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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Mar 07. 2024

낙엽

#16

한 8년 전인가 10월 가을날, 친구와 아파트 대단지 지역을 걷고 있었다.

대형마트, 영화관, 백화점이 있는 번화가였지만, 계획도시라 길가에 작은 공원이 있었다. 친구의 권유로 우리는 공원에 들어가 보았다. 약간 흐린 날이라 공원에는 스산한 기운이 있었고, 잎이 반정도 떨어진 나무들이 곳곳에 있었다.     


친구는 풀밭은 돌아다니며 나뭇잎을 바라보다 낙엽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가을이구나. 날이 추워지는 거 같다'고만 생각하다가, 친구의 모습을 보며 가을을 바라보게 되었다. 공원 나무는 붉거나 노랗게 물들어있었고, 그 아래는 떨어진 지 얼마 안 된 붉고 노란 낙엽들이 자연의 그림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가을도 알록달록 참으로 예쁘다 생각했다. 당시 몸은 쉬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기에, 이 순간이 반가웠다. 난 계속 가을의 모습을 느끼고 싶어, 붉고 노란 잎 몇 개를 골라 주워갔다.     


집에 와 책상 한 구석에 잎들을 놓아두고, 나중에 잎들을 잘 보관해서 봐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것들을 신경 쓰느라 한동안 잊고 지내게 되었다.

수일이 지났고, 문득 알록달록 잎들이 생각나 보고 싶은 마음에 책상으로 향했다. 그런데 거기엔 말라버린 갈색잎이 있을 뿐이었고, 알록달록한 잎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

나는 순간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멍하니 잎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바보같이 떨어진 낙엽도 변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무에 달린 잎이나 꽃들은 변한다는 걸 충분히 알았지만, 떨어진 잎들은 계속 붉고 노랗게 있어줄 거라고 별생각 없이 여겼던 거다.    

 

놀랐다. 그리고 그때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변하여 떨어진 것도 더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 역시 지금이 아니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한참을 찬란히 피어나는 것들은 저물 수 있음을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하지만, 찬란히 피어나지 못한 것들이나 저문 이후의 것들은, 저물 것이라고 쉬이 생각하지 못하는 거 같다. 하지만 어떤 것이던 어떤 모습이건 모든 것은 저물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답게 피었던 꽃이든, 제대로 피지 못한 꽃이든, 피고 떨어진 꽃이든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더 잘 돌보고 관리해야 하는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내가 낙엽들을 바로 책사이에 끼워두었다면, 오래오래 빛을 잃지 않고 그 모습을 유지했을 것이었다.    

 

이후 수년이 지나, 바쁜 생활에 밀려 나중에 써야 지하는 글감들이 쌓이고 있고, 하고 싶던 것들을 손대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일이 생각났다. 의미 있고 좋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그 빛을 잃을 수도 있고, 계속 생생할 것이라 생각하고 바쁜 생활에 밀려 내일, 모레로 미루게 되면, 낙엽처럼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호기심이 가는 것이 있으면 시도해보려 하고, 생각나는 것들은 메모장에 적어보며, 부족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려 하고 있다. 나름의 방식으로 손 놓지 않고 지냈던 거 같다. 요즘은 예전의 글감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것들이 말라버린 갈색잎이 아니라 알록달록한 잎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인생에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인 거 같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런 것들을 찾을 수 있기를, 찾았다면 그 순간 생생하게 할 수 있기를, 그래서 바라지 않고 오래 그 빛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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