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4 수도원의 식사
수도원에 머물겠다고 메일을 보낼 때는 걱정이 들었다. 혹시라도 귀찮은 존재로 여겨지면 어쩌나. 수도원 순례나 체험으로 포장하긴 했지만, 과연 흔쾌히 받아 줄 것인가. 기도와 미사를 함께 드리고 싶다고 했지만, 그토록 순수한 목적만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수도원을 무슨 동물원 구경하듯이 염탐하러 오는 방문객도 충분히 겪었을 것이다.
수도원의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최소한 1박만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수도원에서 함께 기도하고 미사에 참례하고 싶습니다. 저녁과 아침 식사는 스스로 준비하겠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식사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모든 게 불가능하다면, 괜찮아요. 하룻밤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저에게는 좋은 순례가 될 거예요.”
며칠 후 답장이 왔다. “도착 시간과 출발 시간을 알려주세요. 수도원에 머무르신다면 수도승들과 함께 식사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야호!’를 외쳤다. 은근히 기대했던 수도원의 식탁에 초대된 것이다. 한국 수도원의 식사는 몇 차례 경험했지만, 유럽의 전통 있는 수도원의 식탁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손님의 집’에서 따로 하는 식사가 아니라 수도승과 함께하는 식사라니!
베네딕토 규칙을 읽다가 특별히 감동한 적이 있다. “아빠스의 식탁은 항상 손님들과 순례자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RB 56,1) 아빠스(Abbas)는 대수도원의 원장이다. 수도원은 단식과 금욕의 절제된 생활이 있는 곳이다. 외부인과의 식사가 그리 쉬울 리 없다. 그럼에도 손님 환대의 정신을 식탁으로까지 연장하고 있다. 손님과의 식사를 아빠스의 임무로까지 규정했다.
몬테카시노 수도원에서는 첫날 저녁과 다음 날 아침, 두 끼의 식사를 함께했다. 두 끼 모두 침묵 중에 이뤄지는 고요한 식사였다. 식탁 앞에 둘러선 채 공동으로 식사 기도를 마치자, 주방 봉사자가 음식을 내어왔다. 수프, 다진 고기가 들어간 미트볼, 삶은 야채로 구성된 단출한 메뉴였다. 필요한 만큼 덜어 먹을 수 있었다.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는 배가 무척 고팠다. 늦지 않게 오려고 점심을 제대로 못 챙겨 먹었다. 눈치 보지 않고 듬뿍 담았다.
식탁에는 검은 옷의 수도승 말고도 몇 사람이 더 앉았다. 용모가 준수한 청년 두 명이 눈길을 끌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수도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체험 기간을 거치고 있는 지원자라고 했다. 성소(聖召)! 거룩한 부르심이 열매 맺기를 기도하며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밖에 수도원 봉사자와 장기 체류 중인 손님이 몇 분 있었다. 하루짜리 뜨내기 방문객은 나밖에 없었다.
식탁 위에 예쁜 호리병과 과일 바구니가 미리 놓여 있었다. 빵도 함께 있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식사 중 대화는 금지되어 있지만 호리병을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와인인가요?” “네.” 수도원의 식탁에 초대된 사실 자체로 살짝 흥분했던 것 같다. 호기심까지 발동해 연거푸 서너 잔을 마셨다. 나 말고는 그렇게 마시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한 잔 정도이거나 그마저 마시지 않는 분위기였다. 식사는 8시, 끝기도는 9시였으니, 나는 기도 시간에도 살짝 취해 있었다. 다음 날엔 좀 자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다. 아침 식사는 빵과 시리얼, 커피가 전부였다.
수도원 식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식사 중 독서이다. 모두가 침묵 중에 고요히 먹는데 어디선가 책 읽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탈리아어라 내용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낭랑한 소리는 식사 시간 내내 귀를 사로잡았다. 분명 소리는 들리는데 읽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하늘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듯했다. 나중에 물어보고서야 위치를 알았다. 식당의 층고가 높았는데, 천장 가까이 높은 곳에 독서대가 있었다.
수도원에서 식사 중 독서하는 관례는 베네딕토회의 고유한 전통은 아니다. 베네딕토 이전의 수도 생활 문헌들도 이미 언급하고 있다. 베네딕토 성인은 이런 모범을 규칙으로 수용했다. “형제들의 식탁에서 독서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RB 38,1)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완전한 침묵을 지켜 단지 독서자의 목소리 외에 감히 어떤 수군거림이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할 것이다.”(38,5)
식사 중 독서는 음식을 먹을 때조차도 영혼의 양식을 함께 챙기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 수도승은 입으로는 음식을 먹으면서 귀로는 말씀을 듣는다. 육체를 위한 음식과 영혼의 양식을 함께 섭취하는 시간이다. 잘 생각해 보면 이점이 많다. 대화를 허용하면 쓸모없는 잡담이나 논쟁으로 흐르기 쉽다. 완전한 침묵만을 강요하면 무겁고 불편한 분위기에 짓눌린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세속적인 관심사나 악마의 속삭임에 빠져들 수도 있다. 거룩한 독서가 그 모든 것을 막아준다.
독서의 내용은 주로 성경이었지만, 점차 성경 주해서, 교부 문헌, 각 수도회 고유의 영성 작품 등으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 독서는 수도승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보통 일주일씩 봉사한다고 한다. 다만 단순히 순서대로 담당하지는 않았다. 듣는 이를 감화시킬 만큼 준비된 형제들에게 독서를 맡겼다.
그날의 독서가 성경이었는지 다른 문헌이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이탈리아어는 안 그래도 음악적 요소가 강한 언어이다. 음률의 높낮이와 음운의 조화가 거의 음악처럼 흘러간다. 내용을 모르고 들을 때는 더욱 그렇다. 마음으로 듣는 이에게 언어는 더 이상 장애가 되지 못한다.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세상이 있다. 감각이 닫힐 때 비로소 들리는 영혼의 소리도 있다. 은총이 파동이 되어 공간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