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1 성 베네딕토
중국 선(禪)불교는 육조(六祖) 혜능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선불교는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를 초조(初祖)로 삼지만,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을 표방하는 선불교의 특성은 혜능에 이르러 뚜렷한 색채를 드러낸다. 혜능의 가르침을 제자가 편집한 책이 『단경(壇經)』이다. 보통 『육조단경』으로 부른다. 원래 불교에서 ‘경(經)’은 부처님의 설법을 담은 경전을 가리킨다. 유일한 예외가 혜능의 법문인 『육조단경』이다. 제자들이 붙인 이름이지만, 그만큼의 권위를 인정받았기에 후세까지 같은 제목으로 남았을 것이다. 혜능은 단박에 깨친다는 돈오(頓悟)를 내세우는 남종선의 시조가 된다. 그로부터 화두(話頭) 참구(參究)와 확철대오(確徹大悟)를 요체로 하는 선(禪)의 황금시대가 열렸다. 혜능이라는 하나의 꽃에서 선종의 다섯 종파가 나왔다고 해서 일화오엽(一花五葉)이라는 말도 생겼다.
그리스도교 영성사에도 육조 혜능에 비견될 만한 인물이 있다. 성 베네딕토(S. Benedetto da Norcia)가 바로 그분이다. 시기적으로는 베네딕토(480~547) 성인이 혜능(638~713)보다 150년 정도 앞선다. 이집트 사막에서 싹튼 그리스도교의 수도 문화는 유럽으로 전파된 뒤 베네딕토 성인을 통해 찬란한 영성의 꽃을 피웠다. 성인이 남긴 단 하나의 저술이 『규칙』이다. 보통은 『베네딕토 규칙(Regula Benedicti, RB)』으로 부른다. 이 책은 수도승과 수도원 공동체가 지켜야 할 영성 생활의 규칙을 73장에 걸쳐 서술한다. 어찌 보면 헌법이나 법률 서적처럼 딱딱한 내용이다. 실은 그 건조한 틀 속에 수도 생활의 거의 모든 요소를 담고 있다. 순종, 침묵, 겸손, 노동, 기도 같은 영적인 가치와 식사, 수면, 의복, 책벌 같은 세세한 생활 규정을 조화롭게 다룬다. 이로써 이 책은 서방 수도 생활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6세기 이후 유럽의 거의 모든 수도원은 이 규칙을 직접 따르거나, 새롭게 적용하며 수도 문화를 꽃피웠다.
성 베네딕토를 육조 혜능이 아닌 달마대사와 비교하는 관점도 있다. 달마는 생몰연대를 알 수 없지만 대체로 성 베네딕토보다 조금 앞선 것으로 추정한다. 달마는 북위(北魏) 시대 허난(河南)성의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면벽 수련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로써 그는 경전 중심의 교종과는 결이 다른 선종의 창시자가 된다. 그러나 달마의 수행과 가르침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자료는 거의 없는 편이다. 인도의 문헌이나 중국 선종 초기의 문헌에서는 달마에 관한 언급이 보이지 않는다. 서역에서 온 보리달마라는 사문이 있었다는 간단한 기록만 찾을 수 있다. 현대의 연구는 그에 관한 대부분의 설화를 허구로 본다. 중국 선불교의 기원을 정립하려는 후대의 창작으로 보는 쪽이다. 저 유명한 염화미소(拈華微笑)의 일화마저 인도에는 없는, 중국 위경(僞經)의 산물로 드러났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선불교의 위대한 가치는 조금도 훼손되지 않는다.
달마가 인도 불교를 중국에 전한 인물이라면 사막의 수도 문화를 유럽에 전한 인물로는 에바그리우스와 그의 제자인 카시아누스를 꼽을 수 있다. 그들은 이집트 켈리아 사막의 치열한 수도승이면서 탁월한 저술로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에는 이 두 수도승의 가르침이 녹아 있다.
오늘날 성 베네딕토는 ‘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지’로 불린다. 더 나아가 유럽 정신문화의 신성한 샘으로 존중받는다. 유럽의 도시나 국가는 대개 특정한 성인을 수호자로 삼아 공경하고, 그 성인을 통해 하느님의 보호를 청하는 전통이 있다. 이를 수호성인, 혹은 주보성인이라 한다. 다양한 민족과 국가로 구성된 유럽 전체의 수호성인은 성 베네딕토이다. 1964년 바오로 6세 교황이 선포했다. 유럽이 정치와 경제 통합을 위해 유럽공동체(EC)를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이 성인의 성덕과 유럽 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 매우 적절한 결정으로 환영받았다.
베네딕토 성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적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한 권의 전기뿐이다. 성인을 흠모했던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이 남긴 『대화집』 속에 한 부분으로 들어있다. 『대화집』은 성인들의 기적 이야기를 수집한 문헌이다. 모두 네 권인데, 제2권에서 베네딕토 성인을 다룬다. 이 제2권을 따로 떼어 『베네딕토 전기』로 부른다. 고대의 전기 문학들이 그렇듯이 역사적이고 연대기적인 서술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전기에 나타난 단편적인 일화를 통해 그의 삶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노르치아(Norcia)에서 태어났고, 로마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500년쯤에 로마를 떠나 수비아코로 갔고, 그곳의 한 동굴에서 3년 동안 고독한 은수자로 살았다. 은수처가 알려지면서 제자들이 찾아왔고, 그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위한 수도원을 세웠다. 그러다 아마도 교구 사제와의 갈등으로 수비아코 공동체를 떠난 듯하다. 529년쯤에 옮겨 간 곳이 더 남쪽인 몬테카시노였다. 그곳 산꼭대기에 수도원을 짓고 공동체의 영적 사부로 지내다가 547년에 숨졌다.
『베네딕토 규칙』은 “들어라, 오 아들아”(*1)라는 인상적인 첫마디로 시작한다. 이 규칙에는 수도 생활에 관한 성인의 높은 지혜가 잘 드러나 있다. 전기를 쓴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은 이를 ‘탁월한 분별력’(『대화집』 2,36)으로 표현했다. 일종의 내적 통찰력을 의미한다. 엄격한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기보다 공동체의 상황과 수도승의 역량을 충분히 헤아렸다는 뜻이다. 베네딕토 성인은 분별력을 ‘덕행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수도원의 장상이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로 꼽았다. 분별력은 또한 중용과도 통한다. 이상과 현실, 엄격과 관용, 절제와 배려의 요소를 조화롭게 적용하는 슬기를 보여준다.
베네딕토 성인은 규칙에서 두 종류의 수도승을 특별히 경계했다. 수도원에서 떨어져 나가 홀로 또는 두셋씩 어울려 살아가는 거짓 수도승(*2)이다. 그들은 규칙도 없고 스승도 없이 사는 지극히 위험한 부류이다. 베네딕토는 이들을 가리켜 “삭발로써 하느님을 속이며 행실로는 여전히 세속에 충성을 다하는 이들”이라고 혹평한다. 불교에도 ‘무사자오(無師自悟) 천마외도(天魔外道)’라는 가르침이 있다. 눈 밝은 선사의 점검 없이 홀로 깨달았다고 하는 이들의 위험을 강조한 말이다. 또 하나의 부류는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고대의 떠돌이 수도승(*3)이다. 이들은 어느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이 수도원 저 수도원을 떠돌아다닌다. 이들에게는 규칙과 스승은 물론 공동체도 없다. 베네딕토 성인은 거짓 수도승보다 더 나쁘다고 혐오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떠돌이 수도승의 전통은 거의 사라진 듯 보인다. 성 베네딕토의 제자들은 입회할 때 세 가지를 서약한다. 정주(定住, stabilitas), 순명(順命, oboedientia), 정진(精進, conversatio)이다. 정주는 몸과 마음으로 그 수도원에 항구히 머물겠다는 약속이다. 순명 또는 순종은 수도원의 장상과 공동체의 규칙을 겸허히 따르겠다는 의미이다. 정진은 수도승 생활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이다.
이제 성 베네딕토를 만나러 간다. 베네딕토 영성의 샘, 몬테카시노와 수비아코를 향해 터벅터벅 걷는다. 유럽 수도원의 역사를 고려하면 순례의 첫 순서로 몬테카시노를 방문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1) Obsculta, o fili
(*2) sarabaita
(*3) girovag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