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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Feb 28. 2024

회사를 그만두면 남을 것들

#10

퇴근길. 비 같은 눈이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다음 주면 퇴사하는 동료를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운전하며 예전 내 생각이 나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회사에 와서 운전한 게 금빛플라워를 다녀오는 거였는데, 갔다 와서 주차하려고 보니까 사이드미러가 접혀있는 거예요. 접힌 지도 모르고 달린 거죠. 초보니까 고개를 돌릴 여유 따위 없었고, 옆에서 차선변경하면 된다고 알려줘서 다녀올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사이드미러를 자주 봐요. 이제 옆을 볼 수 있게 된 거죠. 성장했죠. 전에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뭐가 남을까 생각한 적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운전이에요.’   

  

그리고 그 동료에게 회사를 그만두면 무엇이 남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그는    

 

‘전 다니면서 생각보다 글을 많이 쓴 거 같습니다. 그게 남는 거 같습니다. 전에는 중학생 때처럼 글을 썼는데, 지금은 담백하게 글을 쓰게 된 거 같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지 않고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게 된 거 같습니다. 그게 지금 저에게 도움이 되는 거 같습니다.... 네. 글 쓰는 게 남는 거 같습니다’     

라고 했다. 신선했다. 그리고 전에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신기하기도 했다.    

 

난, ‘이번달만 다녀보자’하며 회사를 다닌 게 어느덧 만 5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회사를 그만두면 무엇이 남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처음 스쳐 지나간 건 ‘돈’. 분명 입사 전보다는 통장잔고가 많아졌다. 하지만 월급이 많지 않은 직종이기도 하고, 돈은 한순간 사라질 수도 있기에, 나에게 ‘남는다’고는 여겨지진 않았다.   

  

그리고 ‘운전’. 회사를 다니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운전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 지금 운전을 하게 된 건 큰 변화고, 내가 갖게 된 능력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겨 운전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남는다’고 확실히 말하지는 못할 거 같았다.     


그리고 ‘사람’. 직장을 다니며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연락하며 친구로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 이게 남는 것 중에 제일 큰 몫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따로 남는 건 없었지만, 친구를 얻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살면서 바쁘다거나 해서 연락을 자주 못하는 경우도 있기에, 이것만으로는 남는 것을 충분하게 다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난 다시 무엇이 남는지 생각해 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을 했는지 잠시 돌아보았다. 회사를 다녀서, 그렇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것들을 말이다.     

제일 처음 떠오른 것은 가족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것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벌고 운전을 해서 다녀올 수 있었던 거다. 내가 먼저 여행을 가자고 할 수도 있었고, 외식을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다양한 만남이었다. 일하지 않을 때는 친구와 만남과 경비도 최소화했다면, 회사를 다니면서는 함께 여행도 다녀오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내가 사기도 했던 거 같다.

또 소속을 이야기할 수 있고 비용을 낼 수 있었기에, 원데이클래스나 새로운 모임에 용기 내어 참여했던 거 같다. 가뜩이나 내성적인 나는 그나마 그 덕에 다양한 경험과 사람을 만나고 유지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러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순간’이 남았다고.     

돈, 운전, 사람은 모두 남아있지만 또 어느 순간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의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 거 같다. 시간 속에 박제되어 삶 속에 존재하니 말이다. 혹여 기억을 잃더라도 말이다.    

 

5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시점에, 회사와 상관없이 내 삶에 뭐가 또 남아있는 가도 생각했을 때, 무엇이라고 아직은 확실히 말하기 어려웠다.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결과물을 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고 목표한 것이 있지만 아직은 이루지 못해, 어쩌면 5년 이란 세월을 보며 조급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순간’이 내게 조금은 위로가 되어 주는 거 같다.   

   

다시금 사라질 그 무엇을 바라보고 참고 사는 게 아니라, 지금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 경험하는 순간을 만족스럽게 채우는 게 중요하다고 다시 느껴졌다. 그래서 그럴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이 중요하고, 순간을 온전하게 보내기 위해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도 중요한 거 같다.     

지금 ‘순간’을 온전하게 보내며, 지난 ‘순간’을 떠올리며 위로받고, 앞으로의 ‘순간’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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