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 배웠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예술가는 창작, 연주, 연기, 춤 등 각자가 잘하는 예술 행위를 통해 작품과 무대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은 그것을 향유하고, 이를 통해 사회는 더욱 다양하게 변모한다. 이 다양성은 곧 사람들의 여가를 넘어 국가경제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K-POP이 한국의 산업 전반에 미친 영향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환경적, 제도적,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응당 보장되어야 할 예술 활동과 향유에는 분명한 벽이 있었다. 사회에서는 그 벽을 장애, 성별, 경제적 능력 등 개인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으나, 실상은 사회적 구조의 문제가 대부분이다.
나는 공연 만드는 일을 한다. 장르나 성격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업을 하지만, 큰 파이를 차지하는 것이 ‘장애 예술 활동’이라 불리는 분야다. (나 역시 장애인이지만) 장애인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는 언제나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쉽지 않음은 장애 예술가 실력이 부족해서는 아니다. 대부분이 환경적인 요인이었다. 그냥 장애가 있으면 예술을 하기도, 즐기기도 어렵다.
장애인 중 예술가로 활동하는 인구는 약 7,092명, 기관·협회·단체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활동을 한 장애인은 25,722명에 달한다.(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1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실태조사 및 분석연구) 국내 예술인으로 등록 완료된 인구가 약 11만 명(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1년도 KCTI 예술동향분석 통계자료) 임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런데 장애 예술가가 처한 현실은 어떠한가?
2020년 장애 예술인의 문화예술활동을 통한 연 수입은 218만 1,000원(에이블뉴스)이다. 전체 예술인의 연 수입이 평균 755만 원(일요서울)인 것에 비해 상당히 낮다. 2021년도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문화시설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있는 예술인은 평균 1,549.6명이지만, 그중 장애인은 8.6명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전체 문화시설 중 88.0%에는 장애 예술인이 활동하고 있지 않다.
수치에서 알 수 있듯,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 반경은 비장애인에 비하면 협소하고, 기회도 매우 적다.
그렇다면, 예술을 즐기는 측면에서 장애인의 현실은 어떨까?
이 역시 쉽지 않다. 2022년 전국 국립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등 국공립, 민간 문화시설을 대상으로 했던 장애인 접근성 실태조사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장애인 접근성 관련 내부규정을 마련하고 있는 곳은 30%, 지난 3년간 베리어프리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곳은 11.1%에 불과하다. 장애인의 접근성은 시설 규모에 따른 편차도 큰데, 이를테면 대형 극장의 경우 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으나, 소규모 클럽이나 소극장의 경우 해당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누구는 휠체어 타는 사람이라고 무대가 잘 보이지 않거나, 음향이 좋지 않은 자리에 앉아야만 하는지. 누군가는 “장애인이면 복지할인받아서 싸게 보니까 그 정도는 감내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하는데,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공연이라면 차라리 제값을 주고 좋은 자리에서 감상하는 것이 훨씬 좋다.
이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소위 오브리라 불리는 연주 아르바이트에 시각장애 연주자를 추천하면 실력은 묻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한다. 시각장애 연주자라고 해도 악보만 미리 주면 다 외워서 할 수 있다. 오히려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사람이 악보는 보면서 연주하는 사람보다 연주 자체는 더 깔끔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렇듯 장애인에게 문화예술은 창작도 향유도 결코 평등하지 않다. 나는 공연 만드는 일을 하면서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마주해야만 했다. 나의 장애는 경증으로 분류되는 수준이라 나 자신이 직접적인 불평등을 겪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나와 함께 일하는 다른 예술가, 내가 만든 공연을 찾는 관객이 겪는 불평등은 그때마다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런 불평등은 결국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관객 유입을 차단하며,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나는 공연 만드는 일을 시작할 때, 세상을 바꾸자는 야망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예술이 좋았고, 무대 주변을 서성이는 것이 좋았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가까이서 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데 좋은 예술가의 좋은 작품을 볼 수 없는 이 환경이 걸리적거렸다.
이제부터 내가 이야기할 버즈비트 프로젝트 역시 이런 걸리적거리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자 시작했다. 첫 시작은 시각장애 연주자만을 위한 것이었지만, 점차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버즈비트 프로젝트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시키는 이야기다. 예술이 기술과 만나 창작의 접근성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보통들 ‘예술과 기술’이라 이야기하면 대뜸 메타버스, 드론, NFT 이런 것을 떠올리는데, 내가 다룰 이야기는 그런 화려해 보이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그런 것에 비해 소박해 보이던가, 심지어는 아예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게 가리기까지 한다.
중요한 것은 예술 자체이고, 예술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보조의 역할이다. 결국 예술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으로 완성된다.
이 글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각기 다른 역할과 환경의 사람이 함께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다루며, 그 사이에 장애와 접근성, 예술과 기술 융합, 사람들의 인식과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잘 됐던 것도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후회되는 선택도 있다.
그러니 이 글은 나만의 오답 노트이자, 나와 뜻을 함께했던, 모두를 위한 예술을 위해 고분분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