2층에 내려가니 샤워장은 이미 투숙객들로 줄을 서서 기다렸고, 내 차례가 언제인지 손으로 세아려 보니 한참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아 급한 일도 없으니 그냥 사람들이 빠지면 씻기로 했다. 어젯밤은 추위에 떨지 않았는데, 온 몸이 쑤신다. 어깨를 탁탁치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해 본다. 조식으로 제공되는 식빵 한조각과 인스턴트 커피로 아침을 먹는다. 슈지상이 냉장고에 내 칸을 하나 만들어줬지만 아직까지 음식을 채워 넣지는 않았다. 빵을 먹을 때 발라먹는 잼이나 스프레드라도 사 놓아야겠다. 매일 먹는 빵과 딸기잼이 지겨워져서 새로운 맛을 찾아 하루를 시작해 보고 싶었다. 

세면장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자 슈지상이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넨다. 나도 웃으며 아침 인사를 하고, 전날 늦게 체크인을 한 사람들과 보증금을 전달해 주었다. 슈지상은 고맙다며, 게스트 하우스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나는 슈지상을 아침에 만날 때면 얼굴은 늘 꼬질꼬질 하거나 팅팅 부어 있다. 세수 안 한 얼굴에 편한 복장이 늘 그에게 주는 내 아침 첫 인상인 듯 싶다.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추천 여행지나 식당들을 물어보니 시내로 갈 것인지, 외곽으로 갈 건지를 물어 본다. 오늘은 되도록 시내 쪽을 보고 싶다고 하니 야쿠인과 아카사카, 그리고 오호리 공원 근처를 안내해 주었다. 후쿠오카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식당들을 추천해 주었고, 지하철이나 버스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해주면서 여유가 있다면 걸어서 가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고 했다. 오늘은 그리로 가는 것만으로 하루는 금세 지나갈 듯 했다. 

밖으로 나오느 겨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따뜻했다. 12월 중순인데도 춥기 보다는 서늘하다고 느낄 정도의 날씨였다. 평일 오전의 길거리에는 길고양이와 나뿐이었다. 조용하니 산책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슈지상이 이야기 해 준 루트를 구글맵을 켜고 찬찬히 보았다. 차로 가기에는 애매했고, 걸어가자니 힘들어보였지만, 남는 건 시간이니 천천히 걸으며 구경을 하러 가보기로 했다. 이 도시는 마치 깨끗하면 안되는 법이 있는 것처럼 깨끗했고, 마치 새로 지어진 길 같이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길을 걷다보니 운하도 보였는데 비록 배는 없었고 강만 유유히 흐리고 있었지만 이 것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어느새 생각없이 걷고, 멈추고, 사진 찍기를 반복하며 걷다보니 사쿠라자카라는 곳까지 와버렸다. 잠시 길을 잃었나 생각했지만, 길을 잃으면 어떠냐 이 것도 추억이고 남는 건 시간인데 천천히 걸어서 다시 돌아가면 되니 조급해 하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근처에는 푸드 트럭도 많았고, 잡화점들도 눈에 들어왔다. 옆에는 중학교가 있어서 잠시 멈춰서 구경을 했는데, 체육 시간인지 운동장에서 발맞추어 구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 내 중학교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구령 소리가 다르다는 점이랄까? 이 부분을 제외하고 운동을 싫어해 보이는 여학생 몇 명도 눈에 들어왔다. 역시 어디를 가나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은 있나보다. 그리고 표정들을 보니 천진난만한 모습들이다. 보고 있자니 저기로 들어가 같이 뛰놀고 싶었다. 

거리를 더 걷고 싶어 걷고 있자니 배가 고파오기 시작해 주변에 있는 식당들의 메뉴들을 찬찬히 살피며 걸었다. 점심 시간대라 그런지 대부분의 식당들이 런치 메뉴를 충실히 갖춰 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가라아게 정식부터 돈까스, 카레, 명란젓 등등 대부분이 어린이 식단 같은 메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메뉴가 좋을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불현 듯 슈지상이 안내해 준 식당이 생각나 그 곳의 위치를 기억해 걷기 시작했다. 근처라 도착하고 보니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의 나라면 30분 대기 하는 것조차도 밥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건 시간 낭비라 생각했는데, 여기에 오고 나서부터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일본에 유명한 식당들은 대부분이 30분 정도 대기하면 짧다고 이야기하고 그 이상이 됐을 때부터는 오래 기다린다고 생각한다. 역시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인가 보다. '30분이나 기다려야 되와 30분 정도 기다리지'에 미묘한 차이인 듯 싶다.  오늘도 여전히 30분 이상은 대기라고 이야기 했다. 그 줄에 끼어서 나도 일본인처럼 가만히 대기를 하며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대부분은 혼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었고, 직장 동료나 친구와 식사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다. 문고본이나 만화책 스마트폰을 보며, 지루한 대기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자리를 합석해야 한다는 말에 조용히 자리에 앉아 메뉴를 살펴보니 A런치 또는 B런치라고 쓰여 있었다. 포함되어 있는 부분이 다르긴 했지만, A런치가 더 저렴해 보여서 그 걸로 주문하고 앉아 있자니 5분이 지났을까 바로 메뉴가 나왔다. 마치 중국집에서 짜장면이 나오는 속도와 비슷해 보였다. 

반찬도 없는 심플한 식사에 맛을 음미하며 조용히 밥을 먹는데만 집중했다. 동영상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보며 식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에 쫓기에 밥만 먹고 나가는 것 같았다. 나도 그들과 함께 그들의 방식에 편승해 식사를 재빠르게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하나사서, 마시니 어느새 2시가 되어간다. 일이 없으니 그저 시간 때우고 왔다갔다 하는 것만 몸이 쑤시는 것만 같다. 

걷고 있으니 다리도 아파오고, 허리도 아픈 것 같다. 사람들 대부분이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자전거가 갖고 싶었다. 저 것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늘 집에 들어가면 중고 자전거라도 알아봐야 겠다. 자전거 생각이 정리되던 중에 일본어 관련 서적 및 여행 관련 책자가 필요하여, 서점에 들렀다. 일본이 부러운 이유 중에 하나는 분야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어 그 분야에 관한 책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자전거'라는 주제가 있다면, 그 것에 대한 역사부터 종류, 타는 법, 브랜드 관련 책자, 디자인 등등 세분화 되어 판매를 하고 있었고 자기에게 꼭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해서 볼 수 있었다. 출판 산업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단적인 예였다. 한국에서 책을 살 때는 한권에 전문 분야가 들어가 있어 전문적인 부분을 찾아볼 수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필요한 책 두권을 구매한 후 아침에 생각해 놓은 스프레드와 저녁 거리, 과일, 디저트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2층에는 다들 놀러 나갔는지 조용했고 게스트 하우스 스태프 미유키만 이 곳을 지키고 있었다. 여기 직원들은 대부분이 자유로웠다. TV를 보고 싶으면 보고, 게임을 하고 싶으면 하고, 손님들과도 거리낌없이 술판을 벌인다. 참 즐겁게 일하는 곳이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생각해보니 나도 여기서 일하는 직원인데, 지금에 나도 그렇게 일하고 있구나. 

편의점 음식을 데우고, 콘스프와 함께 먹고 있을 때, 미유키는 내가 걱정스러운지 '편의점 음식 너무 자주 먹는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세요'라고 핀잔을 주었다. 내 걱정을 해서 고맙기는 했어도 잉여인 내가 벌이가 있어야 제대로 된 걸 먹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미유키 말대로 내일부터는 제대로 된 식사라도 먹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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