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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Feb 28. 2024

하지마의 힘

#11

십여 년 전 친척결혼식을 가다 넘어져 무릎을 심하게 다친 적이 있었다. 스타킹을 신고 보도블록에 강하게 넘어져 무릎뼈가 보일 정도로 심하게 까졌고, 피가 계속 흘렀다. 근처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다행히 결혼식에 참여할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와 동네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응급처치를 받을 때 의사가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할 거 같다’는 말에 엄청 걱정을 했었는데, 엑스레이 검사결과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드레싱만 잘 받으면 될 거 같다는 의사의 말에, 상처는 컸지만 그래도 다행이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후 난 매일 드레싱을 받으러 갔다. 원장님은 내가 아플까 봐 조심히 상처를 봐주었고, 전문의에게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믿음이 갔고,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상처를 보는데 흉이 질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미 무릎에 어렸을 적 넘어진 상처가 있고, 가뜩이나 나이 들어 회복도 더딜 텐데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인터넷검색을 통해 습윤밴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처에 붙이면 회복도 빠르고 흉을 덜 지게 해주는 아이템이라 했다. 요즘은 습윤밴드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습윤밴드가 흔히 사용되지 않던 때였다.

상처 난 지 4일 즘 지난날, 의사에게 습윤밴드를 붙여도 되는지 물었고, 의사는 잠시 뭔가를 생각한 듯하다, ‘지금은 그렇게 효과가 없을 수 있지만 붙여도 된다’고 했다.

실은 나 역시 상처가 난 후 시간이 한참 지난 터라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과 함께 그래도 지금 뭔가를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에 내 마음의 위안을 위해 붙이려고 했던 거 같다. 그리고 의사도 그걸 알고 굳이 말리지 않은 거 같았다.    

 

그렇게 습윤밴드를 붙이고 2일 정도 지난 토요일이었다. 병원은 평소와 달리 텅 비어있었고, 두 세 사람만 대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했지만 대기자가 없어 좋다는 생각으로 기다렸다. 잠시 대기 후 진료실에 들어가 보니 다른 의사가 진료를 보고 있었다. 주말이라 당직의가 바뀐 것이었다. 의사가 달라져도 드레싱을 받는데 큰 차이 없겠지란 생각을 하며 평소처럼 치료받는 의자로 향했다.

그런데 문에서 의사까지 가는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그 의사는 내가 인사하고 앉을 동안 한 번도 나를 쳐다보지 않고 무표정하고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그 의사는 고개를 들지 않고 그저 차트를 보다가 다리를 올려달라 했다. 내가 다리를 치료대에 올리고 바지를 걷자, 붕대와 습윤밴드로 덮여있는 다리가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의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런 거 소용없어요’라며 다짜고짜 드레싱과 상관없는 곳에 붙인 습윤밴드를 확 잡아 뜯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워 놀랐고, 아팠다. 습윤밴드에 붙어있던 작은 딱지도 같이 떨어진 거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철컥하고 더 아팠다.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 느낌. 무언가를 처리해야 하는 귀찮은 대상으로 취급한다 느껴졌다.

내 존재가 침범당하는 느낌이었고, 이런 모욕적인 느낌을 참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가 싶었다.      


의사는 간호사에게 ‘소독약이요’하며 치료를 시작하려고 했다.     

나는 내 존재를 그런 취급하는 사람에게 나를 맡기도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맡기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면 내 마음이 내 존재가 더 다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병세가 심각해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순간 난 치료를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난 의사에게 단호히 ‘아니요, 저 치료 안 받겠어요. 괜찮습니다.’ 말한 후, 다리를 내리고 바지를 내렸다.

간호사도 의사도 순간 놀라며 멈춰 나를 바라보았다. 의사가 치료를 권했으나 괜찮다고 거절했고, 다시 간호사가 그래도 치료를 받아야지 않겠냐 했으나, 역시 재차 거부했다.

두근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처음이었으니까.

전에는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그저 참고 넘어갔으나,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먹고 난 후 용기 내어 실행해 보았던 것이다. 물론 이곳은 나에게 안전한 곳이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난 옷을 잘 다듬고 진료실을 나왔고, 진료비를 내려 기다렸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의사가 간호사에게 뭐라는 말을 했고, 간호사는 진료비를 내지 않고 그냥 가도 된다고 했다. 간호사의 모습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에게 다, 어떡하냐,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읽혔다.

나는 병원을 나오며 대기실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진료실을 나와 병원문을 나오기까지 그리고 걸어가면서도 한참을 떨렸던 거 같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말이고 행동이었으니까. 그런데, 기분 나쁜 취급을 받아 마음이 상한 것인데도 이상하게 뭔가 내 안에 차오르고 커지고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쳐서 내 안에 찌그러져 버린 무엇인가가 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시원하고 좋았다.     


누군가 나에게 뭐라 하면, 이해하고 참고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야 착한 아이였고, 그래야 조용했다. 그리고 잘했다는 식의 반응이 있었다. 그러면 상대는 얻고 원은 것을 얻고 그 순간을 잊고 지내지만, 나는 참고 다치고 찌그러져버린 것이다. 그런 것들이 쌓여왔고, 나는 대항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를 함부로 하는 이들에게도 참고 넘어가게 된 거 같았다. 그리고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서 나는 그렇게 해도 되는 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내 목소리를 내는 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성인이 되어 내가 가장 잘 지켜야 할 나를 지키지 못하는 채로 놓여있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니다고 하자 무언가가 달라졌다.

나는 그런 취급을 받지 않아도 됐고, 그것을 상대에게 돌려주자 구겨진 내 마음이 펴졌다.


그래 진작 그랬어야 했다. 그렇게 살았어야 하는 것이었다. 나의 존재와 마음과 기분과 마음을 존중하고 주장해야 했던 것이다. 주변을 조용하게 하기 위해 입 다물고 있어야 했던 존재가 아니었던 거다.      

남들에겐 당연한 행동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서툴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그전과는 다르게 나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예상치 못한 상대의 무례함에 당황하기도 하고, 사회적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일들은 내 기억과 마음에 남아있고, 정서 어딘가에 남아있는 거 같다.


조금은 그 기억을 잊고 있었던 거 같다.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다시 잊고 나도 모르게 나를 작아지게 만들고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나에게 무례하게 행하는 자에게 가드를 치고 마음의 근육을 키울 필요가 있을 거 같다.

그리고 더 나이를 먹으며 든 생각은, 계속 방어하게 만드는 곳은 떠나는 게 맞다는 것이다. 굳이 애쓰고 나를 힘들게 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다시 내 마음이 구겨지지 않게 잘 돌봐야겠다. 다른 이의 것도 구겨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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