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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Mar 06. 2024

엄마의 생일날

#15

엄마의 생일날. 엄마와 둘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휴일이었던 전날 언니, 형부, 조카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케이크에 촛불도 불었지만, 생일 당일의 축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은 미역국을 끓여드려야지 생각했지만, 생각뿐이었고, 게으르고 부족한 나는 저녁 식사로 대신하기로 했다.


평소에 외식하자고 하면 '비싼데 뭐 하러'라며 돈을 아끼려 하던 엄마도, 이번에는 '그럴까...?' 하며 쉬이 호응해 주셨다. 싫다고 하면 내가 짜증을 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셔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건 기분 좋았다.


엄마가 선택한 메뉴는 '갈비탕'. 동네에서 나름 유명한 맛집인 '천지연'에 가기로 했다. 평소 엄마라면 비싸다고 가지 않았을 거지만, 엄마가 사주실 생각으로 큰맘 먹고 고르신 거 같았다.


저녁시간, 업무를 마무리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고, 엄마는 서두르지 말고 오라며 '^^'문자를 보내주셨다. 나는 미안함과 고마움의 마음이 섞여 급히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엄마를 픽업하고 식당에 도착했다. 월요일 저녁임에도 사람이 꽤 있었다. 월요일이면 피곤할 텐데 이렇게 부지런히 고기를 오는 사람이 많구나 싶었다. 가게에는 빈자리가 많았지만 대기명단을 쓰고 15분을 후에 앉을 수 있었다.


좋은 고깃집이라 가격이 좀 있었지만, 고기를 먹어야 좋은 곳에 온 기분이 나고, 제대로 엄마생일을 챙기지 못한 마음을 스스로 위안하고자, 소갈빗살 2인분과 후식 갈비탕을 주문했다.

자리가 세팅되고, 숯불이 들어오고, 고기가 나왔다. 그런데 서버분이 고기를 불판에 올려주고 간 후 다시 와서 고기를 뒤집어주시는 거였다. 평소 고깃집에서 직접 구워 먹던 게 익숙했던 터라, 고기를 구워주는 곳이란 걸 그때야 알아차렸다. 빈자리가 많아도 서버인원이 적어 대기를 시켰구나도 그때 깨달았다.

우리 테이블의 서버분은 50대 중후반으로 보였는데, 조용히 필요한 걸 챙겨주시고, 굽기도 물어보며 옆에서 고기를 구워주셨다. 오랜만에 식당에서 누군가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니, 대접받는 거 같고 기분이 좋아졌다. 고기를 굽는 걸 보는 것도 볼거리가 되어 심심하지 않았다.


고기가 조금씩 구워지자 엄마한테 먹어보라 하고, 나도 한점 먹어보았다.

맛.있.었.다.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에는, 소고기 특유의 고소한 기름맛과 고기맛이 응축되어 있었다.

'그래. 이 맛이야.' 이 말이 절로 떠오르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집에서 구우면 이런 맛이 안 나는데, 기분 탓인가, 불이 좋은 건가, 고기가 좋은 건가, 아니면 잘 구워주시는 건가' 오만 생각을 하며 고기맛에 감탄했다. 누군가 구워주는 고기를 먹는 상황이 기분 좋고, 엄마 생일에 뭔가 해드렸다는 생각에 자기 위안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구워지는 고기를 바라보며, 엄마는 내게 많이 먹으라 하고, 나는 엄마에게 어서 먹으라는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잠시하고 고기를 제대로 먹기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갑자기 "친정 엄마예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옆에서 조용히 고기를 구워주시던 서버분이었다.

갑작스럽게 개인적인 질문을 받아 당황하기도 하고, 결혼하지 않은 내게 '천정엄마'라는 단어가 어색하다 느끼고, 내가 결혼은 안 했지만 그분 입장에서는 그냥 엄마를 지칭하시는 거겠지란 생각의 단계를 거친 후, "아,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친정 엄마가 있어서 좋겠어요..."라는 짧은 말씀을 하셨다.

순간 그분의 얼굴을 보았다. 그분은 고기를 바라보며 굽고 있었지만 눈은 다른 것을 바라보는 듯했다.

마음이 숙연해졌다. 짧은 한마디와 표정에서 그분이 보였고, 그 마음과 상황이 이해됐기 때문이다. 그분의 어머니는 돌아가셨을 것이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처럼 엄마와 같이 저녁을 먹고 이야기했던 시간을 떠올렸으리라. 자기를 챙겨주는 가장 소중한 존재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리라. 힘들게 일하고 있는 자신을 토닥이며 걱정해 줄 엄마를, 자기를 우선하여 챙겨주는 소중한 존재를 그리워하는 것이리라. 나도 그런 엄마가 있는데, 아니 있었는데 하는, 짙은 그리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나는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 어떤 말도 이 상황에 어울릴 거 같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네' 하고 답하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서버분이 남은 고기를 마저 구워주실 때, 엄마는 갈비탕의 국물과 밥을 따로 덜어 내게 주셨다.  평소라면 투정 부리는 말투로 '아냐 나도 배불러. 먹을 거 많아. 엄마 다 먹어.' 말했을 텐데, 이번에는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갈비탕이 찰방거리는 앞접시를 조심히 받아 한입 두 입 먹기만 했다.

옆에서 서버분이 이 모습을 보며 어머니를 더 그리워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괜히 미안함이 들고 신경 쓰이기도 했고, 평소처럼 엄마가 나를 위해 음식을 덜어 주고받는 것이 특별한 순간이구나 느껴졌던 거 같다.

서버분은 고기를 다 굽고 자리를 떠나셨고, 엄마와 나는 남은 식사를 다했다. 나 혼자 2인분의 고기를 거의 다 먹고 갈비탕도 반을 먹어서, 누구를 위한 저녁식사였나 생각하며 계산하고 가게를 나왔다.


엄마와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나는, 일이 많아 집에 늦게 들어오고, 피곤하다며 쓰러져 자고, 할 일이 있다며 밥만 먹고 방에 들어가고, 왜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지하며 무관심히 지나치고, 괜히 어리게 심통 부리고, 엄마가 해주는 것들을 당연히 생각하고 짐 지우며 최근 몇 년간 그렇게 보낸 거 같다.

엄마와의 순간이 소중하다는 걸 알지만, 막상 일상에서는 온전히 엄마와 시간을 보내지 않고, 다음으로 다음으로 하며 미루는 거 같다. 엄마는 당연하게 나에게 있는 존재였고, 계속 있는 존재라 생각해서 더 그랬던 거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의 나이 듦을 보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별을 보면, 어쩌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구나란 생각이 막연하지만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 엄마 생일날, 무심히 밥을 먹다 그런 순간을 또 마주쳤다.


길을 가다가 혹은 티브이를 보다가 노부부가 아름답게 손잡고 걷는 모습을 보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고, 나이 든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식사를 하거나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면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행복한 모습은 보이는데, 정작 내가 누리고 있는 나의 모습은 잘 보지 못하는 거 같다.

어쩌면, 엄마와 식사하는 그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그립고 소중한, 그리고 부러운 순간일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는 소중한 것을, 누군가는 절실히 그리운 그 순간을, 내가 가지고 있을 수 있음을 느끼며 내가 가진 것들을 온전히 느끼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충실히 살아가길 바라본다.


하루종일 혼자 집에 있으며 내가 오길 기다렸을 엄마의 모습이, 함께 밥을 먹으며 잠시 이야기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던 엄마의 모습이, 내가 방에 들어갈 때 서운해하는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내일은 엄마와 식사하며 조금 더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엄마의 하루를 찬찬히 듣고, 조금은 다정하게 말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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