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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Feb 28. 2024

치와와가 짖는 이유

#9

몇 년 전부터 매주 중학교 은사님 댁에 가고 있다. 은사님 댁에서 치와와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갈 때마다 ‘왈왈’ 거리며 엄청 짖는다. 선생님이나 가족들이 강아지를 보며 ‘언니야~’하고 진정시켜 줘도 효과는 없었다.

간식을 챙겨주기도 하고, TV에서 본 강형욱훈련사님의 조언대로 옆에 가만히 앉아 하품도 해보고, 쳐다보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보고, 손등 냄새도 맡아보게 했지만, 역시나 다음 주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짖는 거였다.


치와와가 워낙 자기 가족에만 애착이 있어 그 외 사람을 경계한다는 걸 들어 알고 있었지만, 머리와 달리 감정으로는 그런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도 우리 강아지들이 엄청 좋아한 사람인데’, ‘다른 강아지들은 다들 나를 반겨주는데’ 란 생각에 괜히 서러운 감정까지 느껴지는 거였다. 당시 내 마음이 약해진 상태라 그렇게 느껴진 거 같기도 했다. 당연히 강아지는 나를 반겨줄 거라 성급히 기대했던 거 같기도 했다. 그리고 난 '쳇' 하며 '나도 너 안 이뻐할 거야, 굳이 이뻐해 줄 필요 없지' 란 생각도 드는 거였다. 그러다가, 내가 개한테까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싶었고,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고 생각하며, 굳이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강아지가 짖으면 짖는 대로 보고 지나갔다.


그렇게 3년 넘게 지냈던 거 같다. 은사님 댁이 강아지는 여전히 당연한 듯 습관처럼 짖고 있었다.     

어느 날 퇴근 후 밤에 운전하며 집에 가는 중이었다. 차를 물려받고 운전한 지 두 달도 안되어서 아직 운전과 차의 기능에 익숙하지 않던 때였다.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좌측코너에는 셀프주유소가 있었다. 그곳이 다른 곳보다 저렴한 편이어서 한번 주유를 한 적이 있던 곳이었다.

신호가 바뀌어 좌회전을 하고 주유소 앞을 지나려는데, 저 멀리 20m 정도 되는 주유소 출구 앞에 거대한 탑차가 주유를 마치고 나오려는 것이 보였다. 출구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었는데, 그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오면 나와 부딪힐 수 있었다.

순간 ‘나를 봤겠지? 멈추겠지?’했다가, ‘차가 커서 나를 못 봤을지 몰라’, ‘나 초보인데 그러 모르고 내가 천천히 비켜줄 줄 알고 계속 나오면 어쩌지?’라는 오만생각이 났다.     


나는 커다란 탑차 앞에 두려움이 생겼고, 저 사람에게 나의 존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용기 내어 처음으로 크랙션을 눌렀다.     

푸슈욱, 바앙~     

그렇게 난 바람 빠지는 듯한 크랙션 소리를 내며, 무사히 탑차를 지나갔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예상과 다르게 부드러운 크랙션 촉감에 놀랐고,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에 두 번 ‘오잉’하며 놀랐다. 그리고. 소리가 위협적이지 않아 앞으로는 길에서 부담 없이 클랙슨을 누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무사히 완전히 주유소를 지나는데, 그 순간 문득 작은 개들이 생각났다. 치와와 같은 개들 말이다. 작은 개들이 덩치 큰 개나 사람을 보면 짖는데, 걔네들이 정말 무서워서 짖는 거였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크기의 존재가 보이면,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 존재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내가 다칠 수도 있겠다는 위협적인 느낌이 들어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클랙슨을 울렸고, 강아지는 짖는 거였다.     


그리고 선생님댁의 치와와가 짖는 것이,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그렇지 못했는데, 순간적으로 그런 느낌을 경험하니 마음으로 이해가 되었다. 그 아이가 정말 작게 느껴졌고, 내가 큰 인간인데 개랑 싸우려 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다시 보게 되면 조금 더 사랑스럽게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 후로도 난 매주 은사님 댁에 갔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놀랍게도 그 아이는 이후 내 다리에 앉아 쉬기도 했고, 짖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도 했다. 짖더라도 그 목소리엔 전보다 편안함이 묻어있었다. 지금은 나도 그 아이가 보이고, 전보다 편안히 느끼고 있다.     


살면서 머리로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 거 같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과 입장을 겪으며, 이해되지 않던 것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거 같다. 내가 이번에 운전을 통해 풀리지 않던 강아지와의 문제의 실마리를 찾았듯 말이다.

나이 들며 점점 이해의 폭이 커지고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가 더 여유로워지기를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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