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3 수도원의 환대
배정된 숙소는 수도원 2층이었다. 봉사자는 방문 앞까지 안내하더니 열쇠를 건네주고 돌아갔다. 터널처럼 길게 보이는 복도의 중간쯤이었다. 저쪽 끝에서 눈 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인 신비감이 휘돌았다.
방문에는 ‘28’이란 숫자가 적혀 있었다. 문을 열자,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 휴식용 의자 하나가 보였다. 침대 위에는 깨끗하게 세탁된 시트와 수건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한쪽에 화장실과 샤워 공간을 따로 갖췄다. 혼자 머물기에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서너 평 크기였다. 애초에 수도승을 위해 설계한 방이었을 것이다. 때로는 공간이 생활을 지배하는 법이다. 수도승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은 바로 이런 공간의 틀에서 싹트고 자란다.
책상 위에는 세 가지 물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탈리아어 성경과 베네딕토 규칙서, 그리고 반으로 접힌 인쇄물 한 장이다. 인쇄물은 수도원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 지침과 일과표를 안내하는 내용이다. 그 표지에 이탈리아어로 이렇게 적혀 있다.
“Tutti gli ospiti che giungono al monastero siano accolti como Cristo stesso.” (수도원을 방문하는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할 것이다.)
이 문장은 베네딕토 규칙(53,1)에 나오는 말이다. ‘손님 환대’는 베네딕토 성인이 매우 강조한 원칙이었다. 규칙에서 이어지는 문장은 이렇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 합당한 공경을 드러낼 것이며, 특히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과 순례자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손님이 왔다는 통보가 있으면 즉시 장상과 형제들은 달려 나가 애덕의 지극한 호의로 그를 맞이할 것이다.” 오늘날 베네딕토회의 모든 수도원은 이 가르침대로 손님 환대를 실천하려 애쓴다. 물론 수도원의 형편에 따라 환대의 방식은 달라진다.
몬테카시노 수도원에는 ‘손님의 집’이 따로 없다. 수도원 시설이 넉넉해 별도의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없는 탓이다. 대수도원의 2층이 주로 손님용으로 쓰인다. 한꺼번에 수십 명이 와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여분의 방이 있다.
2차 대전의 폭격 이후 이 수도원 재건은 이탈리아 정부가 나섰다. 아마도 유럽 정신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곳임을 고려했을 것이다. 백 명 넘는 수도승이 살아도 좋을 만큼 크고 웅장하게 지었다. 그러나 어쩌랴. 한 번 파괴된 공동체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프랑스혁명의 호된 풍파 이후 유럽 전역에서 종교는 급속하게 쇠락의 길을 가고 있다. 현대인의 이성과 합리주의가 신앙의 신비를 밀어내고 있다. 수도승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어 지금은 열 명이 채 안 되는 수도승이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숙소 창문을 열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카시노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로 유순하게 솟아오른 산과 하늘이 만나 부드러운 능선을 펼쳐내고 있다. 최고급 호텔의 최고급 객실에서나 볼만한 전망이다.
얼마 후 손님 응대를 담당하는 루이지(Luigi, Ludovico) 신부님이 찾아오셨다. 수도원 방문을 앞두고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분이다. 영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하시며 소통하려고 애쓰셨다. 온화한 미소와 정중한 태도는 내가 환영받고 있음을 충분히 느끼도록 해주었다. 걱정했던 모든 염려가 사라지면서 비로소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절대로 흔한 일이 아니다. 신분도 목적도 특별할 게 없는 낯선 방문객을 이토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모두가 성 베네딕토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루이지 신부는 저녁기도 시간 10분 전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빠드레 루이지(Padre Luigi)', 그 이름을 가슴에 담았다.
수도원과 성당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저녁기도에 참석했다. 성무일도의 기본 양식은 어디서나 같아서 언어가 달라도 큰 틀을 알고 있으면 대략은 따라갈 수 있다. 다만 눈으로 따라갈 뿐 차마 소리까지 얹지는 못한다. 입안에서 맴도는 작은 소리로 겨우 위안을 삼는다. 어쨌거나 유서 깊은 수도원의 공적 기도에 함께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어진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뜻밖에 한국인 신부님을 만났다. 베네딕토회 왜관 수도원 소속인 H 신부님이었다. 로마에서 유학 중인데 방학을 맞아 한 달 동안 몬테카시노 수도원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루이지 신부님의 부탁까지 받고서 어떻게든 나를 도와주려고 하셨다. 나로서는 수도원 체험의 마지막 장애물인 언어 문제까지 피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분이었다. 이 수도원은 마치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하나씩 풀어주며 감동을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