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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Mar 11. 2024

이터널 선샤인

#17

살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헤어짐은 스르륵 별 흔적 없이 지나가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난간에 매달려 손가락에 피가 나듯 아프게 지나가기도 한다. 어떤 것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것은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아픔 없이 빠르게 스르륵 지나가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때가 생기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렇지 않은 때가 있었다.     


당시 난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끊임없이 상황을 반복하고 질문하며 보냈다. ‘왜 그렇게 된 걸까, 내가 그때 다르게 말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그 말은 그 표정은 무슨 의미였지,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생각하며 그 자리를 뱅뱅 맴돌았다. 하지만 난 내 입장의 단편적 사실만 알고 있기에, 모든 것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심장은 까맣게 타버리고 구멍 난 곳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거 같았다.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과 상황을 반복하며 나의 뇌는 녹아내리는 거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는데, 한참이 흘러도 아픔이 흐려지지 않는 거 같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아픔 속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던 거 같다.   

   

난 그때 그 고통이 없어질 수 있게 그 기억들이 사라지면 좋을 거 같았다.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게 나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그러면 이렇게 아프지는 않을 것이고, 그 무엇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괴로움 속에 있지 않아도 될 거였다. 좋은 것도 함께 기억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을 계속 느끼는 거보다는 나을 거 같았다. 그러면 새롭게 리셋되어 다시 나의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기억은 없어지지 않았고 깨어있는 동안 계속 나를 괴롭게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끝이 보이지 않던 거대한 감정의 파도가 서서히 줄어드는 시간이 찾아왔다. 반복해서 그 일들을 되새기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며, 나와 상대, 그리고 당시의 상황이 정리되었다. 그리고 그때 이어지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 여기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감당하지 어려운 인생의 파국이 있었을 거 같다 느껴졌다. 진심으로 다행이었고 그렇게 된 것이 감사했다.    

 

그리고 그때와 관련된 것을 마주치거나 떠올려도 심장이 ‘덜커덕’ 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선물 같은 순간이었다. 나는 점차 영화도 보고, 새로운 것에 관심도 갖고, 앞으로 있을 새로운 가능성에도 마음을 열어두며 지냈다. 하지만 여전히 그때의 아픔은 가혹하다 생각되었고, 그 속에서 보낸 시간들은 안타깝고 아쉬웠다.      


그러다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소개 프로나 주변에서 괜찮은 영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쉬이 보게 되지 않았던 영화였다. 오랫동안 평을 들었던 터라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고 나의 문화적 지적 수준도 향상 시키고자 마음먹고 보게 되었다.     


(이후 영화에 대한 스포가 있음)    

      

이터널 선샤인은 짐 캐리(조엘)와 케이트 윈슬렛(클레멘타인)이 나오는 영화인데, 조엘이 클레멘타인과 헤어진 후, 이별의 아픔을 잊으려 기억을 지우는 회사에서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지우게 된다. 그리고 다시 평온한 일상을 찾은 듯한 조엘. 하지만 그는 다시 클레멘타인과 만나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영화를 다 보았는데... 찜찜했다. 예전일들이 떠오르며 영화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생각하고 싶은 여유로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연인과 헤어짐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결국 헤어져도 상대는 다시 사랑하게 될 사람이란 메시지를 주며 연인을 인연으로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영화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가 맞다면, ‘자신과 맞지 않은 혹은 쓰레기 같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었다가 천만다행으로 멀어졌는데, 다시 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 만나게 될 수 있다고? 이미 그렇게 불행할 결말이 세팅되어 있었다는 건가?’ 란 생각이 들었다. 끔찍했다. 최소한 당시의 내겐 아름답지 않은 결말이었다.    


그러다, 나는 예전이 일이 떠올랐고, 아픈 경험이었음에도 기억을 잃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건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만일 기억을 하지 못하게 됐다면 나는 비슷한 생각과 시각을 갖은 채로, 영화처럼 다시 비슷한 사람을 만나 억지 연을 이어가려고 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남은 생에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픈 시간을 보내고 기억함으로써, 그것들은 나를 위한 경험과 자료가 되었다. 나는 내게 숨겨져 있던 ‘그는 나는 다르게 대할 거야. 나를 통해 상대가 성공적으로 변할 수 있을 거야’라는 근본 없는 허세와 오만을 알아차리고 조심하게 되었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면 상대의 의심되는 모습을 보아도 애써 이해하고 넘기고 싶어 하지만, 결국 의심스러운 결과로 나타나니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고’ 같은 이해 안 되는 말을 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말로 이해시키려는 것은, 순간을 모면하고 이득을 취하려는 수작일 수 있음도 제대로 인지하게 되었다. 상대가 나를 소중히 대하는 것을 느끼는고 있는지가 중요하고, 인연이 이어지도록 서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계속 한 사람만 노력하는 것은, 인연이 거기까지인 것이니 받아들이고 억지로 이으려 하면 안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나의 생각이고 사례이다.)    

아팠지만 그 경험으로 나는 나와 상대에 대한 시각을 조정하게 되었고, 좀 더 냉철하고 나은 판단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다. 기억을 잃지 않은 덕에 나는 그래도 조금 나은 시선과 방향을 갖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조심하며, 전보다는 나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거 같다.

 

누구도 아프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아픔을 통해 깨달음도 얻을 수 있고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했지만, 연약한 인간이기에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살다가 어떤 이유로 아픔을 겪게 될지 모른다. 혹여 그런 일이 있더라도 그 아픔이 크지 않기를, 그리고 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삶을 파괴시키는 매체가 아니라, 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이정표가 되고, 삶을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는 양분이 되기를 또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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