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의 수도원

01-02 몬테카시노 수도원

by Peregrinante in Spem

몬테카시노(Monte Cassino)는 카시노 산이라는 뜻이다. 도시 이름이 카시노(Cassino)였다. 혹시라도 카지노(Casino)를 연상하면 곤란하다. 구글 AI에게 물어보니 카지노의 어원은 이탈리아어 ‘카사(casa, 집)’였다. 카지노는 ‘작은 집’이라는 뜻이다. 시골의 작은 별장이나 사교 모임이 이뤄지는 장소를 카지노라고 불렀다. 이런 곳에서 카드 게임 같은 오락이나 도박이 성행하면서 도박장의 의미로 굳어졌다. 그래도 혹시 이곳에 카지노 업장이 들어서지 않았을까. 역 앞에 있는 카페 직원에게 문의하니 어이없다는 웃음을 터트린다. 카시노에는 카지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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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노는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나그네의 눈에는 쾌적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인구가 3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좀 크다. 이탈리아 행정단위로는 코무네(comune)인데, 우리나라 시나 군에 해당한다. 마을 서쪽에 몬테카시노가 있고, 그 꼭대기에 수도원이 있다. 말 그대로 산 위의 수도원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 수도원이 보이겠다 싶었다. 수도원이 깊은 산속에 있는 경우야 흔하지만, 이처럼 산정에 있는 수도원은 처음 본다.


수도원을 걸어서 방문하겠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해발 519m의 산을 오르는 길이다. 서울 남산(270m)의 두 배 가까운 높이다. 구불구불한 차도를 따라 8km 정도를 걸어야 했다. 왕복 16km,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이 정도의 땀도 흘리지 않고 어찌 시원한 샘물을 얻어 마실까. 고행이라고 하기에는 좀 약했지만, 아주 기쁜 마음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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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턱쯤부터는 시야가 트이면서 산 아래 전경을 내려다보는 맛이 장쾌했다. 가다 보니 걷는 이들이 꽤 있다.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 사이클을 타고 스쳐 가는 젊은이들, 러닝 복장으로 뛰는 남녀, 다들 셔틀버스를 외면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오르고 있다. 더러는 배낭을 멘 순례자의 모습도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괜스레 묻는다. “수도원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한 시간 반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사진 찍고 쉬어가며 두 시간 남짓 걸렸다.


몬테카시노 수도원의 설립은 529년경으로 본다. 신라 법흥왕 때 건립(528년)된 경주 불국사와 비슷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 수도원의 역사는 단절과 폐쇄와 파괴로 얼룩져 있다.


베네딕토 사후인 570년경에 이미 랑고바르드인의 침략과 약탈로 버려졌다. 8세기에 재건되었다가 9세기에 다시 사라센의 침략으로 약탈당하고 폐허로 변했다. 10세기에 재건되어 11~12세기에 잠시 황금기를 맞았지만, 14세기에는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그 이후로도 프랑스군의 약탈과 이탈리아 정부의 해산 조치,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 등이 이어졌다. 수난의 세월 속에 살아남은 건축물은 하나도 없었다. 현재의 수도원 건물은 종전 이후 이탈리아 정부의 지원으로 다시 세워졌다. 1964년 10월 24일, 교황 바오로 6세가 대성전을 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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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정문이 보인다. 비탈진 광장의 담장 밑에 음수대가 눈에 띈다. 힘겹게 올라온 나그네가 시원하게 목을 축인다. 고개를 드니 머리 위에 베네딕토 성인이 내려다보고 있다. 담장 위 소나무가 무성해 언뜻 보이지 않던 청동 조각상이 그제야 보인다. 성 베네딕토의 동상은 대개 책을 한 권 들고 있는 모습이다. 『베네딕토 규칙(RB)』을 상징한다. 그 규칙의 탄생지가 바로 이곳이다. 자세히 보니 펼쳐진 책장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사진을 찍어 확대해 보니 저 유명한 문구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이다. 그렇게 몬테카시노 수도원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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